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6

오랜 나날을 길에서 보내다보니,

산중산담 2018. 4. 27. 14:16


오랜 나날을 길에서 보내다보니,


 

이리저리 펼쳐진 길을

오래 오래 걷다가 보니,

길이란 것이 얼마나 신기하면서도 쓸쓸하게 이어지는지,

그 길의 끄트머리에서 바라보는 지나온 길이

얼마나 서럽고도 가슴 아린 슬픔이며

기쁨인지를 안다.

가고 또 가도 길은 멀고도 멀고,

아무리 용을 써도 안 나설 수 없는 길 앞에서

백석의 시 한편을 읽는다.

거적장사 하나 산 뒷녘 비탈을 오른다.

, 따르는 사람도 없이 쓸쓸한 쓸쓸한 길이다.

산 가마귀만 울며 날고,

도적갠가 개 하나 어정어정 따라간다.

이스라치전이 그나 머루전이 드나,

수리취 땅버들의 하이얀 복이 서러웁다.

뚜물같이 흐린 날 동풍이 설렌다.“

 

거적장사라는 구절에

무거운 짐 이고 고개를 넘어가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이고,

수리취라는 낱말에 할머니가 봄마다 밀가루 뒤범벅으로 해주시던

수리취떡이 생각나고,

가난했던 시절, 톱톱한 쌀뜨물을 넣고 끓여먹던

누룽지가 생각난다. 그리고

석양녘에 길게 늘어진 내 그림자를 밟고 가는

한 사내, 그것이 누구였던가, 바로 나였다는 것도 안다.

 

길은 길대로 이어지고,

내 길 또한 내 운명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절실히 깨닫는다.

 

지금 홀로 스스로 가노니,

가는 곳곳마다 그를 만나네.

그러나 나는 지금 그가 아니라네.

지금 그가 바로 나라네.“

 

조동종의 창시자 동산 양개가 한 말과 같이

내가 나를 만나기 위해 가는 것이 길인가?

내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만나러 가는 것이 길인가?

 

2018426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