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마음의 안쪽에만 달려 있다.
내 소싯적 꿈이 있었다.
삶의 문으로 나왔다가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는
우리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
그 문을 하나하나 모아서 ‘문 박물관’을 만들어야겠다.
그 꿈을 가슴 안에 품고 살아온 세월이 어언 40여 년에 흘렀는데,
여지껏 모은 문이 다섯 개 뿐이다.
그 다섯 개의 문이 아주 보기 힘든 귀한 문도 아니고,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문,
그 다섯 개를 모은 것은 내 꿈에 대한 직무유기인 듯싶어서
가끔은 나 자신을 자책할 때가 있다.
문으로 나와서 문으로 들어가는 우리들의 삶,
그 중요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사람이 공자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누구인들 밖을 나갈 적에 문을 경유하지 않고 나갈 수 있겠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이 길(道)을 따르는 사람이 없는가?”
<논어> 제 6편 15절에 실린 글로 세상의 모든 이치가
문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풀어서 말한 것이다.
길에서 사물을 만나고 내가 나를 만나는 경이를 위해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나를 만나지 못했고,
그래서 쉴 새 없이 길 위에 서는지도 모르겠다.
길에서 나서 문을 열고 길로 나가고,
다시 문을 닫고 집인지, 길인지 모를 집으로 들어오는
그 사람을 반복하다가 어느 날, 왔던 곳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 삶의 여정에서도 나는 길 위에 서 있기를 좋아하고 그럴 때마다
내가 나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주문을 건다.
“어서 문을 열고 그리고 밖으로 나가시오,
길은 여기, 저기, 펼쳐져 있습니다.
어느 길로 가든 좋소, 아무 생각 없이 걸으시오,
파란 나뭇잎이 바람결에 흔들거리며 춤을 추는 거리를
시냇물이 마치 조잘조잘 거리는 아이들의 다정다감한 이야기같이
소리를 내는 그 길을 걸으시오.
어쩌면 일 년, 아니 2년을 더 젊게 해주고,
마음은 마냥 청명할 것이오,“
그러나 그 문을 열고 나가 걷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세상에는 걷는 즐거움보다 더 큰 즐거움,
그리고 아늑하고 편안한 것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제 7장 13-14절에도 실려 있지 않은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사람들의 발길이 그렇게 많이 닿지 않는 길,
그런 길이 좋은데, 그런 길로 나가는 문은 찾는 사람이 없어
숲들만 우거져 묵어 있다.
꿈은 꿈으로만 남는 것일까?
내가 만들고자 했던 문 박물관은 내 마음속에만 존재하다가 사라질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내가 열고, 닫을 문은 이 세상에 존재할 테지,
그것이 참, 그렇다.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마음의 안쪽에만 달려 있다.”
헤겔이 말하고 있는데,
2018년 3월 16일 금요일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은 오자마자 가는 것이라는데, (0) | 2018.04.27 |
---|---|
자연이 되기 위해 자연 속으로 간다. (0) | 2018.04.27 |
어찌 하면 홀로 즐거워할 수 있을까? (0) | 2018.04.27 |
사람은 내일을 기다리다가 그 내일엔 묘지로 가는데, (0) | 2018.04.27 |
부끄러움을 가르쳐 드립니다. (0) | 2018.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