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금강에서 마음에만 보이는 겨울 꽃을 볼 수 있을까?
나라 곳곳에 팔경이 많이 있다.
강원도의 아름다운 여덟 개의 경치가 관동팔경이고,
얼마 전에 다녀 온 단양에도 팔경이 단양 팔경이 있으며,
백제의 마지막 수도 부여에도 팔경이 있다.
‘미륵보살상과 탑하나 덜렁 남은 정림사지에서 바라보는
백제탑의 저녁노을,‘ ’수북정에서 바라보는 백마강가의 아지랑이,‘
‘저녁 고란사에서 들리는 은은한 풍경소리,’
‘‘노을 진 부소산에 간간이 뿌리는 가랑비,’
부소산 낙화암에서 애처로이 우는 소쩍새, ‘
‘백마강에 고요히 잠긴 달,’ ‘구룡평야에 내려앉은 기러기 떼,’
‘규암나루에 들어오는 외로운 돛단배.’가 여덟 개의 아름다운 경치다.
아름다운 경치라기보다 구슬프고 쓸쓸한 부여팔경은
부소산과 낙화암 그리고 그 아래를 흐르는
백마강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진 경치이다.
그곳을 찾아가는데 때마침 겨울이다.
“나라는 부셔져도 산과 강은 남아 있다.(國破山河在)“
중국의 옛 시인 두보杜甫의 시와 가장 어울리는 곳, 부여,
날이 부우옇게 밝았다고 해서 이름조차 ‘부여’인 옛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을
꽃 없는 계절 겨울에 겨울 꽃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길,
내가 가는 그곳에 어떤 사물들이 꽃이 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15세기, 일본에서 이름난 하이쿠 시인 잇큐가
으슥한 산 속에서 떠돌이 중을 만났다.
중이 물었다.
“불법이 어디 있는가?”
잇큐는 저고리 앞섶을 내밀며 말했다.
‘내 가슴 속에 있다.“
그러자 중이 날 선 단도를 들이대며 물었다.
“정말로 있는지 가슴을 열어봐야겠다.”
그 말을 들은 잇큐가 시 한수를 읊었다.
“때가 되면 해마다 피는 산 벚꽃,
벚꽃 나무 쪼개 봐라 벚꽃이 있는가.“
길에도, 강에도, 그리고 궁남지와 흐르는 강물에도
내가 기다리는 꽃은 없을지 모른다.
다만 가슴 속에 숨겨진 꽃들이 백제의 옛 수도인 부여의
한 귀퉁이에서 살포시 고개 쳐들고
‘내가 꽃이다.’ 라고 소리칠 지도 모르겠고,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면
순간순간 눈에 비치는 사물들이
온통 총천연색의 꽃으로 화해서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까?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그 순간이 꽃이라면 산도, 강도, 사람도
그리고 흐르는 시냇물도 모두다 꽃이 될 것이다.
“떨어지는 꽃은 뜻이 있어 흐르는 물을 따르건만,
흐르는 물은 무정타, 떨어진 꽃 흘려보내네.“
선가仙家의 선시仙詩 한 수가 무심하게 흐르는 금강을 따라 거닐면서
지나간 추억들을 한 올, 한 올 떠올려 봐야겠다.
2018년 1월 6일 토요일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 것도 못하는 자의 비애, (0) | 2018.04.26 |
---|---|
너무 오래 책을 읽었더니 그만 지쳤다네. (0) | 2018.04.26 |
주고, 받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을, (0) | 2018.04.26 |
지금도 내 마음 속에는 강물이 흐르고 (0) | 2018.04.26 |
우리나라 5대강에 박물관을 만들고, 강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서 걷자. (0) | 2018.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