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5

‘저승의 문턱 까지 가야 하는 시험’이라는 것,

산중산담 2018. 4. 26. 20:21

 

저승의 문턱 까지 가야 하는 시험’이라는 것,

 

살다가 보면 신기하기도 하지,

서러웠던 시절이 나중에 회고해보면 오히려 행복했던 시절 같이

여겨지기도 하고, 행복했던 시절이 오히려

쓸쓸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정상적인 청소년시절을 보내지 않아서

시험도 치르지 않았고, 그래서 시험공부도 하지 않고, 보낸 것은

일면 다행이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이 다 겪은 것을

겪지 않고 지낸 것이 일면 서럽기도 하다.

물론 내가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고려의 천재 시인 이규보가 과거에 여러 차례 떨어져

실의에 빠져 있다가 최충헌의 눈에 들어 벼슬길에 올랐던 것처럼,

시험을 잘 못 보는 사람일 수도 있는데,

옛 사람들의 글에도 시험이

사람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기도 하고,

행복하게 하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무릇 요행을 말할 때 만에 하나라고 말합니다.

어제 과거 응시자가 수만 명 이래로 내려가지 않는데,

방에 오른 사람이 겨우 20명에 지나지 않으니,

만에 하나라고 말해도 되겠지요.

시험장 문에 들어가느라 서로를 밟고 넘어져

죽고 부상한 자가 무수하지요.

형제들끼리 부르며 찾아다니다 혹시라도 만나면

손을 잡고서는 죽었다 다시 살아난 사람을 만난 듯,

여기므로 열에 아홉은 저승 문턱까지 갔다 왔다고 말해도 되겠지요.

지금 그대는 열에 아홉까지 갔던 저승 문턱에서 벗어났고,

게다가 만에 하나에 해당하는 이름을 얻으셨습니다.

그대에게 많은 사람이 하듯 저는

만에 하나의 영광을 축하할 마음은 없지만,

열에 아홉은 저승에 갈 위험한 시험장에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아도 된 것만은 축하드립니다.

마땅히 직접 찾아뵙고 축하 드려야 하겠지만,

저 역시 열에 아홉은 저승 문턱까지 갔다 온 뒤인지라,

지금 자리보전한 채 신음하고 있습니다.

조금 무심함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연암 박지원 선생이 과거를 보았다 떨어져 저승의 문턱까지 갔다가 온 뒤

합격한 사람에게 보낸 축하의 글이다.

자기 자신은 떨어져서 자리보전한 채 신음하면서도

축하의 글을 보내는 박지원 선생의 글을 읽으면 지금 사람의 마음으로도

가슴이 왜 그리 짠한지,

실력이 모자랐던 것도 아니고 머리가 나빠서 떨어진 것도 아닌

그것이 시험 운일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의 운명일 수도 있는 시험은

말 그대로 한 사람의 생사生死와도 비견할 수 있던 것이 조선시대의 과거였다.

그렇다면 그 당시 사대부들은 왜 그렇게 과거에 연연했을까?

성호 이익 선생이 말한 것처럼 당쟁이 그토록 극심하게 파생한 것은

그 당시 사대부로서 살아갈 방편은 벼슬에 합격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모든 사대부들의 꿈은 과거에 합격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수만 명의 응시자들이 모이다가 보니,

과거장이 난장판이 되었던 것이다.

요즘이라고 다를 것이 뭐가 있는가?

지금도 7급이나 9급 공무원 시험이 수백 대 일이고,

낙방하는 사람들은 극한의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

안정된 직장이 공무원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꿈을 향해 매진, 또 매진, 하고 있는 이 시대에

다른 돌파구는 없는 것일까?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도 저렇게 생각해도

다른 돌파구가 별로 없는 것이 이 시대의 특징이다.

몸은 보리수

마음은 밝은 거울

쉬지 않고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이 묻지 않도록 해야 하리.“

신수스님의 게송이다. 그 게송과 같이

저마다 다른 꿈, 다른 소망을 이루기 위해

갈고 닦아야 할, 꿈은

고금古今도 그러했지만 지금只今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면서도,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2017125일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