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뒷산, 덕태산에 눈이 하얗게 덮여 있을까?
“아저씬 고향을 가지고 계세요?”
나는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향이라니?”
“네, 고향 말이에요. 고향,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기서 자기의 괴로운
삶을 위로받고 살기 마련이라는 고향이라는 것 말입니다.”
작고한 소설가인 이청준 선생님의 <귀향연습>이라는 책에 실린 글이다.
고향, 생각하면 아득하고도 안개 속 같이 아스라한 고향이
지척에 있으면서도 너무 먼 추억 속에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할 때가 있다.
어쩌다가 고향에 가도, 고향이 선뜻 가슴 깊이 다가오지 않는 것은
모슨 연유일까? 집도 절도 없이 사라진 집터, 그 마저도 콘크리트로 포장된.
집터, 추억도 아니고, 신화처럼 사라져 버린 그냥 ‘터’ 만 남아서 그런 것일까?
“잘 있어라, 옛집, 마지막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한 번
옛집을 뒤 돌아 보았을 때, 그 너머 서산마루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지는 해가 있었다.”
이문구 선생의 <월락서산月落西山>에 실린 몇 소절이다.
이문구 선생인 집이라도 남아 있었다는데, 그런 집조차도 없는
고향에 갔다 돌아 올 때 나 역시 이문구 선생처첨,
잘 있거라, 하고 돌아오긴 하지만 그 마음은 다른 마음인 것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고향은 누가 뭐래도 고향이다.
그래서 가끔씩 고향 쪽 하늘만 바라보아도
손에 잡힐 듯, 물 밀 듯 다가오는 추억들, 그래서 왕유王維는
그토록 가슴 미어지는 시 <고향 매화梅花>를 남겼던가?
“당신은 제 고향을 지나오셨지요.
그렇다면 고향 소식 아시겠네요.
오실 때 제 집 창 앞
한매寒梅가 피었던가요.“
누구의 소식도 묻지 못하고,
그저 봄 꽃 소식으로 고향의 안부를 묻는 시인의 마음이여!
정유년의 마지막 날, 신 새벽에 일어나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다가 창문을 열고
나도 왕유처럼 어둔 고향 쪽을 바라보며 고향의 안부를 묻는다.
“내 고향 뒷산 덕태산에
지금도 눈이 그렇게 하얗게 덮혀 있던가요?”
내 마음 속에는 지금도 눈이 내리는데,
내 고향 그 빈터에도 눈이 내리고 있을까?
2018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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