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풍죽과 죽순절임을 아시나요?
“품질 좋은 술은 좁은 골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중국의 오래 된 속담이다.
좋은 음식이나 술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번져나가서
먼 곳에서 그 소문을 듣고 찾아가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역사 속에 이름났던 음식이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 버리고 흔적도 없다는 것은 그 무슨 연유인가?
조선 중기의 혁명가이자 문장가로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은
미식가였고 멋쟁이였다.
그가 유배를 왔던 익산의 함열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인
나라곳곳의 특산품과 음식에 대해 쓴 것이 <도문대작>이라는 책이다.
“나의 외가는 강릉이다. 그곳에는 방풍防風이 많이 난다. 2월이면 그곳 사람들은 해가 뜨기 전에 이슬을 맞으며 처음 돋아난 싹을 딴다. 곱게 찧은 쌀로 죽을 끓이는데, 반쯤 익었을 때 방풍 싹을 넣는다. 다 끓으면 찬 사기그릇에 담아 뜨뜻할 때 먹는데, 달콤한 향기가 입에 가득하여 3일 동안은 가시지 않는다. 세속에서는 참으로 상품의 진미이다. 나는 뒤에 요산(황해도 수안군을 가리키고 수안군수를 지냈음)에 있을 때 시험 삼아 한 번 끓여 먹어 보았더니, 강릉에서 먹던 맛과는 어림도 없었다.”
우리나라 도서지방에서 많이 나는, 특히 여수의 금오도에서 많이 나는
방풍을 오늘날에는 대체로 나물로만 해먹는다. 그런데, 허균이 살았던 그 당시
사대부집안에서 방풍죽이 별미음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기한 것은 허균이 손수 그 추억의 방풍죽을 해먹었다는 것이다.
나도 역시 그런 기억을 갖고 있다.
지금은 기억 속에서도 가물가물한 사람들,
작고하신 할머니와 부모님들이다.
사진 속에서 가끔 보고 꿈속에서나 보지만,
실제로 내 삶을 있게 했던 분들인데도
마치 안개 속 같이 아득하기만 할 때가 있다.
수많은 기억 속에서도 가끔씩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박심청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의 할머니는
가을이면 밭에서 캐온 토란국을 끓였다.
그 당시는 고무장갑이 없었던 시절이라 할머니 따라 껍질 몇 개를
벗겼을 뿐인데도 얼마나 손이 가려웠던지,
하지만 들깨를 돌확에 곱게 갈아 넣어 끓인 토란국이 얼마나
감칠맛 나게 맛이 있었던지,
가려움은 멀리멀리 달아나고 그 입에서 살살 녹던 토란의 맛,
할머니만큼은 아닐지라도 어머니도 연례행사로 한 번씩 토란국을 끓여주셨다.
그 추억은 추억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문득 나도 한 번 끓여보자 하고
시장에서 다 껍질을 벗겨 놓은 토란과 함께 들깨 가루를 사가지고 와서
끓여보았다. 그런데, 어린 시절 그 맛이 아니었다.
추억은 추억일 때가 좋은가? 아니면 그 추억이 깨질지라도
그 추억을 반추해보는 것이 나은가?
“죽순 절임, 호남 노령에서 잘 담그는데, 맛이 썩 좋다.“
“표고, 제주에서 나는 것이 좋다. 오대산과 태백산에도 있다.”
죽순절임과 자연산 표고가 그 당시 사람들의 반찬이었음을 알 수 있다.
허균은 점잔만 빼고 권위만 앞세우던 당시의 사대부들과 달리
민중의 입장에서 미천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려고
어설픈 혁명을 일으켰었다, 그러나 그의 큰 꿈은 무참히 깨어지고
역사의 그늘 속으로 표표히 사라져갔다.
조선의 천재 중의 천재 허균이 다시 살아나
산해진미가 가득하고 매일 먹방이 판을 치는
이 나라를 본다면 뭐라고 말할까?
머지않아서 금오도나 강릉에서 허균이 찬탄했던 ‘방풍죽 전문음식점’이
들어서고, 담양에서 ‘죽순절임’을 특화해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질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2018년 4월 22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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