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6

녹음 무성한 무릉도원 길을 회상하다.

산중산담 2018. 4. 27. 14:08

녹음 무성한 무릉도원 길을 회상하다.


 

시간의 흐름 속에 내가 가는지

세월이 가는지 모를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씩 세월의 흐름을 맞추지 못해

이미 지는 때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을 때가 있다.

이번 금강 답사만 해도 그랬다.

지난 주 초 동생이 전화와 함께 사진을 보내왔다.

지금 금강 무릉도원 길에 복사꽃이 만개했다고,

그렇지만 그 때 나는 규슈에 있었고,

어쩔 수 없는 일,

다른 해보다 일주일을 빨리 개화한 것이다.

홍도 마을에 홍도 꽃은 만발하였고,

무릉도원 길에 복사꽃은 더러 남아 있고,

벚꽃은 이미 지고, 조팝꽃도 드문드문 남아

녹음만 무성한 금강 변에서

오래 전에 쓴 글을 반추했다.

 

어느 새 가는 봄

 

자가 목지牧之인 당나라 말기의 시인 두목이

절강성에서 어느 소녀를 만나 그의 어머니를 찾아가

십 년 후 그 소녀를 아내로 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장안에서 관료생활을 하다 보니 겨를을 얻지 못해

14년 만에 호주의 관리로 부임하여 그 소녀를 찾았더니

그 소녀는 그가 오기 3년 전에 이미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서 자식들까지 두고 있었다.

그 사실을 접하고 절망한 두목이 지은 시가 <탄화歎花>이다.

스스로 봄을 찾아 나섬이 늦은 것을

슬퍼하며 봄꽃 빨리 핌을 한탄한들 무엇하리.

광풍에 붉고 아름다운 꽃잎 떨어지고

푸른 잎은 그림자를 치우며 과실만이 가지에 가득하네.“

 

두목은 꽃이 피고 지고 열매를 맺는 자연에 빗대어

그의 사랑이 결실도 맺기 전에

다른 사랑으로 전이해 간 것을 노래했는데,

당나라 중기의 시인 최호도 그와 비슷한 경우를 겪었다.

 

최호가 청명절에 답청踏靑을 나섰다가 복사꽃이 만발한

어느 집에 들어가 물을 청해 마시고

그 다음 해 청명절에 그 집을 찾아갔더니

복사꽃은 만발했는데, 그 처녀는 간곳이 없어서

남긴 시가 <인면도화人面桃花>이다.

지난 해 오늘의 이 문안에는,

그 사람 얼굴과 도화 꽃이 서로 어우러져 붉었는데,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고,

도화꽃만 의구히 봄바람에 웃고 있네.“(題都城南莊)

 

머물러 있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기다리는 것도 하나도 없다.

오면 가는 것이다.

옛 시인의 사랑이 이루어졌다면

이처럼 아름다운 시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쉬움, 슬픔, 그리움 이런 것들이 절창을 낳는 것이다.

나 역시 이 아침,

새벽 두시 반차로 떠남을 준비하는데,

오늘 내가 비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바라볼

이 땅의 산천에는

어떤 꽃들이 피어 나를 기다리고,

이미 진 꽃들의 잔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2018423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