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 앉아 하늘을 보고, 하늘을 작다고 하는구나.
고려 때의 학자인 목은 이색이 중국에 들어가 과거에 급제했다.
이때 중국의 학자인 구양현歐陽玄이 이색이 고려 사람인 줄 알고서 경솔히 여기어 글 한 편을 지어서 조롱했다.
“짐승의 발자취와 새의 발자취가 어찌 중국에 와서 왕래하느냐?‘
이색은 즉석에서 시 한편을 지어서 대응하였다.
“개 짓고 닭 우는 소리가 사방에 들려오고 있다.”
구양현이 ‘짐승의 발자취와 새의 발자취가 어찌 중국에 와서 다니느냐?‘ 라고 한 것은 우리나라를 극도로 멸시하여, ’너희 새나 짐승 같은 것들이 어찌 감히 우리나라 중국 땅을 더럽히느냐‘ ’하는 글이었다.
그러나 그 말에 기죽지 않고 응대한 이색은 글이 오묘하기 이를 데 없다. ‘개 짓는 소리, 닭 우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이 글은 ‘우리나라를 개나 짐승으로 취급한다면 당신네 나라 중국 역시 개나, 닭이나 우리나라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라는 말이었다.
구양현은 기어이 이색을 난처하게 하고자 글 한 편을 또 지었다.
“잔을 가지고 바다로 들어가니, 바다가 큰 줄 알겠느냐?”
이 색은 다시 시 한편을 또 지었다.
“우물에 앉아 하늘을 보고, 하늘을 작다고 하는구나.”
구양현은 이색의 글을 보고 크게 경탄하여 마지않았다.
이 때 이색과 성명이 같은 사람이 있었다. 이것을 비유하여 어느 중국 사람이 이색을 조롱하는 말로 다음과 같은 글을 지었다.
“인상여와 사마상여는 이름은 상여지만, 성은 상여가 아니다.”
그러자 이색이 즉시 글 한 편을 지었다.
“위무기와 장손무기는 옛날에도 무기요, 지금에도 무기다.”
이색의 글을 본 그 사람은 일어서서 절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방에 이런 글재주를 가진 사람이 있으니, 우리가 공경하지 않을 수 없다.”
홍만종의 <순오지>에 실린 글이다.
홍만종은 이 글의 말미에 다음과 같은 글을 덧붙였다.
“아아! 목은의 이 세 차례 화담한 글은 다만 글의 대구로서만 용할 뿐이 아니라, 실로 문자의 이치가 모두 구비해서 하늘의 조화로 자연을 이루어 놓은 것과 같으니, 실로 그는 소동파나 그 밖의 문장가들과 대등하다 하겠다.”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목은 이색, 고려 말의 세 사람 문장가들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글을 썼던 이색은 친구인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그 길에 합류하지 않고, 절의를 지켰다,
그 뒤 여주 신륵사 옆, 여강에서 뱃놀이를 하 던 중 이방원이 보냈다고도 하고, 정도전이 보냈다고도 하는 술 한 잔을 마시고 곧 바로 죽었다.
조선시대 최초의 의문사라고 할 수 있다.
“소리를 안 내려니 가슴이 답답하고
소리를 내려하니 남의 귀 무섭구나.
이래도 아니 되고 저래도 아니 되니
에라, 산속깊이 들어가
종일토록 울어나 볼까?“
아들이 비명에 죽은 뒤 산 속에 들어가 하루 종일 울고서 지은 이색의 시 한 편이다.
사람은 가고 없어도 그가 남긴 시들은 남아 지금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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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31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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