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5

고 군산 열도에서 낯설음으로 보낸 하루,

산중산담 2018. 4. 27. 13:14


고 군산 열도에서 낯설음으로 보낸 하루,




강가에 말을 세우고 배를 기다리네.

파도를 두른 물안개 띠가 영원한 슬픔 같네.

산이 평지 되고 물이 말라버리는 날

인간의 이별이란 비로소 멈출 수 있을까?“

 

통일 신라 때의 문장가인 최치원의 시 한 편이다.

산이 평지가 되고, 물이 말라버리는 날,’이라고

최치원이 노래했던 시 구절보다 더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섬에서 섬으로 다리가 놓여져

배가 아닌 자동차로 들락날락 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비응도에서, 신시도로. 신시도에서 무녀도,

무녀도에서 선유도를 거쳐 장자도까지 가는 신기한 일이,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꿈도 꾸지 않았던 일들이,

 

멀리서 섬을 보며, 수많은 생각의 나래를 펴던 섬들이,

배를 타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갔던 섬들이

풍랑이나 태풍을 만나면 며칠간이고, 붙잡혀 있던 섬들이

다리와 다리로 연결되어 금세 갔다가 금세 돌아오는

편리함때문에 낭만과 추억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섬이 생기고서부터 전해 내려온 섬에 얽힌 이야기도,

이름들에 얽힌 이야기도, 그 빠른 변화 때문에

현실이 아닌 신화가 되어 버린 것이다.

 

오래 전에 섬이었다가 섬이 아닌 육지가 되어버린

내초도의 금돼지 굴에 최치원과 그 어머니의 일화가 있다.

군산 비행장이 들어선 옥구면 부근에서 최치원의 어머니가

돼지머리를 한 괴물에게 납치되어 갔다가

금 돼지 굴에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그게 바로 최치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경주 최씨를 돼지 최씨라고도 부른다.

옥구읍 상평리의 자천대는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돌아왔을 때

나라 인심이 흉흉해지자 이곳 바닷가에서 홀로

바다를 바라보며 시름을 달랬다는 곳이다.

군산의 고군산 열도에는 유인도가 열아홉 군데가 있고,

무인도는 마흔 아홉 개가 있다.

예로부터 조기잡이와 멸치잡이로 이름이 높았던 고군산 열도는,

명도, 말도, 신시도, 야미도,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 방축도 등의 섬이 있다.

고군산 열도의 중심이 되는 선유도는

깨끗한 백사장과 저녁에 노을이 지는 모습,

망주 봉의 바위에서 바라보는 바다 경치, 기러기가 노니는 모습,

신시도의 달빛, 말도의 등대,

고군산열도의 산봉우리를 선유 팔경으로 꼽는다.

야미도는 원래 밤나무가 많아서 밤섬으로 불리다가

이 뱀으로 변하며 뱀섬이 되었고, 그러다가 행정구역 개편 시 뱀을,

밤 야자로 바꾸고, 밤이 맛이 있다고 하여

맛 미자를 합하여 야미도가 된 것이다.

장자도는 큰 부자가 있어서 장자도라고 불리었는데,

오뉴월에 갈치와 조기가 많이 잡히던 곳으로,

1935년에 고군산 열도에서 최초로 초등학교가 세워진 곳이다.

옛날 고려시대에 이 섬에 선비부부가 살았다.

남편이 과거를 보려고 이 섬을 떠나자 부인이 장자바위에서

남편이 장원급제를 위한 기도를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장원급제를 해 가지고

화려한 옷을 차려 입은 젊은 여자와 함께 오는 것이 보이자

충격을 받은 그것을 부인이 그 자리에서 금세 돌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사실은 남편이 역졸들과 함께 오는 데 부인이 착각을 한 것이었다.

그 여인의 슬픈 사연을 안 마을 사람들이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다가

지금은 사라져 버렸다.

섬의 형상이 날아가는 기러기처럼 생겼다고 해서 비안도,

매가 날아가는 형국이라서 비응도,

지대가 깊으므로 짚은 골이라고 불렀던 신시도,

경치가 아름다워서 신선이 노닐었다는 선유도,

조선시대에 나라의 소를 놓아서 길렀기 때문에 오식도,

산 가운 데에 있는 무녀봉의 이름을 따서 지은 무녀도가

고군산 열도를 수놓았던 섬의 이름들이다.

어청도에는 전횡의 묘가 있는데, 초한 때 한신이 제나라를 멸망시키고

스스로 왕이 되자 제나라 왕이 신하 500여명을 데리고

이 섬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그를 기리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있다.

 

이러한 전설과 살아 숨 쉬는 이야기들이 남아 있던 고군산 열도가

섬 아닌 섬이 되었고, 가는 곳곳마다 개발의 열풍에 휩싸여, 불과

몇 년 전에 보았던 고즈넉함이 아득한 전설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변하고 또 변하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급속한 변화의 물결 속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바라보았던,

고 군산 열도, 어쩌면 내 마음과 발길이 지난 시절처럼 자주 향하지는

않을 것 같은 안타까움,

그것이 나만의 생각일까?

 

2018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