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5

당신은 어떤 유언을 남길 것인가?

산중산담 2018. 4. 26. 20:46

 

당신은 어떤 유언을 남길 것인가?

 

당신은 살면서 생의 마지막에

살아온 생을 함축한 아니, 생의 마지막 말,

유언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요?

유언, 너무 이른 말일 수도 있고,

아니면 너무 늦은 생각일지도 모르는 생의 마지막 말에 대한 이야기를

니체가 진지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저 가공할 인간,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을 극복하고 침묵할 수 있었던 인간이 죽음의 순간에 얼마나 경솔했는지를, 그는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삶은 가면을 쓴 희극에 지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국가의 아버지로서, 옥좌의 지혜로서 평생을 살았지만, 실은 모든 것이 거짓이었던 것이다. 그는 죽기 직전친구의 손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친구여, 나를 축복해다오. 연극은 끝났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흉내 낸 네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배우로써 죽는다!” 그들의 죽음은 배우 적인 허영이었다. 그들의 유언은 싸구려였다. 그들의 죽음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비웃었다. 오직 티베리우스 황제만이 침묵으로써 죽음을 맞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배우가 아니었다. 그는 황제의 가면을 쓰고 연기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 당당하게 고뇌했을 뿐이다. 대체 그는 무엇을 생각했던 것일까? 티베리우스황제는 어째서 죽음에게 마지막 대사를 들려주지 않았을까. 티베리우스 황제는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삶이란 긴 죽음에 불과하다. 나는 수많은 인간들의 목숨을 단축시켰다. 나의 연극은 단 한 번도 그들의 박수를 받지 못했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했어야 했다. 그들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았어야 했다. 나는 다만 관찰자로서의 삶을, 관찰자로서의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티베리우스의 황제가 죽음에게 이 마지막 대사를 들려주려고 했을 때 그의 신하들은 베개로 황제의 얼굴을 덮어버렸다.“

니체의 <즐거운 학문>에 실린 글입니다.

언제 가도 가야하는 것이 죽음의 길입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무한한 연습이 필요하고, 마지막 시간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유언을 남겨야 할지도 모릅니다.

침묵의 유언, 그게 나은지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을 남기고 가는 유언이 좋은 것인지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이런 글을 남긴 니체가 침묵의 유언을 선호한 것인지 아닌지 그 또한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뚜렷한 침묵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입을 열고 말을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지요, 역설적이지만 오히려 그 말이 맞을 때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상황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다르게 표출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죽기 직전에 여러 형태의 유언을 남깁니다.

연극은 끝났다.” “나에게 빛을” “한 판 잘 놀다 갑니다.”

이렇게 저마다 다른 여러 유언들이 있습니다.

어떤 유언이 좋을지,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죽어야 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금은 준비해야 하는 것,

그것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언을 남길 시간도 없이 느닷없이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시간을 빌려서 그 분들의 명복을 빌고 심심한 애도를 표합니다.

당신은 어떤 유언을 준비하고 있는지요?

 

 

 

20171227일 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