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맡겨진 일을 잘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인데,
가끔씩 세상을 들여다보면 신기할 때가 있다. 가까운데서 보면 보이지 않는데,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아귀가 맞지 않을 것 같은데도, 어디 한 군데 어긋나지 않고, 돌아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 우주의 이치다.
바둑판의 원리 같다고 할까? 바둑을 잘 두지 못하는 사람이 잘 두는 사람들의 바둑을 훈수를 두는 경우, 그것이 바로 세상의 이치고, 그래서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는 등의 속담이 생긴 것이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군사를 이끌고 오장원으로 나와 위나라의 사마의에게 싸움을 걸었다. 하지만 사마의가 꿈쩍도 않고 나오지를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공명이 사자를 시켜 사마의에게 편지와 함께 상자를 보냈다.,
사마의가 그 상자를 열어보자 부인네의 관과 옷이 들어 있고, 편지의 내용은 ‘싸움에 나서지 않고, 굴속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아낙네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하면서 어서 나와서 한 판 싸움을 하자는 글이었다.
사마의는 화가 치밀었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공명이 보내온 사자를 잘 대접하게 한 뒤 사자에게 슬쩍 물었다.
“공명은 어떻게 먹고 자는가? 그리고 그가 맡은 일의 번거롭기와 단출함은 어떤가?”
사자가 별 생각 없이 아는 대로 대답했다.
“승상께서는 새벽에 일어나시고 밤이 늦어야 잠자리에 드십니다. 또 스무 대 이상 매를 때릴 일은 모두 몸소 맡아 하시며, 잡수시는 것은 하루 몇 홉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자 사마의는 곁에 있는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공명이 먹기는 적게 먹고 하는 일은 많으니 오래 버티겠는가!“
“그 말을 듣고 돌아간 사자가 공명에게 전했다.”
“사미의는 여자의 머리 수건과 옷을 받고 그 글을 읽고 난 뒤에도 별로 성내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다만 승상께서 침식을 어떻게 하시는지, 일은 얼마나 맡고 계신지 따위만 물었습니다. 제가 아는 대로 대답해 주었더니 그가 말하기를 ‘먹는 것은 적고 일은 많으니 오래 살 수 있겠는가?“‘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공명은 깊이 탄식하고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사람은 나를 너무 깊이 아는구나.”
“공명의 말은 사마의를 화내게 하여 싸움터로 끌어내기는커녕 자신의 실상만 들켜버린 것에 대한 후회가 서려 있었다. 곁에 있던 주부 양옹이 공명을 보고 간곡히 말하였다.”
“제가 보기에 승상께서는 몸소 모든 장부를 일일이 살피시어 꼭 그래야할 것도 없는 일에까지 마음을 쓰고 계십니다. 무릇 다스림에는 중요한 게 하나 있으니, 그것은 무엇보다도 아래 위가 서로의 일을 침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집안의 살림살이에 견주어 말한다면, 남자종에게는 밭갈이를 맡기고, 여자종에게는 밥 짓기를 맡겨 사사로운 일을 돌아볼 틈이 없게 함으로써 구하는 바를 넉넉히 알게 됨과 같습니다.
집주인은 다만 가만히 들어 앉아 베개를 베고 맛난 것이나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집주인이 몸소 나서서 모든 일을 다 하려 든다면 몸은 피곤하고 정신은 어지러운데, 끝내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
이는 그 앎이 종놈이나 종년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집주인이 도道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옛 사람은 앉아서 도를 논하는 사람을 일러서 삼공三公이라 하고, 짓고 행하는 사람은 사대부라고 하였습니다.
옛적에 병길丙吉은 소가 기침하는 것은 걱정해도 사람이 길가에 죽어 넘어져 있는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진평은 자기 가 쌓아둔 곡식과 돈의 양울 몰라 따로 맡은 사람이 있다고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승상께서는 작은 일까지 몸소 맡으시어 하루 종을 땀을 흘리고 계시니 어찌 힘드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사마의의 말은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은 8월 13일 공명은 쉰 넷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했다. 한 때 빼어난 지혜와 계략으로 세상을 우지좌지 했던 제갈 공명도 자기 자신의 운명은 알지 못한 것이다.
‘지식이 많으면 걱정도 많다.’는 말과 같이 스스로가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마음 놓고 일을 맡기지 못하고 세세한 것 까지 마음을 쓰다가 자기 한 몸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공명이 그런 사람이었다. 유비도, 관우도, 장비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모든 것을 스스로가 헤쳐 나가야 하다가 보니, 일이 너무 과중하게 맡겨졌고, 그것을 스스로 하다가 제 명을 살지 못하고 일찍 간 것이다.
오늘 날에도 그런 경우들이 많다. 누구 한 사람 믿을 수 없고, 스스로가 해야 직성이 풀리다가 보면 스스로를 너무 소모하여 제풀에 지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신이 아닌 사람의 일이라 가끔씩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운수가 사나워서 그럴 때도 더러 있다.
더도, 덜도 아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저마다의 역할이 있고, 그래서 저마다 이 세상에서 맡겨진 일을 잘하는 것이 세상을 잘 사는 첩경이 아닐까?
2018년 2월 12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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