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6

자연 속에서 자연이 되었던 그 길,

산중산담 2018. 4. 27. 13:43


자연 속에서 자연이 되었던 그 길,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남원 공무원교육원에서 세 시간의 강연이

예정되어 있어서였다. 창문을 열자 내리는 비,

그런데 나무에는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고,

눈 내리다가 멎고 비가 내리는 것이었다.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남원으로 가는 길,

나무들의 가지마다 하얀 눈이 꽃처럼 덮여 있고,

한벽루와 무형문화전당을 지나면서부터 세상은 온통 설국이다.

덕유산 향적봉에서 보았던 상고대처럼 나무들마다 눈으로 곱게 치장했고,

산이며 집들이 모두 하얗다.

저 눈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어 이 지상에 내리는 것일까?

봄꽃이 피고 강물이 풀려서 세월 속을 흐르는 이 이른 봄날에

내리고 또 내리는 저 눈, 자연 속의 조화가 바로 저것이로구나.

버스 속에서 차창너머로 보이는 자연을 보며, 느끼는 나의 소회,

지금은 봄인가? 겨울인가? 내가 진정 자연은 자연인가?

 

솔직히 말해서, 어른 중에도 자연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아주 적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양을 보지 않고, 기껏해야 힐끗 바라 볼 뿐이다.

태양은 어른들의 눈만을 밝혀주지만,

어린이의 경우에는 눈뿐만 아니라 마음속까지 환하게 비쳐 들어간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내외적인 감각을 서로 조화시킬 수 있으며,

성년기에 접어들어도 어릴 때의 천진난만한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늘과 땅과의 영적 소통이 매일 먹는 음식처럼

일상화되어 아무리 현실이 슬프더라도 자연 앞에 서면

온통 즐거움으로 휩싸이게 된다.

자연은 말한다. ‘그대는 나의 창조물이다.

고로 아무리 부당한 슬픔이 그대에게 닥칠지라도

나와 함께 있으면 즐거우리라.’

햇살을 뿌리는 여름 태양만이 즐거움을 안겨 주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면 시간마다, 계절이면 계절마다 자연은 즐거움을 인간에게 바친다.

지연이라는 배경은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똑같이 어울려 준다.

왜냐하면 미동이 없는 대낮부터 지겹기만 한,

한밤중까지 변하는 모든 시간 속의 자연은

우리들의 갖가지 감정에 감응하면서,

그 상태를 알려 주기 때문이다.“

에머슨이<자연론>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자연을 제대로 느끼는 사람인가? 아니면 자연 속에

있으면서도, 그 자연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인가?

알 수 없지만 나는 버스 속에서 문을 열고 내리고 싶지만

내리지 못하면서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눈 속에서 스스로 눈사람이 되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와 하얀 산을 보라보는 나그네였다.

 

창문 너머 바라보는 하얀 나무들을 바라보다 마음까지 하얀 눈이

바람결에 밀려오던 그 시간이 지나고 남원 밤 재 터널을 지나자

그 눈들이 거짓말처럼 아니

하룻밤 꿈과 같이 사라져 보이지 않던 그 길,

 

2018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