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오고 가듯, 명절도 오고 가고,
내가 좋아하는 시,
<연필로 쓰기>라는 시를 쓴 정진규 시인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어제 들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목소리도 들은 적이 없는,
그림자조차 본 적이 없는 시인이지만
정진규 시인의 시를 읽다가 보면
내게 나직하게 속삭이는 듯,
아니 타이르는 듯, 그래서 가끔씩 그의 시를 떠올리면
내 삶이 심연 깊숙이 침잠하는 듯,
그런 속 깊은 의미를 지닌
시를 쓰던 시인이 어느 순간 가셨다니,
어디로 가셨을까?
내가 모르는 어느 행성, 아니면 어느 한적한 골짜기로,
사람의 말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아니면 사람의 눈길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간 것은 아닐까?
여기저기 그냥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시인이 어느 날 썼던 시 한편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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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 철저한 혼자일 것,
심상의 깊은 그림자들과 만날 것,
단 젖을 것,
깊이 젖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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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내리게 하실 것,
꿈보다 더 꿈이실 것,
그러나 예의 그 눈물 목소리로부터
해방되어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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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이나 사태의 이행 변화를
뜨거운 감각으로 수용하되 의미를 버리지 말 것,
음악의 풀밭에서 돋아나는 싱그런 상추 한 잎
그걸 어렵게 따 물고 하늘로 올라가는
한 마리 새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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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연內緣의 여자 하날
깊이 감추어 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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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규 시인의 <어느 날의 나의 시법詩法>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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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쓰고 간 시 구절,
“되도록 철저한 혼자 일 것,”
쉬울 것 같지만 어려운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시 마지막 연에서
‘그런 내연의 여자 하날 감춘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일까?
감춘다고 해서 감추어지는 사람, 한 잎의 여자일까?
아니면 하나의 형상, 아니면 자기 스스로의 마음 그림자?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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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시 구절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생명력을 가지고
외롭다고 소리치고 있는 시인지, 탄식인지, 아니면
고함소리인지 모르는 그 소리,
소리들이 지금 창문너머에서 대포소리보다도 더 크게
아니면 모기소리처럼 약하게
윙윙거리고 있다.
‘나! 살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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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소리로
가버린 시인에게 조의를 표하며 덕담을 건넨다.
“사시느라고 고생 많으셨다고,
후생後生은 좀 더 행복하게 잘 노는 것 같이 사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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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10일까지 먼 길 떠납니다.
티벳의 라싸에서 이리저리 이어지는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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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도반들에게
정유년의 추석을
아름답고 뜻 깊게 보내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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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30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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