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5

길에서 길을 만나고, 길에서 세상을 만나는 경이, 등등

산중산담 2018. 4. 27. 13:21


길에서 길을 만나고, 길에서 세상을 만나는 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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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천천히 걷는다.

흐르는 낙동강을 벗 삼아, 강물 너머로 보이는 산을 벗 삼아,

하염없이 걸어갈 수 있다는 그 사실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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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에서부터 흐르는 강물이 거문소를 지나고,

봉화에 접어들고, 승부로 가는 길,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무엇을 보여줄까?

길에서 검객을 만나거든, 너의 검을 보여주고,

그가 시인이 아니거든, 너의 시를 보여주지 말라.

여우는 사자의 무리에 들 수 없고,

등불은 해와 달의 광명에 견줄 수 없다.“

<전등록>에 나오는 목주 스님의 어록처럼,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고 그냥 미소만 지으며 지나가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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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무망한 일이지만 먼 길을 떠날 때,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출발할 때가 있다.

길에서 만나는 만남은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과 같이,

금세 잊혀지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것을 경계한 옛 사람의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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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환대를 받으면서 편력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산란해져 안정을 이루기 어렵다.

여러 사람에게서 공양 받는 일을 괴로움으로 알고,

여기저기 교제하는 일을 즐기지 말라, 문전에 서서

탁발로 얻는 것을 양식으로 삼고,

소의 배설물로 만든 것을 약으로 삼으며, 나무 밑을 침상으로,

누덕누덕 기운 것을 옷으로 삼는다.

이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을 사방승가四方僧伽라 한다.”

<장로게>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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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물, 모든 일들을,

한 가지도 사소한 것이라 여기지 않고,

마음에 담아 가지고 가다가 보면 부처님이 말한 그 경이로움이

가슴 안에 가득 안겨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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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강물이 바다에 이르면 본래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다만 한 가지 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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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하나하나의 지류가 모이고 모여

겸손하게 낮은 곳으로 흐르다가 보면 만나는 경이

그 경이가 화엄의 바다로 들어가서 다시 영원회귀를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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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 자체가 하나의 가르침이다.

언제나 한 겨울 개울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듯 걸으라.

물이 아주 차갑기 때문에 천천히 깨어서 걸어야 한다.

물살이 아주 빠르기 때문에 정신을 차려야 한다.

개울의 돌에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에,

한 발 한 발 지켜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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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말씀을 가슴 가득 채우고

한 발 한 발 걸어갈 낙동강,

그 강물소리가 그리움처럼 들리는 이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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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23, 금요일

 

 

일상의 친근함이 무너지는 소리 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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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끝나고 들리는 소문은 불길하다.

미국과 북한이 서로 만날 수 없는 철길과 같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으며,

우리 정부는 그 중간에서 이도저도 못하고 있다.

말을 들어보니, 우리는 약소민족이라 하더군.”

황동규 시인의 시 구절에 나오는 구절 같은 그 처지가

결국 지정학적인 이유도 있지만, 현재는 한 민족이라는

북한에서 연유한 것이라서

마냥 불평만을 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이 난감한 우리나라의 상황 같은 현실을 하이데거는

다음과 같은 글로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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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말했듯 처지는어떤 사람이 어떠한가.’를 드러낸다.

불안하며 섬뜩하다. 일단 불안의 현 존재가 처한

처지의 원초적 불확실성을 표현한다. ,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데도 없다.’를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섬뜩함은 동시에 집에 있지 않다는 의미다.

(...)일상의 친근함이 무너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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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상적인 것이 특수상황으로 가는, , 전쟁이 일어난다면

적게는 만 여 명에서부터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희생될 것이다.

그 전쟁을 막아야 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북한의 태도, 그들의 태도가 변수인 것이다.

일찍이 플라톤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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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의 병폐를 고치려고 폭력으로

평화를 문란케 하는 일에 동의하지 않았고,

국민을 살육하고 피를 흘려가며 하는 개혁을 용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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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국제정세는 절박하게 돌아가고 있고,

신기하게도 우리나라 국민들만 라면도 쌀도 사재기를 안 하고

아주 평온하게 살고 있다.

우리 모두 태풍 속의 눈속에 있기 때문일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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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가 아니라 죄악으로 전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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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일어난다면 이런 전쟁이 될 것이다

적도 동지도 분간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허공 속에서

승자도 패자도 없는 희한한 전쟁이 전개 되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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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 가공할 적이,

그리고 왼쪽에 다른 적이 나타나며,

급박한 위험이 양쪽에서 위협해 온다.“

오비디우스는 말했는데 어디 적이 양쪽에서만 올까?

사면팔방, 아니,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사라질 적,

그게 나이고 그대가 될지도 모르는 전쟁,

그 전쟁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만 일어나고

그리고 자욱한 안개가 풀리듯 사그라져야 할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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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해결해 줄 테지,

하면서 무엇 하나 그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는

이 무력감, 이 시대의 비극, 우리 모두의 고통이다.

 

 

 

 

수학에는 공식이 있지만, 삶에는 공식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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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子夏가 공자에게 물었다.

안회顔回의 사람됨은 어떻습니까?”

그의 인은 나보다 월등하네.”

자공은 어떻습니까?”

그의 언변은 나보다 월등하네.”

자로子路는 어떻습니까?”

그의 용기는 나보다 월등하네.”

자장子張은 어떻습니까?”

그의 위엄은 나보다 월등하네.”

자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공자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이 네 사람들은 어째서 선생님을

스승으로 섬기고 있는 것입니까?”

거기 좀 앉도록 하게. 내가 다 이야기 해줄 테니,

안회는 어질기는 하지만 변통성이 없네.

자공은 언변에 뛰어나지만 질박함이 없네.

자로는 용기는 있지만 신중함이 모자라네.

자장은 위엄은 있지만 남과 어울리지 못하네.

그러므로 네 사람이 가진 것을 모두 모아놓는대도,

나보다 낫다고는 할 수 없네. 그들이 한결 같은 마음으로

내 제자노릇을 하는 것은 다 그 때문이네.“

<열자> ‘천서편에 실린 글이다.

공자의 말과 같이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재능을 갖고 태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은 공평한 것이라서 어느 한 사람에게

여러 가지 뛰어난 재능을 주지는 않는다.

저마다 다른 재능을 나누어 주어서 그것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어쩌다가 한 사람에게 모든 재능을 주어서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받들게 하기도 하는데,

그 사람들이 시대를 뛰어넘는 세상의 스승, 즉 현자賢者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자에게도 결점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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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옥일수록 흠집이 많고, 뛰어난 사람일수록 병통이 많다.

흠집이 없으면 아름답지가 않고, 그저 옥처럼 생긴 돌덩이가 된다.

병통이 없고는 기이함도 없게 되어 끝내 호걸이 되지 못한다.”

<납담>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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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 모든 것을 겸비한 사람은 행복할까?

아니다. 순간순간의 삶이 어쩌면 고통일지도 모른다.

실수하면 안 되는데, 사람들에게 조금의 허점이라도 보이면 안 되는데,’

그렇게 매 순간을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딘가 텅 빈 듯, 어수룩한 부분이 있어야 사람들도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뛰어나면 피해가 없으니,

그들이 나를 미워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것은 복이 아니니,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이 있을지 걱정하라.”

<취고당검소>의 한 소절이 뜻하는 바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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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에는 공식이 있지만,

삶에는 공식이 따로 없다.‘

내가 세상을 살면서 터득한 삶의 이치, 그래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길, 미로迷路가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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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한발 한 발 가다가

어느 날 문득 멈추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길이다.

그 인생길에서 마음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그런

스승과 도반을 몇 사람이라도 만나며 살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에서의 행운이 아닐까?

 

 

 

남에게 보이기 위한 ‘나’가 있고, 내 속에 들어 있는 ‘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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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불 십년, 재불 백년이라는 말이 있다.

권력이 10년을 넘기기 어렵고, 큰 재산을 백년 지키기 어렵다는 말이다.

한 때는 하늘을 찌를 듯한 권력을 가지고,

세상을 엿 장수 마음과 같이 마음 내키는 대로 하던 사람들이나

돈이 너무 많아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우쭐거리던 사람들도

그 잘난 허영과 과시 때문에 불과 몇 십 년을 넘기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져 속절없이 죽은 듯 흐르는 시간만 주시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자신이 우주 속에 내 던져 진 고아라고 느끼는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가 잘 나가던 때 자기 곁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원래의 모습을 발견하고 씁쓸한 미소를 짓지만 이미 늦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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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공이 말하기를, ”대저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 같은 어진 사람들도 세력이 있을 적에는 빈객이 열배나 되었다가 세력이 없을 때는 흩어졌으니, 하물며 보통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하규현이 적공翟公에게는 이런 말까지 있었다.

적공이 처음 정위廷尉(지금의 검찰총장) 벼슬에 올랐더니, 빈객들이 문을 메웠다. 벼슬을 잃으니 문 밖에 새 그물을 칠만큼 찾는 사람이 적었다. 그러다 적공이 다시 정위가 되자 빈객들은 또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에 적공은 그 대문짝 위에 큰 글씨로 써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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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죽고 한 번 삶에 사귀는 정을 알았고,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자 됨에 사귀는 태를 보았으며, 한 번 귀하고 한 번 천해짐에 사귀는 정이 모두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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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리저리 돌이켜 보건대 금암과 정당시의 생애 또한 그와 같았도다. 슬프다.(悲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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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이 지은 <사기> ‘금암 정당시 열전에 실린 글이다. “사마천은 <사기> ‘정세가鄭世家를 마무리 하면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옛말에 권세와 이득을 바라고 합친 자들은 그것이 다해지면 교제 또한 성글어 진다.”

사마천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쓴 이릉李陵장군을 위해서 정정당당하게 변호하다가 한무제漢武帝의 노여움을 사서 궁형弓形(불알을 썩이는 형벌)을 받고서도 끝내 자결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을 견디며 천하의 명저인 <사기>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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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에 처해보아야 진정한 친구의 본 모습을 볼 수가 있고, 나 자신을 돌아볼 수가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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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보이기 위한 가 있고, 내 속에 들어 있는 가 있는데 불교에서는 내 속에 들어 있는 를 진짜 의 나 진아眞我라고 부른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내 속에 있는 보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에게만 집착하고 있다.

알만 한 사람들이, 세상에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돈과 명예와 권력에 집착하다가 그 자리에 오르면 자신만을 위해서 그 권력을 욕심껏 행사하다가,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만큼의 잣대로 세상을 살았기 때문에 그 이상을 요구한다는 것조차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모든 것이 부질없는데,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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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스님은 일찍이 이럼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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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모든 사람들이 속세의 즐거움만 알아 기뻐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이것은 다만 하룻밤의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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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꿈과 같은 인생을 사는 것이 어찌 그리 변화무쌍한지,

그래서 살만한 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세상은 걸어볼만 하다,

 

 

 

 

저마다 다른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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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각기 다른 즐거움이 있어서 산다.

산이 좋아서 산을 오르는 것을 낙으로 삼는 사람이 있고,

돈이 좋아서 오로지 한 평생 돈을 모으는 데만 골몰하며 사는 사람도 있고,

운동을 좋아하여 오직 운동에만 전념하는 사람도 있고,

음악이 좋아서 오직 음반 모으는 데만 열중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모든 음악을

다 모은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국악에만 빠져 맨 날 입으로

국악을 흥얼거리며 사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자전거에, 어떤 사람은 당구에, 그리고 무엇, 무엇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다가 어느 순간,

자신을 돌아보고, 손익계산을 해보지만 지나간 시절은 이미 지나갔을 뿐이다.

내 인생을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책을 떠난 나는 생각할 수가 없는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나라나 세월을 초월해

많은 사람들이 책을 좋아하며 오로지 책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명나라 때의 문장가이자 사상가로 이탁오라고 불린 이지였다.

그가 지은 독서의 즐거움, <독서락讀書樂>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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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용호를 낳아 탁오(이자의 호)를 기다렸고,

하늘이 탁오를 낳아 용호에서 살게 했다.

용호와 탁오는 그 즐거움이 어떠할까?

사시사철 책만 보고 다른 것은 전혀 몰랐다.

독서하면 어떠한가? 나는 만나는 것이 많았다.

일단 마음과 만나면 저절로 웃고 저절로 노래하여,

노래와 읊조림이 그치지 않고 외침으로 이어졌다.

통곡하고 소리치며 눈물이 줄줄 흘렀다.

노래를 한 것은 원인이 아니라, 책 속에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을 보면서 실로 내 마음이 사로잡힌 것이다.

통곡을 한 것은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라, 텅 빈 호수에 사람이 없어

그 사람 만나지 못해 실로 내 마음이 애를 태우는 것이다.

책을 버려두고 읽지 말지어다. 높은 집에 묶어둘지어다.

성정을 편안하게 하고 정신을 기를지어다.

노래를 그만하고 통곡을 거둘지어다.

왜 꼭 책을 읽어야 즐겁겠나.?

이런 말을 잠깐 듣고 고민하기도 했다.

책을 묶어놓고 보지 않으면 내 어찌 즐거우랴?

성정을 편안하게 하고 정신을 기르는 것이 바로 이 안에 있다.

세계는 얼마나 좁으며, 네모난 책은 얼마나 넓은가!

천만 성현이 자네와 무슨 억울한 사정이 있는가!

몸은 있으되 묵을 집 없고, 머리는 있으되 머리카락 없는 이 몸,

죽는 것이 이 몸이요, 썩는 것이 이 뼈다귀라.

이것만이 홀로 불후하니, 이 세상 다 하기까지 함께 하고 싶다.

수풀에 기대어 휘파람 불지니, 그 소리에 숲과 새가 화들짝 놀란다.,

노래와 곡이 서로 뒤따라 그 즐거움이 끝이 없다.

촌음도 아쉬운데 어찌 감히 조용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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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상 가장 독특하고 기이한 개성의 소유자이자

가장 뛰어난 사상가로 후세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이지는

62세에 삭발하고 불교에 심취하여, 혹세무민의 죄목으로 감옥에 갇혔다.

그는 머리카락과 손발톱을 모조리 자르고 그 칼로 목을 그어 자결했는데,

그때 이지의 나이 76세였다.

그의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을 독서로 꼽았고,

그의 글엔 책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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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음이 아깝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게 읽은 책들은 한 번 가슴 속에 들어오면 나가지를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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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는 육예의 문장을 끝없이 중얼거리고,

손으로는 제자백가의 책을 쉴 새 없이 넘겼다.

새벽까지 등잔불을 밝히고 늘 힘겹게 한 해 또 한 해를 보냈다.

평소 먹고 자고 할 때에도 책을 놓지 않았다.“ 중국의 문장가인 한유가 젊은 날에 공부하던 시절을 회상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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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공부를 멈추지 않고 전념했기에

시대를 뛰어넘는 문장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공부한다고 그와 같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이 가끔은 팍팍할 때가 있다.

더 좋은 결과를 바라지 말고 지금을 잘살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결국 우리가 품어야할 참된 삶의 자세가 아닐까?

 

 

 

필연적인 것은 모두 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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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낙동강 천 삼백리 도보 답사 일차 기행을 마쳤다.

걷는 내내 수많은 추억들이 내 마음을 지배했고,

그래서 그런지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사람은 항상 추억과 현실 사이를 오고 가는 시계추라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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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추억 위에 또 쌓이는 추억,

먼지 같이 휙 날아가 버리기도 하지만,

그 자리 그대로 남아서 이런저런 마음의 포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추억들이 머문 강은 지금도 겨울 강이고,

그 강들이 다음 달에는 봄 강으로 그 모습을 달리할 것이다.

그 길을 어떻게 걸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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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건강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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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묻는다.

내가 머리에 염색을 하지 않았는데도, 머리가 검고,

눈이 좋고, 다리가 안 아픈 것은

세 가지를 많이 먹어서 그렇습니다.

그 세 가지가 무엇일까요?

맞추면 2만원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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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콩, 검은 깨, 검은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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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못 맞추었습니다.

커피, 콜라,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는데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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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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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매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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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보면 운명적으로 마실 수밖에 없는 그 매연을

매연이라 여기지 않고 보약처럼 여기는,

그것이 내가 건강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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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운명을 사랑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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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는 운명 그 운명대로 사는 것이고,

악연이든 인연이든 만날 사람들이 만나며 산다.

마찬가지로 길에서 이루어지는 우리들이 모든 삶이

필연 아닌 것들이 없다.

필연을 사랑하자. 그리고 검은 것을 올해도 많이 먹으며 걷고,

원도 끝도 없이

산과 강, 그리고 을 걷고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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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내가 나하고 하는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