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6

봄은 오자마자 가는 것이라는데,

산중산담 2018. 4. 27. 13:40


봄은 오자마자 가는 것이라는데,


 

꽃이 피는 봄이라기에

꽃을 찾아 강가로 나갔건만,

봄이 더디게 와서 그런지 꽃은 드문드문 피었고

버들강아지만 물결에 흐드러졌다.

그렇지, 꽃이 어디 내 마음에 들기 위해

일찍 꽃망울 터트리겠는가,

자연은 자연스레 그 시절을 따라 피고 지거니,

내 조바심만 강물 빛에 붉으락, 푸르락,

돌아오는 창밖으로 늘어진 버드나무에

연푸른 봄이 축 늘어졌구나.“

 

몇 그루 피어난 홍매화 산수유 꽃을 보고

돌아와 생각하니, 꽃을 보고자 꽃길을 걸었던 그 시간도

이미 지난 시간이 되었습니다.

내가 도반들과 걸었던 그 길에 꽃들이 그 꽃망울을 터트리기 위해

이슬을 머금고 있을 테지요.

 

매화 핀 창에는 봄빛이 이렇게 빨리 찾아왔는데,

판잣집에는 빗소리만 요란하구나.“

일본의 어느 시인이 지은 시 한 소절이 떠오르고,

 

담 모퉁이 작은 매화 피고 지기 다 끝내자

봄의 정신은 살구꽃 가지로 옮겨갔구나.“

손곡 이달의 시 구절처럼 그 사이 꽃피고 지고

봄이 문득 가고 말겠지요.

그리고 그 사이 삶이

문틈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듯

삶은소리 소문도 없이 지나가고 말겠지요.

 

삶은 짧고도 길다.

그러나 살다가 보면

삶은 길고도 짧다.“

이렇게, 저렇게 가는 것이 봄이라서

조선 전기의 시인 정이오鄭以吾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을까요?

 

이월이 다 가고 삼월이 오면,

일 년에도 봄철은 꿈인 듯 가버리지,

천금을 주고도 못사는 시절,

뉘 집에 술 익고, 꽃 피었더냐.“

(정백용鄭伯容에게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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