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세상이 사악해졌는가? 아니면 시절 탓인가?
사람들의 말이 극極과 극極을 오가고 있다.
과연 세상이 어디로 갈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고,
분별조차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그것조차 알 수가 없는데,
문득 내 가슴을 열고 오는 소리, 동학東學의 열세자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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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이다.
시천주라는 것은 ‘내 안에 한울님을 모셨다“는 것이고.
조화정造化定에서 조화란
‘우주를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기운 또는 활동을 뜻한다.’이며,
‘정定’이라 함은 그 활동의 덕에 합하여 마음을 정하는 것이다.
만사지萬事知의 만사는, 즉 ‘일체를 안다‘는 뜻이다
.영세는 사람의 평생이고, 불망은 언제나 생각을 두어 잊지 않는다는 말이다.
풀어서 말한다면 “하느님을 모시면 조화가 체득되고,
하느님을 길이 잊지 않으면 만사가 깨달아진다.” 는 말이다.
그렇다면 동학농민혁명당시 동학의 엘세 자 주문을 외우고
가슴에다 궁궁을을弓弓乙乙이라고 쓴 부적만 밭이면
총알도 피해간다고 믿고서 주문으로 외웠던 궁궁을을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궁을부弓乙符>에 궁궁을을이란 “가슴 속에 품은 죽지 않는 약,
그 모습이 궁을이다.” 라는 말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그 삶의 도중에 그런 약을 맛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런 약은 없지만 마음속에 그런 약이 이 세상에 존재하여
모든 약한 자들과 억눌린 사람들이 천상의 기쁨을 맛보고자 하는 마음이
그런 약의 존재를 노래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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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인내천 사상의 심오한 뜻은 맨 처음 주문에 나오는
모실 ‘시侍’ 한 자 속에 전부 포함되어 있다.
수운 최제우 선생은 ‘사람이 안다는 것을
‘천도의 천덕을 알아 그 앎을 받는다.(知者 知其 道而受其知)“
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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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뿐이 천주를 모셨으니, 천지만물이 시천주侍天主 아님이 없나니,
그러므로 사람이 다른 물건을 먹음은 곧 이천식천以天食天이니라.
제군은 한 생물이라도 무고히 해하지 말라.
이는 천주를 상함이니, 대자 대비하여 조화의 길에 순응하라.”
<천도교 창건사> 제 2편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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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주라는 말은 말 그대로 풀이하면 ‘하느님을 모신다.’는 뜻이고
모두가 다 하느님이고, ‘부처’이기 때문에 모셔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만물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이라는 말뜻에 숨은
깊은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에 조선 후기에 김구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동학으로 입교했을 것이다.
금구선생이 동학에 입도하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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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손히 절을 한즉, 그도 공손히 맞절을 하기로
나는 황공하여 내 성명과 문벌을 말하고
내가 비록 성관成冠을 하였더라도 양반 댁 서방님인 주인의 맞절을
받을 수 없거늘, 하물며 편발 아이에게 이런 대우가 과도한 것을 말하였다.
그랬더니 선비는 감동한 빛을 보이면서,
그는 동학도인이라 선생의 훈계를 지켜 빈부귀천에 차별이 없고,
누구나 평등으로 대접하는 것이니 미안해 할 것 없다고 말하고,
내가 찾아온 뜻을 물었다.....
하느님을 모시고 하늘의 도를 행하는 것이 가장 요긴한 일일뿐더러
상놈 된 한이 골수에 사무친 나로서는
동학의 평등주의가 더할 수 없이 고마웠고,....“
백범 김구선생의 <백범일지>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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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시대도 이러했거늘,
날이 갈수록 금수저네, 흙 수저네, 이런저런 말들이 많고,
개천에선 절대 용이 못나오고, 송사리도 나올 수 없다는 이 세상에
그래도 나는 희망을 건다.
어둠이 짙으면 새벽이 온다고,
세상은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리라고,
모두가 평등한 미륵의 세상이 오긴 올 거라고,
‘우리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는 ‘서학西學(기독교)의
정신과 동학의 정신이 어우러져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곧 이어 온 세상을 비추게 될 보름달처럼 환한 미소 머금고
이 세상의 길을 걸어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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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9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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