초겨울 아름다운 부석사와 무섬마을을 답사하고 죽령 옛 고개를 넘는다.
늦은 가을이나 이른 겨울에 가면 가장 아름다운 절이 어느 절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합니다. “부석사지요.”
봉황산 자락에 자리 잡은 부석사라면, 강 마을 중에 아름다운 마을은 내성천 변에 자리 잡은 무섬 마을이고,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 중에 아름다운 고개가 바로 풍기에서 단양으로 넘어가는 죽령 옛길입니다.
그 세 곳의 명승지를 찾아 12월 2일 토요일, 겨울의 초입에 하루 기행을 실시합니다.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 부석사(浮石寺)가 있는데, 신라 때의 절이다. 부석사 무량수전 뒤에 큰 바위 하나가 가로질러 서 있고, 그 위에 큰 돌 하나가 지붕을 덮어놓은 듯하다. 언뜻 보면 위아래가 서로 붙은 듯하나, 자세히 살피면 두 돌 사이가 서로 눌려져 있지 않다. 약간의 빈틈이 있어, 새끼줄을 건너 넘기면 거침없이 드나들어서 비로소 떠 있는 돌인 줄을 알게 된다. 절은 이것으로써 부석사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돌이 뜨는 이치는 이해할 수 없다.’라고 한 부석사는 경북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자락에 자리잡은 절로 신라 문무왕 16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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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성이 김씨였던 의상(625~702)은 29세에 황복사에서 불문에 들어간 뒤 660년에 당나라로 들어갔다. 장안 종남산 화엄사에서 지엄을 스승으로 모시고 불도를 닦은 의상이 670년에 당나라가 신라를 침공하려 한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돌아온 뒤 다섯 해 동안 양양 낙산사를 비롯하여 전국을 다니다가 마침내 수도처로 자리를 잡은 곳이 이곳이다.
의상스님이 이 절에 주석하여 화엄사상을 닦고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내면서 부석사는 화엄 종찰로서 면모를 일신하였다.
천천히 올라가면서 만나게 되는 대석단이나, 무량수전, 조사당, 아미타불 등 문화유산들도 그렇지만 자연과 어우러진 부석사의 절 건물들을 바라보면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체감할 수가 있다.
미술사학자인 최순우(崔淳雨.1916-1984)선생은「부석사 무량수전」이라는 글에서 ‘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 된 듯싶어 진다.’면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고 하였을 것이다. 덧붙여 최순우 선생은 ‘무량수전은 고려 중기의 건축이지만 우리 민족이 보존해 온 목조건축 중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오래된 건물임에 틀림없다. 기둥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나타나 있는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 봐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라고 말했다.
일연스님이 지은『삼국유사』에 수록된 이 절의 창건설화는 다음과 같다. 당나라로 불교를 배우기 위해 신라를 떠난 의상은 상선을 타고 등주해안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어느 신사의 집에 며칠을 머무는 동안 그 집의 딸 선묘가 의상을 사모하여 결혼을 청하였다. 의상은 선묘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자 선묘는 “영원히 스님의 제자가 되어 스님의 공부와 교화와 불사를 하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하였다. 의상이 종남산에 있는 지엄을 찾아가 화엄학을 공부하고 신라로 떠나는 배를 타던 날 그가 떠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선묘가 부두에 나아갔으나 배는 이미 떠난 뒤였다.
선묘는 의상에게 주기 위해 가지고 온 옷가지가 든 상자를 바다에 던지며 “이 상자를 저 배에 닿게 해 주소서.”하였더니 그 상자가 물길을 따라 의상이 탄 배에 닿았다.
선묘는 이어서 “이 몸이 용이 되어 의상스님이 귀국하는 뱃길을 호위하게 하소서.”하고는 바다에 몸을 던지니 선묘는 용이 되어 의상의 무사귀환을 도왔다. 그 뒤 의상스님이 부석사에 터를 잡고자 하였으나 부석사 터에는 그때 500여명의 도둑들의 근거지가 되어 있었다. 그 상황을 접한 선묘가 사방 십리나 되는 커다란 바위로 변하여 도둑들을 위협하자 두려움을 느낀 도둑들이 그 자리를 비웠다. 의상은 용이 바위로 변하여서 절을 지을 수 있도록 하였다고 절 이름을 부석사라고 지었고, 부석사의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가 선묘인 용이 변했던 바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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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리지』에는 부석사에 대한 설명이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절 문 밖에는 생모래 덩어리가 있는데, 옛날부터 부서지지도 않고, 깎으면 다시 솟아나서 살아나는 흙덩이 같다. 신라 때의 승려 의상이 도를 통하고 장차 서역 천축국에 들어가려고 할 때 기거하던 방문 앞 처마 밑에다 지팡이를 꽂으면서 ‘내가 여기를 떠난 뒤에 이 지팡이에서 반드시 가지와 잎이 날 것이다. 이 나무가 말라 죽지 않으면 내가 죽지 않은 줄로 알아라.’고 하였다. 의상이 떠난 후에 절 중창 밖에서 곧 가지와 잎이 돌아 나왔는데 햇빛과 달빛은 받으나 비와 이슬에는 젖지 아니하고 늘 지붕 밑에 있으면서도 지붕을 뚫지 아니하고, 겨우 한 길 남짓한 것이 천년을 하루 같이 살고 있다. 경상감사 정조(鄭造)가 절에 와서 이 나무를 보고 ‘선인이 짚던 것으로 나도 지팡이를 만들고 싶다.’하면서 톱으로 자르게 한 뒤 가지고 갔다. 그러나 나무는 곧 두 줄기가 다시 뻗어나서 전과 같이 자랐다. 인조 계해년(1623)에 정조는 역적으로 몰려 참형을 당하였다. 나무는 지금에도 사철 푸르며, 또 잎이 피거나 떨어짐이 없으니 스님들은 비선화수(飛仙花樹)라 부른다. 옛날에 퇴계 선생이 이 나무를 두고 읊은 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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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과 같이 아름다운 이 가람의 문에 기대어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스님의 말은 지팡이가 신령스러운 나무로 화했다 한다.
지팡이 머리에 스스로 조계수(중국 광동에 있는 냇물)가 있어서
하늘이 내리는 비와 이슬의 은혜를 입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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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뒤편에 있는 취원루는 크고 넓으며 아득한 것이 하늘과 땅의 한복판에 솟아난 듯하고, 기개와 정신이 남자답게 경상도를 위압할 듯하며, 벽 위에는 퇴계의 시를 새긴 현판이 있다.
“내가(이중환 본인) 계묘년 가을에 승지 이인복(李仁復)과 함께 태백산에 유람하다가 이 절에 올라서, 드디어 퇴계의 시를 차운(次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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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높은 정자 열 두 난간에,
동남쪽 천리 지역이 눈앞에 보이도다.
인간 세상은 아득하고 아득한 신라 때 인데,
하늘 아래는 깊고 깊은 태백산이다.
가을 골짜기에 어두운 연기는 나는 새 너머에 피고,
지평선에 지는 노을은 어지러운 구름 끝에 비친다.
가도 가도 위쪽 절에는 닿지 못하니,
예로부터 행로의 어려움을 어찌 알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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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시 한수를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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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은 아득히 하늘과 통하고,
옛 절은 바다 동쪽에 웅장하여라.
강과 산들은 멀리 천리 밖에서 만나고,
불당과 다락집은 날듯이 천지 사이에 솟았네.
이름난 스님이 집을 떠났는데 꽃이 나무에 피고,
옛 나라야 흥하거나 망하거나 새들은 빈 하늘을 날아간다.
누가 알랴, 머뭇거리는 주남(周南) 길손의,
뜬 구름, 지는 해의 무궁한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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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원루 위에 깊숙한 곳에 방을 만들었고, 방 안에는 신라 때부터 이 절 중으로서 사리가 나온, 이름난 스님의 화상(畵像) 십여 폭이 걸려 있다. 모두 얼굴 모습이 옛 되고 기이하며 풍채가 맑고 깨끗하여 엄연히 당시의 다락집 위에서 서로 대좌하고 있는 듯하다.
지세가 꾸불꾸불 하면서 아래로 처져 있는 그 밑에 작은 암자들이 있다. 그 곳은 불경을 강연하고 선정에 들어가는 승려를 거처하게 한다는 것이다.”
<신정일의 신 택리지 산수>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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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초입에 부석사를 답사 한 뒤 찾아갈 무섬 마을, 그리고 넘어갈 고개 죽령 옛길은 경북 풍기와 단양군 대강면을 연결하는 고개입니다. 초겨울의 정취를 맛보며 걷게 될 부석사와 무섬마을, 그리고 죽령 옛길이 가을 길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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