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인각사에서 지난 시절을 회상하다.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그래서 기억도 분명하지 않으면서
가물가물한 그리움, 그것을 추억이라고도 부르고, 화상이라고도 부르는,
내가 그곳에 갔을 때,
그 때는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면서
떠올리는 사람들의 얼굴도 이름도 이른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아련하기만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그 때 그곳에 갔었고,
그 뒤에도 나는 몇 번인가를 그곳에 와서 그때를 추억했었다.
천 여 년의 세월 이전에 일연스님이 머물렀었고,
우리민족의 자랑인 <삼국유사>를 집필했으며,
“나 오늘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씀 하신 뒤 입적했던 곳,
그곳을 오랜만에 찾아갔다.
그 때가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세월 저편의 일이다.
합천 해인사 승가대학으로부터 답사에 강사 요청을 받고,
해인사 승가대학의 학승 30여명, 그리고, 나를 비롯한 불교학자들과
일반인 몇 사람이 일연스님의 자취를 따라 4박 5일간,
운문사, 기림사, 흥륜사, 은해사를 비롯한 여러 절들을
답사 했었다.
엄숙하고, 진중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했던 답사는
재기발랄하고, 열정적이었던 학승들 때문에
매 순간이 즐거웠고, 활기가 차 있었었는데, 그 마지막 답사지가
이곳 인각사였다.
그 때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 그 때 그 사람들과는
별개의 사람들과 또 다른 상태로 찾아온 인각사는
그 때나 별반 다름없이 답사 객들을 맞고 있으니,
변하는 것이 세상인가, 사람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세상은
유상有相과 무상無相 사이를 오고 가는 시계추 같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랬을까?
도연명陶淵明은 그의 시 <잡시雜詩>에서
가고 오는 세월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인생은 뿌리 없이 떠다니는
밭두렁의 먼지같이 표연한 것
바람 따라 흐트러져 구르는
인간은 원래가 무상한 몸
어찌 반드시 골육만이 육친 일 것이냐.
기쁜 일 있으면 마땅히 즐겨야 하니,
한 말 술로 이웃 불러 모은다.
한창 때는 다시 오지 않고,
하루에 두 번 아침을 맞기는 어렵다.
때 맞춰 부지런히 힘써야 하니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순간순간을 부지런하게 최선을 다해 잘 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아니다, 가끔씩 내 삶 자체에 회한이 들어서
이렇게 저렇게 고뇌에 빠지기도 하는 나,
그래서 틈이 나는 대로 떠나고 또 떠나는 것이
나의 유일한 낙이다.
아름다운 석탑 금성 탑리 오층석탑을 보고서 다시 찾은 인각사,
그 때 나와 함께 이 절을 찾았던 그 스님들은
지금쯤 어느 절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보내고 있는지,
그 때 나와 함께 이절 저 절을 순례했던 도반들은
지금 어느 곳에서 어떤 형태의 삶을 이어지고 있을지,
권정생 선생이 살았던 집에서 대산 종택으로, 고운사에서
탑리 오층석탑으로, 조문국 릉에서 인각사로,
군위 삼존 석굴에서 한밤 마을로 이어지던 오늘 하루,
이 생에서 맺은 인연의 고리로 얽히고설킨 우리들의 인연,
2018년 1월 28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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