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라는 말 속에 숨은 사랑,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한 존칭이 여러 가지가 있다.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로 쓰는 존칭 중에 가장 흔하게 쓰는 말이,
‘그대,’ ‘당신,’ ‘임자’라는 말이고, 가끔 줄여서 쓰는 ‘어이,‘도 들어간다고 할까?
그 중 ‘당신’이라는 말은 사이가 남녀관계도 그렇지만
동성이나 이성 사이가 좋고 다정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말이다. 하지만,
분위기가 이상하거나 약간 험악한 상황에서는
멱살잡이로 이어지는 존칭이 되기도 한다.
‘그대’ 라는 말, ‘당신’이라는 말 보다 ‘임자’라는 말도
정감이 간다. 그러나 편지나 글을 쓸 때 쓰는 ‘그대’라는 말은
쓰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어감이 좋아서 많이 쓰고 나 역시 많이 쓰는 편이다.
그대라는 말을 옛 사람들 중 가장 많이 쓴 사람이 누구일까?
추사 김정희 선생일지도 모르겠다.
54세에서 63세까지 9 년 동안을 제주 유배지 대정에서 보낸
추사에게 그의 제자인 이상적이
고난 속에 있는 스승을 위해
역관으로 중국에 가서 좋은 물건이 있으면 값의 고하를 떠나서
바다 먼 곳으로 보내주었다.
그 사무치게 고마운 마을을 담아
<세한도>를 그리고 그 마음을 절절하게 쓴 글 속의 ‘그대’가 어찌 그리
이 한 겨울의 신 새벽 마음을 짠하게 하는지,
“그대가 지난해에 계복桂馥의 <만학집晩學集>과 운경惲敬의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藁> 두 책을 부쳐주고, 올해 또 하장령賀長齡이 편찬한 <황조경세문편 皇朝經世文編> 120권을 보내주니, 이는 모두 세상에 흔한 일이 아니다. 천만 리 먼 곳에서 사온 것이고, 여러 해에 걸쳐서 얻은 것이니, 일시에 가능했던 일도 아니었다.지금 세상은 온통 권세와 이득을 좇은 풍조가 휩쓸고 있다. 그런 풍조 속에서 서책을 구하는 것에 마음을 쓰고 힘들이기를 그같이 하고서도, 그대의 이끗을 보살펴줄 사람에게 주지 않고, 바다 멀리 초췌하게 시들어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을 마치 세상에서 잇속을 좇듯이 하였구나!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이 말하기를, “권세와 이득을 바라고 합한 자들은 그것이 다하면 교제 또한 성글어진다.” 고 하였다.
그대 또한 세상의 도도한 흐름 속에 사는 한 사람으로 세상 풍조의 바깥으로 초연히 몸을 빼내었구나. 잇속으로 나를 대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태사공의 말씀이 잘못되었기 때문인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 고 하셨다.
소나무 잣나무는 본래 사계절 없이 잎이 지지 않는 것이다. 추운 계절이 오기 전에도 같은 잣나무요, 추위가 닥친 후에도 여전히 같은 소나무 잣나무다. 그런데도 성인(공자)께서는 굳이 추위가 닥친 다음의 그것을 가리켜 말씀하셨다.
이제 그대가 나를 대하는 처신을 돌이켜보면, 그 전이라고 더 잘한 것도 없지만, 그 후라고 전만큼 못한 일도 없었다. 그러나 예전의 그대에 대해서는 따로 일컬을 것이 없지만, 그 후에 그대가 보여준 태도는 역시 성인에게서 일컬음을 받을 만한 것이 아닌가? 성인이 특히 추운 계절의 소나무, 잣나무를 말씀하신 것은 다만 시들지 않는 나무의 굳센 정절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역시 추운 계절에 대하여 따로 마음에 느끼신 점이 있었던 것이다.
아아, 전한前漢 시대와 같이 풍속이 아름다웠던 시절에도 급암汲馣과 정당시鄭當時처럼 어질었던 사람들조차 그들의 형편에 따라 빈객賓客이 모였다가는 흩어지곤 하였다. 하물며 하규현下邽縣의 적공翟公이 대문에 써 붙였다는 글씨 같은 것은 세상인심의 박절함이 극에 다다른 것이리라.‘
슬프다. 완당 노인이 쓰다.!
추사가 말한 적공이 대문 앞에 써 붙였다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번 죽고 한 번 삶에 사귀는 정情을 알았고,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자 됨에 사귀는 태態를 보았으며, 한 번 귀하고 한 번 천해짐에 사귀는 정이 모두 드러났다.‘
고난의 시절과 모진 운명에 처해야 사귀던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 수가 있다는 말로 이상적의 처음과 같은 마음을 두고 뜨거운 신뢰와 사랑을 전한 글이다.
이 그림을 받은 이상적은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냈다.
“<세한도> 한 폭을 엎드려 읽으매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어찌 그다지도 제 분수에 넘치는 칭찬을 하셨으며, 그 감개 또한 그토록 진실하고 절실하셨습니까? 아! 제가 어떤 사람이기에 권세와 이득을 따르지 않고 도도히 흐르는 세파 속에서 초연히 빠져 나올 수 있겠습니까? 다만 구구한 작은 마음에 스스로 하지 않을 내야 아니할 수 없었을 따름입니다.
하물며 이러한 서책은, 비유하건대 몸을 깨끗이 는 선비와 같습니다. 결국 어지러운 권세와는 걸맞지 않는 까닭에 저절로 맑고 시원한 것을 찾아들어간 것뿐입니다. 어찌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이번 사행使行 갈에 이 그림을 가지고 연경燕京에 들어가 표구를 해서 옛 지기知己분들게 두루 보이고 시문詩文을 청하고자 합니다. 다만 두려운 것은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제가 참으로 속세를 벗어나고 세상의 권세와 이득을 초월한 것처럼 여기는 것이니,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과당하신 말씀입니다.“
살다가 만나는 인연들이 수없이 많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만나 한 시절 지내다가 시절 인연이 다해서 그런지,
아니면 잘 못된 인연이 끝나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서로 안부도 전하지 못하고
갈라선 인연들이나 서먹해진 인연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할 때가 많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추사의 말과 같이 ‘잇속으로 나를 대하지 않는 사람’ 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하지만 좀 더 넓게 생각해보면 그렇게 살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러냐 하면 지구는 태초부터 지금에 이르기 까지 언제나 ‘나’를 위해 돌기 때문이다.
아쉽긴 하지만 세상의 이치인 것을 어떻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
마음 내려놓고. 그저 살다가 가는 그것 뿐,
“집 나오면 즐겁고 집에 들면 시름이라.
미친 노래 곤드레로 사십 년을 보냈네.“
이상적의 시 한 소절이 지금의 마음을 달래주기는 하는 것일까?
2017년 12월 12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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