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6

새 책 <길 위에서 배운 것들>이 어제 나왔습니다.

산중산담 2018. 4. 27. 14:04


새 책 <길 위에서 배운 것들>이 어제 나왔습니다.


책 소개

 

길 위의 철학자, 길 위의 시인신정일의 아프게 아름다운 인생 독학기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걸으며 우리 땅 걷기 예찬론을 펼치고 있는 <길 위의인문학, 우리 땅 걷기> 신정일 대표의 자전적 에세이. <우리 땅 걷기운동> 창립 34주년을 맞아 그의 평생 화두인 길, , 자연과 더불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이에 자연을 벗 삼아 놀던 어린 시절의 그리운 기억, 이방인처럼 겉돌기만 했던 유년시절의 혼돈, 우주 속에 내던져진 절체절명의 고아로 살아야 했던 시절의 아픈 기억을 담담하지만 슬픈 어조로 고백한다.

그는 정규교육이라고는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지만, 방대한 독서량을 무기로 지금까지 60여 권의 책을 펴내며 길 위의 철학자라는 반열에 자신을 올려놓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독학자(獨學者)’로서의 그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관한 생생한 기록이자 아직도 마음속에 머물러 울고 있는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청하는 위로의 악수라고 할 수 있다.

 

《길 위에서 배운 것들》은 저자의 자전적 에세이로, 유년 시절부터 열아홉 살 때까지의 일을 삶

34년째 우리 땅의 숨은 역사와 문화를 찾아다니는
<우리 땅 걷기> 대표 신정일!
인생의 비단길이 아닌 진흙탕 길을 걸어온 그의 아프게 아름다운 인생 독학기  

34년째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를 이끌어 오고 있는 신정일 이사장. 그가 우리 땅을 걷기 시작한 계기는 14살에 가출 섬진강을 따라 걷고, 15살 때 중학교 진학에 실패한 후 무작정 집을 떠나서 여행하면서부터다. 짧은 승려 생활 후 여비가 떨어져 대구에서 집이 있는 진안까지 꼬박 7주일여 만에 도착하면서부터 그의 파란만장한 걷기 인생은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도보로 답사하며 우리 땅의 아름다움에 심취했고, 수십여 년 간 걸어온 이력과 방대한 독서량을 무기로 지금까지 60여 권의 책을 펴내며 ‘길 위의 철학자’라는 반열에 자신을 올려놓았다. 그런 그를 가리켜 시인 도종환은 ‘길의 시인’이라 불렀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강과 길의 철학자’라 불렀다. 어떤 이는 ‘현대판 김정호’ 또는 김삿갓을 빗대어 ‘신삿갓’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비단길이 아닌 진흙탕 길이었다. 사진 한 장 남길 수 없었던 가난, 두 번씩이나 그의 중학교 입학금을 노름으로 날려버린 무능력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대신에서 가정을 돌봐야 했던 어머니를 보며 그는 일찍부터 어둠 속에 그를 가두었다. 마치 우주 속에 홀로 내던져진 절체절명의 고아처럼.
그러니 모든 것을 혼자서 감내하고, 스스로 배워서 익혀야 했다. 그러다 보니 오해 아닌 오해를 받기도 했고,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런 그를 살게 한 것이 바로 걷기였다.
“새끼 노루처럼 걷는다.”라는 말을 들을 만큼 흐느적거리는 걸음걸이이지만, 그의 다부진 두 발은 우리나라 전 국토 구석구석 안 닿은 곳이 없다. 금강·섬진강·한강·낙동강 등 5대 강은 물론 한탄강·만경강·동진강 등의 발원지에서부터 하구까지 걸어서 답사하고, 삼남대로(전남 해남~서울)와 영남대로(부산~서울)를 각각 보름에 걸쳐 걷기도 했다.
그 결과, 그가 지금까지 걸은 길만 해도 어림잡아 20여 만km. 그가 걸은 길은 많은 이들이 찾는 아름다운 명승지로 거듭났고, 그가 제안한 소백산 자락길, 변산 마실길, 그리고 18일을 걸어 문체부에 제안한 국내 최장거리 동해안 탐방로인 ‘해파랑길’은 문화관광부에 의해 국가 정책으로 개발되고 있기도 하다.
현재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그는 1주일에 4일은 전국 곳곳을 누비며, 하루 평균 100 리를 걷는다. 매주 수 십 명에서 수 백 명의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도반들과 함께 도보답사를 통해 숨은 옛길 복원 및 소외된 지역 문화 연구, 국내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 개발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강과 길의 철학자’ 신정일의 ‘독학자’로서의 삶과 철학!
사람과 사람에 관한 애정으로 아픈 기억을 조심스럽게 복원…
마음속에 머물러 울고 있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청하는 ‘위로의 악수’   

《길 위에서 배운 것들》은 저자의 자전적 에세이로, 유년 시절부터 열아홉 살 때까지의 일을 삶

의 화두인 길, ,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남다른 추억을 스냅사진처럼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남들은 다 갖고 있는 데 반해, 그는 갖고 있지 않은 게 몇 가지 있다. 우선, 어린 시절 사진이 없다. 사진 한 장 남길 수 없을 만큼 지독하게 가난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에겐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이며, 단 한 번도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다. 두어 번쯤 중학교에 입학할 기회가 있었지만, 아버지의 놀음으로 인해 그 기회를 빼앗기고 말았고, 군대에서 받은 월급을 제외하면 한 번도 취업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지독한 열등감에 시달리며 스스로 배우고 성장해야 했다.

길 위에서 배운 것들은 총 3부로 나뉘어 있다. 1아픔도 슬픔도 길이 된다.’에서는 어린 시절 자연과 벗 삼아 놀았던 날들에 관한 그리움이 무시로 묻어난다. 지금이야 별의별 장난감이 많지만, 저자가 살던 시절만 해도 자연이 놀이터요, 장난감으로 새, 뱀 무서울 것 없이 종횡무진 뛰놀았다. 산삼 하나를 마을 사람 누군가가 발견하면 다음 날 산삼을 발견한 그 산에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땅을 팠던 일, 일 년에 한두 번씩 공터에 천막을 친 가설극장이 들어오면 검표하는 사람 몰래 영화를 보던 일들은 지금은 잘 볼 수 없어 더 그리운 기억들이다.

2길 위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다는 이방인처럼 겉돌기만 했던 유년시절에 관한 혼돈의 기록이다. 저자는 아버지의 노름으로 인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채 14살에 최초로 가출, 15살에 출가를 감행한다. 우주 속에 내던져진 고아였던, 세상의 아웃사이더였던 한 소년이 삶을 택한 방법은 책, 음악과 함께 산천을 걷는 일뿐이었다.

3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는 저자에게 영향을 준 수많은 사람에 관한 일화를 소개한다. 욕쟁이였지만, 어린 시절 자신의 전부였던 할머니, 한평생 풍류객으로 살았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서 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 가수 지망생 막냇삼촌 등 기억 속 아련히 남은 이웃과 길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 있었던 일화를 흥미롭게 담고 있다.

여기에 지독한 자기 연민과 치열한 성찰의 삶을 살던 시기에 썼던 시를 함께 담아 저자가 당시 느꼈던 삶의 고민과 여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삶이란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슬픔도 아픔도 길이 된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가난했지만 아름다운 자화상

치열한 자기 성찰의 삶을 살던 시기에 썼던 시도 함께 수록!

 

책에서 그는 차마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아버지에 관한 이중적인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1981년 세상을 뜬 그의 아버지는 놀음으로 아들의 중학교 등록금을 날리고 사업에 거듭 실패하는 등 무능력한 가장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아들을 위했던 다정한 스승이기도 했다. 이에 저자는 지난 시절 아버지를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는 차마 용서할 수 없었다면서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아버지와 완전히 화해한 것 같다고 고백한다.

그런 점에서 사람과 삶에 대한 애정으로 지난날의 아픈 기억을 조심스럽게 복원해낸 그의 삶은 어쩌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의 가난했지만 아름다운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걸어줄 수는 없다. 그렇듯 삶은 오롯이 내 몫이다. 오늘도 힘겹게 삶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신정일은 이렇게 말한다.

너무 걱정하지마. 길은 어딘가로 이어질 거야.”

 

목차

 

프롤로그 | 살아온 모든 순간이 운명이고, 인생이다 

   

아픔도 슬픔도 길이 된다 머물고 싶은 아름다운 시절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나의 고향 집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학교의 추억

사진 한 장 남길 수 없었던 가난한 삶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기억 속의 맛

이제는 볼 수 없어 더 그리운 것들

자연 학교에서 배운 소중한 것들

 

길 위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 - 긴 방황, 새로운 삶의 시작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운명이었다

우주 속에 홀로 내던져진 절체절명의 고아

긴 어둠 속에 나를 가두다

내 삶에 책과 음악이 없었다면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 그리운 사람, 그리운 시간

나의 어머니, 정병례

나의 아버지, 신영철

식자우환의 교훈, 할아버지

욕쟁이 할머니, 박심청

가수 지망생이었던 막냇삼촌

기억 속 아련히 남은 사람들

 

에필로그 _ 잊고 싶은 지난날, 이제 기꺼이 사랑하련다

 

 

지은이

 

신정일

길의 시인’, ‘길과 강의 철학자이자, 이 땅 구석구석을 걷는 작가, 문학사학자.

1985<황토현 문화연구소>를 설립,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펼쳤으며,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한국 10대 강 도보 답사를 기획하여 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을 비롯해 압록강까지 답사를 마쳤고, 옛길인 영남대로와 삼남대로·관동대로를 도보로 답사했으며, 서해안과 남해안, 휴전선을 걷고, 우리나라 400여 개의 산을 올랐다.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바닷가 길을 걸은 후 문화관광부에 최장거리 도보 답사 길을 제안, <해파랑길>이라는 이름의 국가 정책으로 개발되고 있다. 20109월 관광의 날을 맞아 다양한 우리 땅 걷기 코스 발굴을 통해 도보 여행의 대중화와 국내 관광 활성화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현재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의 이사장으로 있으며, 소외된 지역 문화 연구와 함께 국내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 및 숨은 옛길 복원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니, 오직 정의, 꿈속에서도 살고 싶은 곳 41, 섬진강 따라 걷기,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 고을을 가다(3), 낙동강, 영남대로, 삼남대로, 관동대로, 새로 쓰는 택리지 (10)》《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 고을을 가다(3)정여립 사건, 즉 기축옥사를 다룬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허균 평전》 《갑오동학혁명 답사기》《그토록 가지고 싶은 문장들》《마음의 발견60여 권이 있고, 근간에 숨겨진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찾아서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서울》《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경기도두 권이 나올 예정이다.

 

책 속으로

나는 항상 혼자였다. 누구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만 따돌림을 당한 게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사람들과 쉽게 섞일 수 없었다. 사람들은 이방인 같은 나를 받아들이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프롤로그> 중에서

 

천천히 걸어가면 찾아올 것 같았다. 어깨를 툭 치며 둘러 세워놓고 씩 웃는 얼굴에서 아카시아 꽃냄새가 날 것 같았다. 더 천천히 걸었다. 그러나 오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 주저앉아 멍한 채 기다렸다. 찬바람만 휙휙 스치고 지나갔다

<기다림>, 19851018

 

가난했기에 나는 다른 사람들과 아주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나의 정해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음을 깨달은 것은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다.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운명이었다> 중에서

 

어떤 날은 남의 집 추녀 밑에서 잠을 자기도 했고, 어둠 속에서 별을 보며 하염없이 걷기도 했다. 변하지도 않고 동요하지도 않는 길라잡이별인 북극성을 보며 어둠 속을 걸었다. 어떤 날은 산길에서 온종일 산딸기 같은 야생 열매를 따먹기도 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자유를 찾아 떠났던 길. 그 자유를 찾아 해방감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한 채 돌아오던 길. 내 마음은 한없이 서글프고 슬펐다.

<우주 속에 홀로 내던져진 절체절명의 고아> 중에서

 

나는 태어나면서 갖고 나온 두 발을 가장 신뢰한다. 두 발만 건강하면 비록 느리긴 해도 어디든지 못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책만 한 권 펼치고 있으면 세상 그 어떤 것에서 느끼는 기쁨보다 더 큰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내 인생의 동반자인 책을 만났고, 그 책이 내 곁에 항상 있으면서 나를 채근하기도 하고 부추겨주기도 했다. 그것이 지금껏 나를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살게 한 힘이었다.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중에서

 

나는 철저히 외톨이였다. 사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어머니가 그나마 나를 가장 관심 있는 눈길로 바라봤을 뿐 아버지도, 할머니도, 고모나 삼촌, 작은아버지 내외도 그저 한 아이가 자기들 곁에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누구도 이렇게 살면 안 돼.” 라거나 장래 희망은 뭐니?”라며 살갑게 챙겨주지 않았다. 심지어 학교에 가는지, 안 가는지조차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쩌다 눈길이라도 마주치면 그저 무심히 바라만 볼 뿐이었다. (중략) 그만큼 나는 철저히 혼자였고, 언제나 외로웠다. 그 때문에 그것을 즐기는 법을 일찍부터 터득했다.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중에서

 

사람은 누구나 혼자서 태어나고, 혼자서 살다가 죽는다. 그렇듯 실존이란 한마디로 자력갱생(自力更生)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의 아버지는 일찍부터 나를 세상이라는 엄혹한 무대에 내던져 놓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나가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세월이 흘러 내가 아버지가 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이 사회에서 이런저런 일을 벌이며 살다 보니 살아 있는 것, 무수히 많은 사람과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시시때때로 얼마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지 모른다.

<나의 아버지, 신영철> 중에서

 

나는 길 위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배웠다. 산천을 유람하면서 좋은 공부를 하고 있는 것 또한 다행스럽고 행복하기 그지없다. (중략) 나는 작가이기 이전에 문화운동가로 살았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기에 그만큼 자유로웠다. 그 때문에 때로는 인디라이터독립저술가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외롭기 짝이 없는 인생이었다. 어떤 일을 당해도 어디 한 곳 하소연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