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6

다시 그리워 떠오르는 낙동강,

산중산담 2018. 4. 27. 13:44


다시 그리워 떠오르는 낙동강,


 

시간은 쏜 살 같이 지나간다.

그때가 벌써 오래 전일,2001년 가을이었으니,

그로부터 17년의 세월이 흘렀다.

내가 혼자서 막막하게, 혹은 마음마저 놓아 버린 채 걸었던 그 강들을

지금은 외로움을 느낄 사이가 없도록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걷고 있으니,

다행스런 일인가, 아니면?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고,

나는 걷는다는 것이다.

 

그 때 하루 64km를 걷고 또 길에 나선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배 나들이 고추농원이라고 쓰여 진 표지판을 보고 산길을 내려간다. 큰 논배미가 있어서 한밤이라고 부르는 한밤이 동쪽에는 배나들이(주진동)마을이 있다. 이곳에 있던 배 나들이 고개는 울진군 북면 두천 1리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넘어야 하는 열두 고개, 곧 십이령 고개 중 마지막 고개였다.

그 앞에 놓인 나루가 고제나루였다. 그러나 나루도 사라지고 고개도, 보부상은 그림자도 없이 사라진 그 자리에 다리가 놓여 져 있다. 강은 이곳에서 길게 휘감아 돌고 지도에도 없는 현동 3리 마을에서 강은 아래로 깔린 채 흐른다.

길이 있을까 물어보니 강으로 따라가는 길이 쭈욱 나 있단다. 고개를 넘어 가파른 길로 내려서자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헤어졌다 싶었던 철도와 다시 만난다.

 

그런데 뒤에서 오고 있던 봉고차가 내 옆에다 차를 세운다. “어데를 그렇게 걸어가입니꺼? 제가 태워다 드리겠습니다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을까? 그러나 나는 그 친절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데, 나는 걸어가야 하는데, 나는 고맙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는 즉 걸어갈 수밖에 없는 내 사정을 말씀드린다.

걸어가겠다는데 우야겠노 잘 가이소하고 떠나는 봉고차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딴 생각이 든다. “한참동안만 태워다 달라고 했어야 옳은가부질없는 생각에 웃음을 지으며 애써 키에르케고르의 말로 자위한다. “ 무엇보다 걸으려는 욕망을 앓지 말자. 매일 같이 나는 걸으면서 행복한 상태가 되고, 걸음을 통해 모든 질병으로부터 벗어난다. 나는 걷는 동안 가장 좋은 생각들을 떠올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니체는 걷지 않고 떠오르는 생각은 믿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 생각 저 생각에 사로잡혀 걷는 사이에 여정은 임기리에 접어든다. 원래 소나무 숲이 우거진 송림이 있었기 때문에 숲터, 수터 또는 임기리(林基里)라고 부른 임기리 감전 마을에는 메밀꽃들이 눈이 부시게 피어있다.

메밀밭 아래에서 낙동강은 누구의 범접도 허락하지 않을듯한 기세로 흐르고 있고 메밀꽃 너머로 붉게 익어가는 사과밭, 나는 메밀밭 언저리의 사과나무에서 사과 하나를 따서 한입 베어 물고 싶지만 주인도 없는데 가능한 일이 아니다. 조금만 더 가면 갓바위에 다다를 것이다. 강 건너 죽미마을에는 몇 가구만 남아있고 산 정상 부근까지 일구었던 화전은 묵은 채로 칡넝쿨만 무성하다. 오늘 나는 한가하게 한가하게 걷고 있다. 어제 나는 너무 무리했다. 옛날 잘 걷는 사람이 하루 백오십리(60km)를 걸었다는데 나는 어제 백 육십 리를 걸은 것이다. 그 무모함이 오늘 내 다리를 이토록 아프게 하고 등마저 뻐근한 채 걷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걸었던 그 길을 걷기 위해 오늘 밤 출발할 생각을 하니

그 때 그 시절보다 더 설레는 같다. 이것이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알 수 없지만 떠나서 좋은 것이 여행이고,

그 여행 중에 느끼는 육신이 흐느적흐느적 하도록 고통이, 고통이 아니고

환희로 다가오는 그 순간의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에

떠나고 또 떠나는 것은 아닐까?

 

오늘 떠나서 내일 맞이할 낙동강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이할 것인지,

 

2018323,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