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5

주고, 받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을,

산중산담 2018. 4. 26. 20:55

 

주고, 받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을,

 

내가 단 것에 대해서는 마치 성성(우랑우탄)이 술을 좋아하고, 원숭이가 과일을 즐기는 것과 같으므로 내 친구들은 모두 단 것을 보면 나를 생각하고 단 것이 있으면 나를 주곤 하는데, 초정(박제가)만은 그렇지 못하오.

그는 세 차례나 단 것을 먹게 되었는데, 나를 생각하지 않고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이 나에게 먹으라고 준 것 까지 수시로 훔쳐 먹곤 하오, 친구의 의리에 있어 허물이 있으면 그 잘못을 나무라는 법이니, 그대는 초정을 깊이 책망해 주기 바라오.“

이덕무가 박지원의 제자이며, 조선 후기 4대 문장가 중의 한 사람인 이서구李書九 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는 이서구에게 보낸 것이지만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독백 같은 글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있고, 그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빼앗아 먹는다면 서운하지 않겠는가? 이덕무는 유독 조용하고 다소곳하며 근엄한 선비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는 사람인데,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을 스스럼없이 늘어놓을 것이라고 어떻게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런 이덕무는 유독 단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 단것에 얽힌 이야기가 하나 더 전한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친구가 단감 백 개를 보내주자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냈다.

내가 평소에 단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그대가 단 감 백 개를 보내주었으니, 나는 그대를 백 번 떠올릴 것이네. 감을 한 개 먹을 때마다 한 번씩 그대를 떠올릴 것이니, 그대가 백 개를 주었으니, 백번 생각하게 되지 않겠는가?”

백 개를 보내 주었으니, 백 번을 생각한다. 얼마나 가슴 에이는 말인가.

오래 전 일이다. 이덕무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금강을 따라 걷던 시절이 구월 중순을 넘어서였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익어가는 대추는 바라만 보아도 입에 단 내가 나는 과일이다. 길을 걷다가 주인이 안 보이면 몇 개 따서 주머니에 넣고 가면서 하나씩 꺼내어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게 대추를 먹으며 걸어가는데, 함께 동행 한 도반이 그런 나를 보고 부러워서 그랬는지 대추를 따 먹다가 주인에게 들켜 한 소리 듣고 있었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나를 가리키며 일르는 것이 아닌가?

저 선생님은 나보다 더 따먹었는데요,”

놀란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나는 안 따먹었는데요.”

그래, 내가 따서 그 도반에게 주어서 같이 먹었어야 하는데, 서리도 초보인 그 도반이 얼마나 부러웠으면 서리의 A.B.C도 모르면서 하다가 들켜서

대추나무 주인에게 혼나다 나를 일렀을까?

주고받음이 이와 같은데, 살다가 보면 서로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은 채 살아가는 나날, 그 무심한 나날이 금세 닥치는 것이다.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을 것인가? 살아가면서 심히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주고 받음이다.

남은 생애, 살아가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얼마나 주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201815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