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에서 항구를 찾아 떠난 여행,
여수시 돌산읍 신기항에서 남면 금오도 여천항으로,
여천항에서 함구미 항으로,
그곳에서 시작된 금오도 비렁길,
1코스에서 5코스까지를 걷고,
저물어가는 시간에 지쳐서 도착한 안도항,
안도항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안도섬을 한 바퀴 시나브로 걷고
도착한 여천항, 바람은 잔잔했다.
다시 신기항에 도착하여, 화태대교를 지나 도착한
월전 항구, 뱃사람들은 뱃전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고,
한 마리의 개도 그 뱃전에서 부산한 뱃 사람들의 손놀림을 보고 있었다.
그 항구 정박한 배, 지나가는 배, 바다낚시를 하는 사람들,
화태도 둘레 길을 걷는 사람들과,
여기저기 부평초처럼 떠 있는 섬들을 대 황간도를 바라보며
나는 보들레르의 산문 <항구>를 떠올렸다.
“항구는 인생의 투쟁 지친 영혼을 위해 매혹적인 거실과 같다.
하늘의 풍요로움, 움직이는 건축구조의 구름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바다 색깔들. 등대의 반짝임 등,
항구는 눈을 즐겁게 하는 데는 기막히게 훌륭한 프리즘과도 같다.
복잡 미묘한 날씬한 선박들의 형태는 리듬의 취미를 품게 해 준다.
그리고 특히 이제 인생의 야심도 호기심도 사라진 자들에게는,
망루에 앉거나 방파제에 팔을 괴고 앉아 떠나는 사람들,
돌아오는 사람들, 아직도 욕망을 가질 힘이 남아 있는 사람들,
여행과 치부에의 욕망을 가진 자들 등,
이들의 모든 움직임을 관조하는 것은,
일종의 신비한 귀족적 즐거움이다.“
관조, 나른한 그리움이면서도 슬픔 같은 낱말,
나 역시 이리저리 떠도는 나그네이면서도,
그곳이 바닷가 바위든, 나무 밑 둥이건 그 아래 몸을 내려놓고,
인생의 야심이나 호기심도 사라진 사람처럼 멍하니 바라보곤 하는데,
이미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겼고 또 겪어서 그런 것일까?
파도는 쉴 새 없이 밀려왔다가 물러가고,
내 생각의 파도 역시 금세 생성되었다가
금세 부서지는 것, 그 이치를
화태도 월전 바닷가에서 새삼 느꼈다.
“오 육체는 슬퍼라,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읽었노라.
새들은 낯선 거품과 하늘에 벌써 취하였다.
눈매에 비친 해묵은 정원도 그 무엇도
바닷물에 적신 내 마음을 잡아두지 못하리.
오 밤이여 잡아두지 못하리.“
스테판 말라르메의 <바다의 미풍>이
소금기 머금은 바람결에 실려 왔다가,
매화꽃 향기를 실어 먼 바다로 떠날 것 같은 항구,
항구는 머물러 있는 자들을 위한 곳이기도 하지만,
떠나는 자들을 위한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항구에서 항구를 찾아
떠나고 떠나는 나그네이다.
뱃고동 울리며 들어왔다가 뱃고동 울리며 떠나는 항구,
아니 어떤 배는 소리 소문도 없이 왔다가 바람처럼 떠나기도 한다.
그림처럼,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처럼 흑백의 사진과 같은
그 항구들이 지금도 눈에 선한데,
그 항구들은 지금 칠흑 같은 어둠 속이거나
가로등 몇 개 깜박거리는 그 시간 속에서
파도소리를 벗 삼아 잠시 머물다가 떠난
수많은 나 속의 ‘나’를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2018년 3월 12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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