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6

아버지가 떠나시던 날의 기억

산중산담 2018. 4. 27. 14:05


아버지가 떠나시던 날의 기억


 

아버지와 나는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향에 있는 마이산 역시 한 번 가본 적이 없고, 가까운 절은커녕 유원지 역

시 가본 일이 없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와 긴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거의

없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아

버지와 나 사이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거리감이 존재했다.

아버지와 내가 화해라면 화해고, 하나의 운명이라면 운명으로 인정하

게 된 것은 1981년이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순간만 떠올리

면 지금도 가슴이 마구 두근거린다.

1981년 여름, 나는 안기부에 끌려간 적이 있다. 그 사실을 안 아버지는

그때부터 내가 하루만 집에 안 들어가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을이 가고, 겨울에 접어들면서 몇 년째 이어지는 병마에 지친 아버

지는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갔다. 내가 하던 사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을 닫을 상황으로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고만 있을 뿐이었다. 저녁에

임실 집으로 돌아갔다가 아침 일찍 전주로 올라오는 날이 계속되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28, 아버지가 나를 조용히 불렀다.

정일아, 소주 한 잔 묵고 싶구나.”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그런데 간경화에는 술이 좋지 않다는 걸 알면

서도 왠지 거역할 수 없었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소주 한 병을 사 와서 따

라드리니, 한 잔도 드시지 못한 채 못 먹겠다면서 잔을 내려놓으셨다.

그리고 이틀 후 1230일 아침, 마당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일아, 오늘은 빨리 돌아오니라.”

나는 그 말을 애써 못 들은 척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힘없는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정일아, 오늘은 빨리 돌아오니라.”

그 순간, 직감했다. 오늘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겠구나, 라고. 나는 건

성으로 하고 대답한 후 집을 나섰다. 거리는 송년 준비로 떠들썩했

지만, 내 마음은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그날 나는 온종일 죽음에 관한 음악만 들었다.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와 베토벤의 교향곡 3<영웅 교향곡> 2악장인 <장송

행진곡>, 슈베르트의 <장송 소나타>, 포레, 브람스, 모차르트의 <진혼곡>,

<독일 진혼곡>, <4번 교향곡> 등이 그날 내가 들은 음악이다.

이상한 것은 그날따라 집에 가는 것이 어찌나 싫던지, 집에 갈 시간이

되어도 음악을 끄기가 싫었다. 그래서 동생에게 오늘은 네가 대신 갔다

오라.”고 했지만, 안 간다며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려 할 수 없이 막차를

탔다. 임실 역전에 도착하자, 10시가 넘어 있었다.

내일 아침 차비를 남기고 나자 아버지가 좋아하는 귤 세 개를 살 돈이

남았다. 귤 세 개를 산 나는 뛰다시피 해서 집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아버

지가 나를 몹시 기다리다가 조금 전에 잠이 들었다고 했다. 그때 텔레비

전에서는 송년 음악회가 방송되고 있었는데, 그걸 말없이 바라보고 있

을 즈음, 아버지가 갑자기 눈을 떴다.

인자 왔구나. 너 많이 기다렸다.”

나는 아버지를 부축해서 앉게 한 뒤 귤을 하나 까서 드렸다. 그런데 하

나쯤 드셨을까.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눕고 싶구나.”

그 말이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그때 텔레비

전에서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마지막 악장인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온갖 고난과 절망의 질곡 속에서 한 세상

을 산 아버지가 고통의 세월을 거두고 환희의 세상으로 가고 있다고.

문득 유년 시절부터 청소년기를 지날 무렵까지, 아버지와 함께했던 모

든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가슴 깊숙한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파도가 덮치듯 복받쳐 올랐다. 순간, 나는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버지!”

두 번이나 내 중학교 등록금을 날린 아버지. 그로 인해 어린 날의 꿈을

접고 험난한 세상의 파도에 맞서 싸우게 만들었던 아버지였다.

다음 날 새벽, 나는 친척들과 동생들에게 아버지의 별세를 알렸다.

런데 하필이면 그 순간, 세상을 살면서 가장 난처한 경우가 닥쳤지 뭔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를 돈이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 장례를 치를 돈을 빌리러 가던 그 날, 그 길. 그날따라 웬 눈이

그리도 펑펑 쏟아지는지. 길도, 산도 모두 눈으로 덮이고 말았다. 그 뒤로

도 그 길을 걸을 때면 마음속 가득 눈이 내려 마음이 어둑어둑해질 때가

더러 있다. 그날 아침 하얗게 퍼붓던 그 눈처럼.“

<길 위에서 배운 것들> 중에서

 

이미 지난 일이고, 다시 올 수 없는 시절 일인데,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무슨 심사인지,

연약하기 그지없던 내가 모진 세파에 시달리면서 강해졌다가

다시 약해진 것은 아닐까? 울지 말자, 강하게도 약하게도 살지 말자,

운명이라고 말하며, 그냥 살자, 살다가 문득 가자.

2018418일 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