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돌아와 그 순간들을 회상하다.
제주에서 집으로 돌아와 오랫동안
가만히 누워 있었다.
훌쩍 지나간 나흘을 추억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흘 동안에 내 힘이 다 소진된 것도 아닌데,
무언가 모를 허전함, 시간이 강물처럼 흘렀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실려 있다.
“시간이 천천히 지나가 불과 7분간이 무한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 순간을 잘못해서 지나쳐 버릴까봐 시계를 보니.
이제 2분 30초 경과했을 뿐이었다.”
그래, 나흘이다. 불과 나흘이 지나갔을 뿐이다.
그 시간에 나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의 나그네이자
주인공이었을 뿐이었는데,
그 지나간 풍경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 무엇이
남아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텅 빈 듯, 홀로인 듯,
내 속에 내가 모르는 섬이 숨어 있던 것을
이제야 발견한 놀라움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다면 이 설명할 수 없는 진공상태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아하! 다시 그럴지도 모르겠다.
순간에 포착한 풍경 탓이다.
풍경風景이 내가 되고, 내가 풍경이 되는 그 경이,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했었지,
‘풍경이 된다는 것은 지상과 하늘이 잠시 입을 맞추는 것이다.“ 라고.
그래서 그런 것일까?
성산포, 섭지코지에서 보았던 몽롱한 듯 아스라하게 펼쳐졌던 노을과,
법환포구와 차귀도 섬 근처의 을씨년스럽던 파도,
하얀 눈 가운데 빨갛게 서 있던 천남성,
그 풍경들이 순간 속에 지나가고,
그 풍경들을 꿈인 듯, 옛 이야기인 듯 회상하는 나는 누구인가?
아름다운 시간도, 슬픔의 시간도 지나고 보면 모두 찰나에 불과하고,
찰나라고 여기는 그 순간을 회상하면서
추억하는 것이 인생이다.
나는 언제까지 떠나고 또 떠났다가 돌아와
이렇게 스쳐 지나간 그 순간을 회고할 수 있을 것인가?
나에게 허용된 삶의 시간 속에서
경탄하고 경탄할 시간은 매 순간마다 줄어들고 있는데,
2017년 12월 11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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