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아닌 아무것을 위하여,
“석두 스님의 제자 약산이 좌선을 하고 있자 다가와 물었다.
“거기서 무얼 하고 있는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한가히 앉아 있단 말인가?”
“한가히 앉아 있다면 무엇인가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는데, 도대체 무엇을 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 경지는 천명의 부처님도 알지 못합니다.(千聖赤不識)”
나도 모르고 그대도 모르는 것,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무 것이 되는 경이가 있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하는 것,
불식不識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경지를 말하지만
그것을 깨닫는 것은 더없는 어려움이다.
사람들은 사실상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을 때만 자신이 되는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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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을 향해 걸어가던 여행자들이 낭떠러지에 이르렀다.
그들은 바다 위를 떠다니는 큰 나뭇가지를 보고서
이를 전함으로 착각하고 아마도 이 전함이
곧 상륙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마냥 기다렸다.
하지만 이 나뭇가지가 파도에 밀려 가까이 다가오자
그들은 더 이상 그것이 전함도 화물선도 아님을 알았다.
해변으로 가서 나뭇가지임을 확인한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마냥 기다린 우리는 참 멍청하군.”
<이솝우화>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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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일 수도 있고, 어쩌면 가없는 희망일 수도 있는
그 어떤 것에 대한 갈망, 그것 때문에 살고, 그것 때문에 실망한다.
아무 것이었다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경이가
어쩌다 아니, 가끔씩 있다.
가끔씩 천지가 개벽하는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그 경이를 위해
나도 당신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가라, 그리고 사랑하라, 비록 땅 위에 의지할 것, 아무 것도 없어도.”
블레이크의 말을 음미하면서,
2017년 9월 1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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