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5

그 이름 높았던 인왕산 호랑이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산중산담 2018. 4. 26. 20:43

 

그 이름 높았던 인왕산 호랑이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요즘 사람들 중 호랑이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어른도 애도 동물원에 있는 호랑이나 <동물의 왕국>에서 티비로 보는 호랑이만 보았지, 어슬렁거리는 호랑이, 숨어 있다가 순식간에 달려드는 호랑이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 장안에 호랑이가 그렇게 많이 제 집 드나들 듯 오고 가며 피해를 입혔던 시절이 조선시대였고, 그래서 생겨난 말이 인왕산 호랑이. 인왕산 자락에 호랑이 동상이 있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이다.

인왕산仁王山 그늘이 강동江東 팔십 리를 간다라는 속담은 출세한 사람이 있으면 그 덕을 입어 잘 된 사람이 많다는 말이고, “호랑이 들 중에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 없다는 속담은 세상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인왕산 중 허리 같다는 말은 옛날 인왕산 절에 있던 중처럼 배가 부르다는 말이다. “인왕산 차돌을 먹을망정 사돈집 밥은 먹지 말랬다는 말은 아무리 먹고 살기가 어려워도 사돈의 도움을 받기는 싫다는 뜻이며, “인왕산 호랑이가 뭘 먹고 사나라는 속담은 보기 싫은 호랑이도 안 잡아 간다는 말이다.

오랜 역사 속에 수많은 속담을 낳게 했으며, 특히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서울의 산이 바로 인왕산이고, 이 산에는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조선 태종 5(1405) 7월에는 경복궁 내정까지 들어와 횡행하였고, 세조 10(1464) 9월에는 창덕궁 후원에 들어왔으며, 연산군 11(1503) 5월에는 종묘에 침입하였고, 그 밖에 민가에 피해가 실로 많았다. 세조는 친히 세 번이나 백악에 올라가서 호랑이를 잡았으며 또는 시외로 양주 수락산과 고양 버리고개에 나아가서 호랑이를 사냥하였다. 명종 때에 양근 땅에서 30여 명이 호랑이로부터 해를 입었고, 선조 때에는 고양 등지에서 흰 이마의 호랑이가 횡행하여 400여 명이 해를 입었다. 조정에서는 수많은 군대를 출동시켜 호랑이 잡이를 하였으므로, 속설에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가 없다. 머리는 인왕산 호랑이 같다는 말이 지금까지도 쓰이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에 우리나라를 두루 여행했던 영국 왕실 소속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여사의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 호랑이에 대한 글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해가 저문 뒤에 여행하는 것은 한국의 관습에 위배되는 것이다고 전제한 뒤에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호랑이와 귀신에 대한 공포 때문에 사람들은 밤에는 거의 여행을 하지 않는다. 관리의 신분증을 가진 사람들이 부득이 밤에 여행을 할 경우에는 마을에 들러 횃불 가진 사람들의 호위를 부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야행을 할 경우 길손들은 보통 몇몇이 서로를 끈으로 묶고 등롱을 밝히고 횃불을 흔들며, 고함을 지르고 꽹과리를 치며 길을 간다. 한국 사람의 호랑이에 대한 공포는 너무나 유명해서, ‘한국 사람은 일 년의 반을 호랑이를 쫓느라 보내고 나머지 반을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의 문상을 가느라 보낸다.’는 중국의 속담이 거짓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W.E.그리피스가 1890년대 무렵에 한반도의 구석구석을 여행한 뒤에 지은 은자의 나라 한국이라는 책에는 조선 사람들은 반년 동안 호랑이를 사냥하고 나머지 반년동안에는 호랑이가 조선 사람을 사냥한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후기까지만 해도 호랑이에 대한 공포감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조선 숙종 때의 실학자 홍만선(洪萬選)이 농업과 일상생활에 관한 광범위한 사항을 기술한 책인 산림경제(山林經濟)에는 밤에 산길에서 노래를 하거나 큰 소리를 내지 말라. 범이 들으면 쫒아와 잡아먹는다고 실려 있는데 호랑이는 아무나 잡아먹지 않았다고 한다. 죽은 사람이나 죽은 고기는 안 먹고 병든 사람이나 인신한 여자도 안 먹었으며, 상주(喪主)는 물론이고 스님이나 술에 취한 사람도 잡아먹지 않았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동물인 라는 가상의 동물을 만들어 내어 어디를 갈 때마다 퉤 퉤라고 침을 뱉으며 갔을까? ‘라는 말은 어쩌면 해태의 변질된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악명 높았던 호랑이가 190년대 일제의 유해조수구제조치(有害鳥獸驅除措置)’로 멸종되면서 범 없는 골에 토끼가 스승이라는 속담처럼 호랑이나 표범 없는 산골마을에 멧돼지가 늘어나면서 인명을 해치거나 농작물에 집중 피해를 입히고 있다.

범이 사람을 먹는 것은 헤아려도 사람이 저희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만큼은 많지 않다고 박지원이 호질에서 말했던 것처럼 사람이 사람을 서로 죽이고 죽는 것은 변치 않는 세상 풍경이다.

범보다 더 가깝고도 무서운 것이 자동차라서 일 년 중 며칠은 자동차 사고를 당한 사람의 문병을 가거나 조문을 가는 것이 연례행사가 되었으니, 살다가 보면 모든 것이 뒤집어 지는 경우도 많이 있다. 옛날에는 호랑이에게 사람이 잡혀갔는데, 요즘에는 호랑이를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졌으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 요즘 집집마다 애완견이나 고양이를 키우듯 호랑이를 안방에서 키우면서 아이고, 내 새끼! 하는 그런 시대가 도래 할 수 있을까? 그냥 심심해서 웃자고 한 말인데,

 

 

 

20171226,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