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항상 예측불허의 산책자다.
멀리서 바라볼 때도 있고,
가까이서 가만히 바라볼 때도 있다.
천진난만하게 뛰어놀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항상 예측불허의 산책자’라고 한 말은 백퍼센트 지당한 말이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의외성,
그것이 놀랍지만 나는 그것들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나이가 든 나도 그러하고,
그것이 어린이가 지녀야 할 최고의 미덕이니까.
“어린아이야말로 모든 어른의 아버지,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루가복음 1장 30절에 실린 글이다.
니체는 말했다.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한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이며,
하나의 놀이이고.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다.”
그렇다. 스스로 자自에 그러할 연然이라는 자연에 가장 근접한 어린이들을
내 손안이나 내 품안에서 내 뜻대로만 키우려고 하다가 보니 문제가 생긴다.
그것을 일찍부터 염려한 사람이 있다.
“젊은 교사여, 나는 그대에게 한 가지 어려운 기술을 간곡히 권고한다.
그것은 지시하지 않고 지도하는 일이고,
그대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일을 하는 것이다.”
루소가 <에밀>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런 역설적인 말을 한 뒤에 다시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다.
“그대는 먼저 개구쟁이 어린아이들을 내보내지 않고서는
그들을 결코 현명한 사람으로 만들지 못할 것이다.
이곳이 스파르타 사람들의 교육법이었다.
스파르타 사람들은 아이들을 책에 묶어 두는 대신에
그들에게 점심거리를 훔치는 일부터 시작하게 하였다.“
책속에 있는 것을 입으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참 교육이라는 것을 역설한 것이다.
루소는 다시 어린아이의 권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연은 아이가 성인 남자가 되기 전에 우선 아이여야 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가 이러한 질서를 전도시킬 경우 우리는 설익고 맛도 없고
곧 썩어버리는 과일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즉, 우리는 나이 어린 박사들과 애 늙은이들을 얻게 되는 셈이다.
어린이들은 그들 자신만의 고유한 견해와 사고와 느낌을 갖고 있다.
그들에게 그 대신 우리의 견해와 사고와 느낌을 강요하려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
루소는 어린이들도 다 제 나름대로의 질서 속에서 놀고 장난치며,
오락을 한다는 것을 삶의 통찰을 통하여 깨달았던 것이다.
“그를 자유로이 혼자 놔둬라. 아무 얘기도 하지 말고
그가 무엇을 하는지 그냥 바라보라.
그리고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잘 관찰하라.(...)
그가 열심히 일을 하거나 장난을 치고 있거나,
어느 편이건 그에게는 마찬가지이다. 그의 놀이는 바로 일이며,
그는 둘 사이에서 어떤 차이점도 발견하지 못한다.
어린이는 놀면서 진지한 일을 하며,
가장 하찮은 오락에도 온 마음을 바쳐 몰두한다.“
그런 의외성과 전체를 걸고 놀며 익히는 것이
어린이가 지니고 있는 최상의 장점인 것이다.
<보봐리 부인>과 <감정교육>의 작가 플로베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오리가 날 때부터 헤엄을 치듯이 어린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천성을 지니고 있다.
어린이들이 하는 일에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물오리의 헤엄을 금하는 것과 같다.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려면
그 천성을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쥬베르도 말했지 않은가?
“어린이에게는 비평보다는 본보기가 필요하다.”
오늘 유치원 학부모들과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말은 이것이다.
‘될 수 있는 한 스스로 자유롭게 생각하며 자라도록 하고,
강하게 키울 것,‘ 그것이 중요하다.
2018년 4월 21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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