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다시 낙동강으로 가리라.
오래 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습니다.
그 사이 16년도 넘은 세월 저편, 2003년 4월의 일입니다.
그때도 나는 낙동강 변을 걸었고,
다시 또 낙동강 천 삼백리 길을 걷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
그 때 내 마음 속에는 어떤 강물이 흐르고 있었을까요?
“낙동강에 다녀왔습니다.
태백의 준령에는 흰 눈이 하얗게 덮여
그래도 봄의 전령인 생강나무는
산수유 꽃 닮은 노란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가지를 꺾으면 생강 냄새를 선사하는 생강나무를
그곳에선 동백꽃이라고 부르지요.
석양에 도착한 병산서원의 만대루에 올라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일상처럼 떠나고 돌아오는 내 삶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 역시 유장하게 흐르는 저 강물에 비한다면
아주 작고 작은 미물에 지나지 않을 것인데
가끔은 사람이 한울님이라는 동학사상을 빗대어
나를 드러내지는 않았는지요,
몇 잔술에 취해도 정신은 더욱 말짱해지고
영롱한 별빛 속에서 밤은 깊어만 가고...
존 레논이 노래 부릅니다.
"세상이란 하나의 헛된 수난이라네.
그대는 아는가,
아아!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존재인 그대여,
그대는 아는가,
그대도 역시 하나의 헛된 수난이라네.
아아! 어쩌면 그렇게도 나와 똑 같이."
아아!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대가
하찮은 존재라면
그대를 생각할라치면
벌써 이슬방울처럼 눈물부터 맺히는 그대가,
헛된 수난의 세월을 살고 있다면
그리하여 세네카의 말처럼
"인간은 누구나 조금 씩 조금씩 모두
매일 자살하고 있는 것이다"
라는 말처럼 살고 있다면,
그러면서 도피처럼 매일 떠났다가 다시 되 돌아오는
그대와 나의 삶이
진실일수도 아니면 거짓일 수도 있다면 ...?“
그 때도 물음표이고, 지금도 역시 물음표가
삶입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안다는 것이나
모른다는 것, 하늘과 땅의 거리만큼 아득한 것과 같이 보이지만
어쩌면 똑 같은 게 아닐까요?
알려고 하지도 않고, 모른다고도 하지 않고, 그냥 무심하게
태백, 그 크지도 넓지도 않은 황지천의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서 가다가 보면
봉화를 지나고 안동에 들어가면서 넓고도 넓은 강물이 되고,
그 강물을 따라 걷다가 보면 대구, 밀양을 지나서
내 마음도 어느 덧 강물이 되어
부산 앞 바다로 들어가, 바다가 되지 않을까요?
2018년 2월 14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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