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옥사의 주인공 정여립을 찾아가는 역사기행
오늘의 시대를 민주주의라고 부릅니다. 역사 속에서 가장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이 오늘의 시대입니다. 그 시대가 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과 열정들이 모여 오늘의 이 시대가 도래 한 것입니다.
그 중 조선시대 중엽을 살다간 정여립이라는 사람의 대동사상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세상. 자유롭게 사는 그 사상을 널리 펴는 중, 1589년에 <기축옥사己丑獄死>, 정여립 모반사건이 일어나 ‘조선시대의 광주사태’ 라고 일컫는 조선의 지식인 1천여 명이 희생되었고, 3년 뒤인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평등, 자유, 대동사상, 대동사회를 염원했던 정여립의 <대동사상>은 허균의 <호민론>으로 이어졌고, 정약용의, <탕무혁명론>으로 이어져 근현대사의 출발점인 동학농민혁명으로 분출된 것입니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는《단재전집》에서 “정죽도(여립)선생은 민중군경(民重君經)을 주장하다가 사형을 입으니……”라거나 “400여년전에 군신강상론(君臣綱常論(임금과 신하 사이에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을 타파하려한 동양의 위인”이라 하며 정여립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그러나 <민약론民約論>을 저술한 루소와 동등한 역사적 인물이 되지 못한 것은 이후의 파란만장한 프랑스 혁명에 비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여립의 대동사상은 청교도 혁명으로 공화정을 수립한 영국의 혁명가인 올리버 크롬웰보다 50년 앞선 공화주의자라고 평가 받고 있어 정여립은 세계 최초로 공화주의를 주창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질만능시대에 대동 정신은 날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개인주의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정여립로에 정여립 동상을 세워 대동 정신을 만방에 널리 알려야 할 것입니다.
천하는 공공한 물건인데, 어디 일정한 주인이 있는가?
정여립이 남긴 유일한 어록입니다.
연려실기술》에는 “넓게 배우고 들은 것이 많아서 성현의 글을 읽지 않은 것이 없고 이이와 성혼의 문하에 출입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고,《기축기사》에는 “정여립은 언변이 출중하여 한번 입을 열면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이 그의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 감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고, 비록 그 그릇됨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감히 그와 더불어 쟁변하지 못하였다.”라고 실려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입장이 달랐던 서인측도 “넓게 보고 잘 기억하여 경전을 관철하였으며, 논의는 격렬하여 거센 바람이 이는 듯 하였다.”고 말한 정여립 사건으로 그 당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셀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 임금이 그를 체포하러 가는 도사都事에게 밀교密敎를 내려, 여립의 집에 간직되어 있는 편지들을 압수하여 대궐 내에 들이게 하였다. 그래서 무릇 여립과 평소에 친근하게 지내어 편지를 주고받은 자는 다 연루連累를 면치 못하게 되어 사류士類가 죄를 얻게 된 자가 많았다.(중략) 옥사獄事는 덩굴처럼 얽히고 뻗어나서 3년을 지내도 끝장이 나지 않아 죽은 자가 몇 천 명이었다. “ 유성룡의 <운암잡록>에 실린 글입니다.
정여립은 시대를 앞서간 공화주의자였다습니. 국가(천하)가 공물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 주인이 반드시 군주가 아님을 주장했습니다. 이는 원시적 형태의 인민주권설의 성격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정여립은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보다 50년 앞선 최초의 공화주의자였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여립 사건이라고 일컬어지는 기축옥사를 재조명하고 정여립의 동상을 정여립로 중앙에 울력으로 세우고, 대동기념관을 만들기 위해기 사단법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단체로 만들어지고 있는 사단법인 <대동사상 기념사업회>에서 그 첫 번째 답사로 정여립과 기축옥사의 현장을 찾아가는 기행을 7월 1일(일요일)에 실시합니다.
430여 년 전에 일어났던 그 슬프지만 지난했던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는 행사를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와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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