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천 삼백리 길>을 걷다.-여섯 번 째 구미에시 대구시 사문진 나루까지-
태백의 황지에서 부산 다대포까지 <낙동강 천 삼백리 길>을 걷다.
-여섯 번 째 구미에시 대구시 사문진 나루까지-
낙동강 천 삼 백리 여섯 번째 여정이 2018년 7월 13(금)일에서 15(일)일까지 구미에서 칠곡과 대구 거쳐 고령에 이르는 강 길에서 2박 3일간 실시됩니다.
강변 체육공원에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서있었다. -우리 고장 산천 우리가 맑게 낙동강 정화는 LG전선- 이라고 쓰여진 안내판을 대그룹들마다 앞다투어 세우는 것보다 먼저 실천이 중요하리라. 길 건너에는 구미공단의 공장들이 가슴이 답답해지도록 빼곡히 들어차 있고,
강 건너 LG전자 뒤편에는 산 정상을 칼로 자른 듯한 천생산과 숲 뒤에 산들이 에워싸고 있다. 천생산은(天生山)은 구미시 인의동 북쪽에 있는 산으로 신라 박혁거세가 쌓았다는 쌓았다는 이야기가 남아있는 천생산성에는 연못이 네 개가 있으며 선조 37년에 중축하였다.
지도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남구미교를 지나 구미시내 강변을 따라 걷고 있어도 어디 슈퍼 하나 찾아볼 수가 없다. 식당을 만나면 점심부터 먹어야 겠다. 낙동강은 그 아래에서 여울져 흐르고 대기업들이 1사 1하천을 보호한다는 안내판이 세워져있는 것이 무색하게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어째서 저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하루 한 사람씩만 당번을 정해서 청소를 하게 한다면 이 강변 길이나 낙동강이 얼마나 깨끗할까?(...)
길은 포기하는 순간 없어지고
공단교를 지나며 그 아래 하천은 먹물을 풀어놓은듯 새까만 물이 흐르는 것이 보이고 그 까만 물위에도 검은 구름이 떠있다. 신기하기도 하지 흰 구름이 검은 구름으로 변하는 그것은 그 무슨 연유일까? 선종의 격언 중에 “물의 가르침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 물을 마셔라”라는 말이 있는데 저 물을 어떻게 한다. 길은 오르막길이다. 오태에서 구봉못골을 거쳐 율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마산 고갯마루에서 신기루처럼 주유소가 나타나고 그 옆에 하이웨이 식당이 있다. 이번 낙동강 답사를 통해 나는 혼자 먹는 밥이 얼마나 고역인가를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아니면 백반박에 무엇을 시키겠는가? 고기를 즐겨 먹는 편은 아니지만 먹고 싶어도 일인분은 혼자 다 먹지를 못하니 시킬 수도 없고 매운탕 1인분을 시켜놓고 소주(잘 먹을 때 두 잔 먹으면 많이 취하는 주량임)를 마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관에 앉아 청승맞게 캔 맥주를 먹을 수도 없으니...
나는 여럿이 떠들썩한 가운데 이야기를 반찬삼아 나누는 음식이 종류를 고하하고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샘삼 깨달은 것이다.(...)
강싱이들 아래를 지나 길 위에 올라서자 낙동강왜관전적기념관에 다다른다.
1950년 6월 25일 칠흙같은 어둠 속 내리퍼붓던 빗줄기 속에서 시작된 한국전쟁이 시작된 뒤 계속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과 유엔군은 7월말 낙동강을 건넌 뒤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우리들의 후방에는 더 이상 물러설 방어선이 없다. 우리 부대들은 적을 혼란에 빠뜨리고 그 균형을 깨뜨리기 위하여 끊임없이 역습을 감행해야 한다...... 부산으로 철수하다는 것은 사상 최대의 살육을 의미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끝까지 싸워야 한다...... 우리들은..... 차라리 같이 싸우다가 죽을 것이다” 7월 29일 유엔군 총사령부의 사령관이었던 워커 중장은 상주에 있던 미군 제 25사단 사령부에서 각급 참모들을 모아놓고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해야 하는 당위성을 이렇게 비장하게 천명하였다.
낙동강 방어선은 칠곡군 왜관읍을 꼭지점으로 북쪽으로 동해안의 영덕에 이르고 서쪽으로 낙동강 본류가 남강과 합류하는 경안 창념군 남지읍에 이르는 길이 240km에 이르는 금이 있다. 이 금안에 연합군의 중요한 보급기지였던 부산, 마산, 대구, 영천, 포항 등이 있어 그곳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절대절명의 방어선이었다. (...)
1980년에 육이오 전쟁 30돌을 맞아 특집을 실은 영남일보는 융단 폭격으로 치명적 타격을 받은 인민군들이 그 보복으로 사로잡았던 미군 포로들을 찢어죽였다는 증언을 실었다. 그리고 쫓기다가 강물에 뛰어든 인민군 1개 연대를 미군기가 휘발유를 뿌리고 네이팜탄을 떨어뜨려 강물을 불바다로 만들면서 모두 불태워 죽었다는 정황도 실었다. 한편 다부리 전투에서 인민군 전차 13대가 파괴됐고, 3,078명이 사살됐으며, 1,363명이 사로잡혔는데, 이에 맞선 국군과 미군의 희생도 컸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지리 창마마을을 지나 경부선열차가 지나가는 왜관교에 이른다. 왜관(倭館)이라는 이름은 지금의 왜관 언저리에 조선 성종 때부터 낙동강 하류에서 뱃길을 따라 올라온 왜물 곧 일본 물건을 서울로 실어가기 전에 보관해 두었던 창고인 왜물고가 있었던 데에서 잘못 생긴 이름이다. 원래의 왜관은 강건너 약목면 관호리 임강마을에 있었다. 낙동강에 임하여 있던 구왜관은 일본인들이 철도를 개설하면서 장래성이 더 있어 보이는 이 돌밭 마을에 역을 두고 옮겨왔다. 인동군의 9개 면을 병합한 칠곡군의 군청이 왜관으로 옮겨온 때는 1914년인데 그 전까지는 지금은 대구직할시에 편입된 칠곡읍과 구미시의 동이 되어 있는 인동면이 이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다. (...)
하엽정은 원래 이곳에 있던 파산서당을 개축한 아름다운 건물로 누마루에서 바라보는 연못의 풍경이 사뭇 운치가 있다. 연당은 본채를 지을 때 필요했던 흙을 파낸 자리를 손질하여 만든 것으로 세로로 긴 장방형의 못 가운데는 동그란 섬이 있다. 조선시대 정원을 세울 때 대부분이 이런 형태를 취했는데, 방형의 못은 땅을, 원형의 못은 하늘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동양적 우주관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내 이르노니 국화는 꽃 가운데ㅔ 군일자요. 모란은 꽃 가운데 부귀자요. 연꽃은 꽃 가운데 군자로다. 아, 국화를 살아한다는 말을 도연명 이후로 듣기가 어려우니 나와 더불어 연꽃을 사랑할 사람이 뉘 있을까. 모란을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많으리라.”라고 노래한 주돈이의 <애련설>에 나오는 연꽃이 무한한 곳이 이곳 하엽정이다. (...)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대구大邱는 감사監司가 있는 곳이다. 산이 사방을 높게 막아 복판에 큰 들을 감추었으며, 들 복판에는 금호강琴湖江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다가 낙동강 하류에 합친다. 고을 관아는 강 뒤쪽에 있다. 일도一道의 한복판에 위치하여 남북으로 거리가 매우 고르니, 또한 지형이 풀륭한 도회지이다.”라고 기록돼있다. 대구는 대구 능금과 대구악령시, 그리고 대구분지로 이름을 날린 대구에 동학을 창시했던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선생의 자취가 남아있다. 최제우는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의 갓질마을에서 1824년에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때 하늘이 아주 맑았으며 해와 달이 밝은 빛을 발했고 구미산 봉우리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사흘을 울었다고 한다.
부모를 일찍 사별한 최제우는 삶의 무의미함을 깨달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공부에 몰두했다. 그러나 참다운 진리에 도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최제우는 전국을 떠돌아다니다가 서른 일곱 살 때인 1860년 4월 5일에 그의 고향집에서 세상을 구할 수 있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천관우 선생은 일찍이 “가야국이 문화수준이 높을 뿐만이 아니라 정치도 발전하여 삼국초기에 이미 왕관을 만들만큼 국가체제를 갖춰『심국사기』의 초기기록에는 신라와 맞서 난형난제의 세력을 이루었던 만큼 당시를 고구려, 신라, 백제와 북쪽의 부여를 포함하여 5국시대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초기 가야국의 중심이던 금관가야가 급격하게 쇠망한 것도 김해를 터전으로 삼았던 그 지배세력이 일본으로 건너갔기 때문인 듯하다고 추정하는데 가야는 바로 중국 대륙의 산업이나 전투기술을 포함한 높은 수준의 문화를 일본에 전해준 길목구실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대가야의 땅이었던 고령은 신라 진흥왕 1018년 곧 현종 9년에는 영천현이 되어 지금의 성주인 경산부에 속했다. 그러다가 1395년인 조선왕조 태조 3년에 ‘고양군’과 ‘영천현’에서 한자씩 따 이름이 지어진 고령현이 되었고 1914년에 실시된 부, 군 폐합에 따라 고령군이 되었다. 지도에 표기된 바대로 소가야천, 대가야천을 보고 가야의 땅이라는 걸 실감하게 되는 고령의 초입엔 가야대학교와 대가야 왕릉 유물전시관이 있고 고령시외버스 터미널에는 “4만 군민의 식수원 대가야천 대가야의 명예를 걸고 지키자”라는 프랭카드가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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