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 날아간 하늘 아래 봄꽃이 피어나고,
지금도 그렇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손재주가 없었다.
연을 만드는 것도, 눈썰매를 만드는 것도 시원치 않아서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장작 중에 반듯한 나무를 골라서 낫으로 깎고 다듬어서
굵은 철사를 잘 잇대어야 하는데, 그것이 왜 그렇게 어려웠던지,
겨우 만들어서 물이 든 논으로 간다. 자연스레 조성된 눈썰매장이 그곳에서
썰매를 타는 것이다.
그런데, 몇 미터도 못 가서 썰매는 주저앉는다.
철사가 그 썰매에서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잘도 타는데, 그냥 그 자리 우두커니 서서
썰매를 타는 아이들만 바라보던 어린 시절,
그 뿐만이 아니다. 다른 아이들은 잘도 만들던 연을 왜 그렇게
잘 만들지를 못했던지. 겨우 만들긴 했지만
날리는 가술이 시원치 않아서 그런지
몇 미터 하늘을 향해 올라가다가 곤두박질을 해서 땅 위에 내려앉던 그 연,
그랬다. 설이 지나고 나면 정월 대보름까지가 연을 띄우는 시기였다.
하늘 높이 날아오른 연, 그 연줄을 끊는 것을 액막(액맥)이라고 하였다.
연줄에서 끊어진 연은 하늘 높이 올라가 그 흔적도 보이지 않고,
하늘만 더 청청하게 푸르던 그 때 그 시절,
“내 어린 날, 아슬한 하늘에 뜬 연 같이,
바람에 깜박이는 연실 같이,
내 어린 날, 아슴풀하다. 하늘은 파아랗고 끝없고,
편편한 연실은 조매롭고,
오! 흰 연, ....
김영랑 시인의 <연>이라는 시 구절 같은 하얀 연도 있지만,
온갖 형형색색의 연들이 하늘을 휘덮었다.
노란 연, 파란 연, 붉은 연, 그리고 회색 연,
그 연들이 울긋불긋 흡사 가을 산에 단풍이 든 것처럼
떠다니며 겨울 햇살에 졸던 그 시절,
지나고 나니 그 시절이 아릿한 추억이 서린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서 하늘을 쳐다보면,
수묵색의 게연이나, 담홍색의 지네연이 눈에 뜨인다.“
노신의 시와 같은 겨울 하늘의 연,
그 연이 하늘 높이 날아간 그 하늘 아래에,
쑥이 돋고, 제비꽃, 개불알꽃이 피고,
이름도 모르는 봄꽃들이 무더기로 피어났었다.
저것 봐, 저것 봐, 부끄러움도 모르고 저렇게 피는 꽃 좀 봐,
그렇게 피는 꽃을, 유치환 시인이 사랑했던 시조시인
이영도 시인의 오빠인 이호우 시인은 <개화>라는 시를 남겼다.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아침에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아려 눈을 감네.”
너무 추워서 올 것 같지 않던 봄,
그 봄이 오는 소리 들리고,
얼음장 밑으로 물 흐르는 소리 들리고,
꽃 피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린다.
툭툭 터지는 봄꽃 터지는 소리가,...
2018년 2월 17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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