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깨치고자 하거든 물음을 가지고 묻지 말라.
공부, 참 쓰기는 쉬운데 실천이 어렵다.
매일 하는 공부고, 자다가도 하는 것이 공부인데,
누가 대신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는 그 공부를 두고도
가끔씩 긴가, 민가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깊게, 그리고 쉽게 공부를 할 수 있을까?
“간절히 깨치고자 하거든 물음을 가지고 묻지 말라.
옛 사람들이 이르기를, 물음은 답에 있고,
답은 물음에 있다고들 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고준孤峻한 것이다.“
<벽암록>에 실린 글이다.
누구에게 묻는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득 어느 순간 깨닫는 것이 한 소식 한다는 것이라는데,
그 또한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라서
나 역시 매 일, 매 순간, 나를 채찍질 하지만
깨달음의 길은 요원하고 그저 배우고 익힐 따름이다.
그런 나에게 임제선사가 일갈한다.
“요즘 배우는 사람들이 얻는 바가 없는 까닭은 병이 어디에 있기 때문인가?
바로 자신을 믿지 못하는(不自身)데 있다.
만약 스스로 믿는 데에 부족함이 있게 되면
조급한 마음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서 온갖 대상에 휘둘려 돌고 돌뿐,
자신에게서 비롯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네가 바깥에서 뭔가를 구하려는 마음을 그칠 수 있다면,
곧 조사나 부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사와 부처를 알고자 하는가?
바로 지금 내 눈앞에서 법을 듣고 있는 사람이니라.
배우는 이가 믿음이 부족하면 곧 자기 밖에서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설령 구해서 얻은 바가 있다손 치더라도
모두 문자의 빼어난 모양새일 뿐,
살아 있는 조사의 뜻은 끝내 구하지 못할 것이다.”
자기 자신을 믿고 일로일로 매진하며 배우라는 이야기다.
내가 나를 못 믿는데, 누가 나를 믿겠는가?
어디로 가는지도, 묻지 말고 그냥 나아가자.
어차피 사는 한 평생 모 아니면 도라고 믿으며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게 못살기 때문에 생기는 번뇌가 너무 깊구나.
남은 생애, 내가 나를 믿고 내 길을 가자,
가고 또 가다가 어느 순간 그 자리에 닻을 내리는 그 순간까지.
가면서 배워야할 우리들의 운명,
고향의 뒷산 진안 백운의 덕태산을 올랐다.
고향의 뒷산 진안 백운의 덕태산을 올랐다.
얼마나 되었을까? 아마도 십 사오년, 이 쪽 저쪽,
어린 시절을 빼놓고 전주 KBS 박준열 아나운서와 함께 올랐고
오랜만에 오르는 길이다.
고향의 산은 잊어버리고 고향에서 먼 다른 지역의 산천만을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그 때, 그 사람, 박준열 아나운서는 불의의 사고로 이 세상에 없고,
장수에서 온 송현섭, 전주에서 같이 간 정상희, 김현조, 민승기, 도반들과 함께
오르는 길, 철 늦은 때죽꽃과 다래꽃이 만개해 있고,
산 오디들이 우리를 반겨 맞았다.
천천히 올라도 송골송골 맺히는 땀,
두 개의 콜라도 모자랄 듯 한 길을 가다가 보니 덕태사에 이르렀다.
가루손이 할아버지가 주지로 계시던 어린 시절,
사월 초파일이면 할머니를 따라 왔던 절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사람은 가도 추억은 남는 법인데, 어디 한 군데 눈 안에 차는 곳이 없다는 것은
세월 탓인가, 사람의 마음 탓인가,
덕태사가 해발 900M이니, 1113M인 덕태산의 정상은 100미터 남짓 되는데,
깎아지른 듯 곧추선 산길로 1km란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는 산길에 큰 바위들이 연이어 있는데,
송현섭씨가 그 바위벽에서 석이버섯을 발견했다.
귀하고 귀한 버섯, 그 버섯을 따다가 목숨을 잃기도 한다는 석이버섯,
나도 처음 보고 몇 개를 더 땄지만 무리수를 두면 안 되지,
하고 오르다보니 덕태산 정상이다.
정상에서 멀지 않은 골짜기에서 피나무를 보았던 때가
군대 가기 전 20대 초반이었고, 훗날 나는
그 때 나는 그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썼다.
*희망을 버리려고 산으로 들어갔던 때가 있었다.
작은 망태기 하나 들고, 명목상으로는 더덕을 캐러 간다고
집을 나서서는 하루 종일 그 깊고 깊은 산중을 쏘다니던 때가 있었다.
목이 마르면 향기 짙은 당귀의 싱싱한 줄기를 꺾어 먹었고,
그래도 성이 안차면 산정에 올라 굽이쳐 흘러가는 산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다 나무숲에 가려 하늘도 안 보이던 숲 속에 들어가,
희디흰 피나무에 기대어 꿈도 없이 바라보던 적막한 숲,
눅눅한 바람이 내 귓전을 스치고 지나가던 그때 그 순간도
지나고 나니 세월은 세월이었다.“
그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가버린 뒤 나는 또 다른 생각으로
또 다른 도반들과 함께 이 산을 올라서 시루봉 지나 홍두깨재를 거쳐
점진바우로 해서 내려갈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덕태산, 시루봉, 삿갓봉, 선각산, 소 덕태산 안에
소쿠리처럼 생긴 분지에 국가 치유숲이 들어선다는데,
그 안 시루봉 아래에서 한국전쟁 당시에 빨치산에게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는 저승에서 이 소식을 들으면 어떤 생각에 잠기실지,
홍두깨재에서 줄지어 사열하듯 서있는 잣나무들을 보았고,
그리고 늦게 핀 찔레꽃의 향기와 함박꽃의 향기에 취해 걸었던 그 길도
지금은 칠흑 같은 어둠이 깊게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대낮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하던 꽃의 향기들이
온 숲을 안개처럼 물들이며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걸었던 그 길도,
잃어버린 세월 속의 사진을 찾았다.
잃어버린 세월 속의 사진을 찾았다.
사진 작업을 하면서 세월 저편의 사진을 찾아 낼 때에
만감이 교차한다. 이미 지난 일이고, 추억속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올라 지난 일들을
마치 조금 전 일처럼 회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2005년 봄 한탄강을 걸었던 기억들이다.
그 추억들이 생각지도 않았던 파일 속에
숨어 있었다. 메버릭 김종우 선생님의 젊은 모습,
오십에 접어든 내 모습과 키다리 윤재훈 시인의 모습이
이날을 위해서 어둠 속에서 잠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철원, 그 쇠 둘레의 땅이다.
그 철의 삼각지대 철원에서 보낸 군대생활 삼년,
내게 잊혀 지지 않은 일들이 많았다.‘
그 중에 하나가 ‘유격장에서의 추억’이었다.
백여 명의 장병들이 발가벗고 가곡 <비목)을 배우다.
유격 훈련 중에 모처럼 한 나절 부대원들만의 시간이 있었다. 포대 부관이 백여 명쯤 우리 부대원들을 데리고 한적한 산자락으로 갔다. 뭐가 즐거운지 싱글벙글 하더니 우리들에게 우리 가곡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이었다.
나야 원래 가곡을 좋아했으니, 지겨운 유격을 안 받고 가곡을 배우겠다는데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하고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우리 모두에게 옷을 다 벗으라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자연 속에서 자연이 되어 자연과 같은 우리 가곡을 배우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자신은 안 벗고 우리들만 벗으라니, 참, 상관의 말을 거역할 수도 없고, 주저주저하는데, 장난스럽게 몇 사람이 옷을 벗자. 너도 나도 옷을 다 벗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다 벗고 4 열종대로 섰다. 이름도 희미한 그 부관의 말이 이어졌다.
“반동 준비, 지금부터 나를 따라 노래를 배운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그래, 그 ‘비목을 백여 명의 젊은 시내들이 발가벗고 좌우로 몸을 흔들며 배우고 있었으니, 처음엔 부끄럽고 슬픈 일이었지만, 나중엔 서로가 서로를 보며 웃었다.
우리는 네 시간 동안이나 그렇게 노래를 불렀다. 지금 같아서는 당장 성희롱性戱弄 죄로 걸려야 할 일이겠지만, 그러한 일이 묵인되고 자행되던 때가 1970년대 말 대한민국 군대였다. 그가 관음증 환자였는지, 아니면 군복 아래에서 자유를 갈구하던 젊은 청년들에게 숨통을 트여주기 위해서 그랬는지는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시절을 회상하며 빙긋이 미소를 지을 때가 있다,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 그렇게 <청산에 살으리라.>를 부르던 그 전라의 청년들은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서 살고 있을까?
내 인생에 대학교와 같은 역할을 했던 군대 생활을 했던 철원에서
연천을 향해 흐르는 강이 임진강의 지류 한탄강이었고,
그 강을 따라 닷새를 걸었다. 그 때 참석했던 사람이 김종우 선생님,
윤재훈 시인, 장정애, 유경하씨였다.
저마다 신문에 난 ‘한탄강 걷기’를 보고 전화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한탄강 걷기는 철원 휴전선의 지뢰밭에서 시작되었고,
여섯 명이 닷새 동안 깎아지른 듯한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논두렁길을 걸으며 온 힘을 다해 걸어야 가능했다.
그 때 심하게 아팠던 다리가 삼년이 지나서야 나았다. 하지만
그런 고통 스런 걷기를 통해 나는 더 굳세게 단련되었을 것이다.
다시 걷는다면 더 잘 걸을 수 있을까?
알 수 없지만 인생은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에
잘 걷고 잘 놀 수 있으리라 믿는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다시 내가 한탄강을 걸어야 한다면
나는 춤을 추듯 걸으리라.
산들바람에, 하늬바람에 온 몸을 맡긴 채, 그렇게,
추신: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먼 길 같이 걷는
김종우 선생님 고맙습니다.
우리들의 시대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시대다.
우리들의 시대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시대다.
‘우리들의 시대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시대‘ 라고
갈파한 사람은 독일의 철학자인 니체였다.
그 때가 1900년대 초였는데, 그때로부터 1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세상은 비극이고, 어디 한군데도 평온은 없다.
불안과 조바심이 지배하는 시대.
그 중에서도 오늘이란 날, 2018년 6월 12일은 지구상의 많은 나라,
특히 당사자국인 대한민국의 명암을 가를 날이라고 한다.
남의 나라 일이 아니고, 우리나라 우리민족 구성원들에 누구에게나
연관 지어진 미국의 트럼프와 북한의 김정은이 핵을 주제로
한판 벗어날 수도, 거역할 수도 없는 싸움판에 앉아 있다.
두 나라 당사자국의 수뇌부들이 어떤 사람인가?
“나는 오늘 지나치게 수다스러운 사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은혜라고는 모?4? 사람을 만나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별로 의아해 할 것도 없고 불안할 것도 없다.
본디 이런 사람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으니까”
일찍이 아우렐리우스가 이렇게 단정 지었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그만큼 이 나라가
양날의 검이나 동전의 양면, 또는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것과 같이
불안하고, 그래서 쓸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행인가. 행복인가? 가늠할 수는 없지만,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랬을까?
“인간이란 심한 불안감 속에서가 아니면,
권태로운 혼수상태 속에서 살기 위하여 태어난 것이다.”
볼테르가 지은 깡디드에서 마르땡의 말이다.
미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지나간 과거에 매달려서
진안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가 나를 당신을 손짓하는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미래를 꿈꾸지 마라.
너의 의무, 내가 받을 보상, 즉 너의 운명은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것이다.“
함마르셸드의 말과 같이
지금 지금 밖에 없는데, 그 지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이 곳, 저곳을 어정기리며 살다가 돌아가는 그것이
인간의 더도, 덜도 아닌 길이 아닐까?
“모든 모험은 불안을 낳는다. 하지만 모험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아예 잃는 것이다.”
키르케고르의 말을 곱씹으며
몇 시간을 마음 편히 기다리자,
우리에게 몇 시간 후는 장밋빛일까? 회색일까?
인간은 모두 살아온 내력이 다르다.
인간은 모두 살아온 내력이 다르다.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무슨 일을 해서 어떻게 사는지 그것도 모른다.
다만 그가 말해서 아는 것은
나하고 고향이 같은 진안이고 면이 다른 상전면이라는 것과,
이름은 정 아무개라는 것,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두 다리를 못 쓰기 때문에
기어 다니며 살다가 지금은 두 개의 목발과 자동차를 사용하며 살고 있고,
손까지 다쳐서 한 손으로 살았다는 것,
그리고 아내가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재원이며
공무원이라는 것, 아내를 따라가서 미래의 장모님을 만났을 때
몇 시간을 두고 줄곧 장모님이 울었다는 것,
그것만을 그가 말해서 안다.
그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은 덕태산을 올라 내려가던 길이었다.
“신정일 선생님이시죠,“
“예, 맞습니다. 무슨 일이신지”
“선생님을 뵙고 싶은데,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는지.”
“제가 답사 중이니까 내일 전화 주시지요.”
그리고 다음 날 전화가 걸려왔다.
언제 만날 수 있겠느냐고,
달리 약속도 없었고, 내 신조가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마라.” 가 아닌가,
그래서 약속을 잡고 도착한 음식점,
그는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편안해 보이는 오십대 중반의 사람, 그런데 일어나지 않고 나를 맞았다.
명함을 주면서 인사를 나누었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 것이었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았고, 열여덟 살에야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았고,
기어 다니며 살았는데도 여태껏 잘 살았다고,
무슨 일로 나를 만나려고 했느냐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정여립과 죽도에 관해 알고 싶어 만나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정여립이 의문사한 죽도와 천반산 가는 길이 너무 어려워
다리를 놓았으면 좋겠다고, 정여립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지 않느냐고,
나하고 닮은 듯, 하지만 아주 다른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목발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잘 걷지 못하지만
나는 두 발이 성성해서 나라 안에서 제일 잘 걷는다는 소리를 듣고 있으며
나라 안에서 ‘내 노라 하는 한량.’처럼 잘 살고 있다는 말을
많은 사람들에게 들으면서도
나는 지금도 어린 시절의 아픔 때문에 가슴앓이를 할 때가 많은데,
그는 팔자소관이라 돌리며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나보다 훨씬 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았는데,
나보다 더 얼굴이 편해 보이고,
나는 자동차 운전도 못하고 오도보이는커녕 자전거도 못 타는데
그는 목발을 집고도 세상을 잘 사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고 헤어질 때에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태롭게 올라가더니
승용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안녕히 들어가십시오,” 인사를 나눈 그는
나보다 더 빨리 그의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사라져 갔다.
나 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고,
그 사람 역시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었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렇게 저렇게 잘 살고 있는데,
나는 무슨 오지랖이 넓어서 세상의 이런 저런 일에 참견하고.
그 일이 잘 안된다고 쓸쓸해하고 서운해 하며 살고 있는지,
주제도 모르는 사람이 주제넘게 사는 이 한심한 나를
그날 밤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내가 나를 채근하고, 한심해 하면서 보냈으니,
그렇다. 더도 덜도 아닌
인간은 모두 살아온 내력이 다르다.
새는 울고 꽃은 진다는데,
새는 울고 꽃은 진다는데,
“산은 우뚝 솟고 시내는 흘러간다.
새는 울고 꽃은 진다. 바람은 맑고 달은 희다.
모든 것은 저절로 그 타고난 바에 맞게 그 분수를 얻는다.
우리들 사람 역시 또한 그러하기에 피차간에 간섭함이 없다.
재주 있는 사람이 마음으로 무언가에 얽매이게 되면
부러워도 하고 집착하기도 한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은 담백하여 세속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고,
세상과 더불어 서로를 잊을 뿐이다.
다만 함께 하되 얽매이지 아니하므로 더불어 한다 하다라도
서로 해치는 법이 없다.“
명나라 때 사람인 여곤呂坤의 저술 <신음어>에 실린 글이다.
사는 방법 중 이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서로를 구속하며 살고 있고,
자기 스스로도 역시 이렇게 저렇게 구속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저절로 흘러가는 시냇물을 둑으로 가둔다고 하더라도
그 물이 넘치면 다시 저절로 흐른다.
저마다 살아온 내력으로 사는 것이 인생이다. 그것을
가끔씩 이렇게 저렇게 핑계를 대며 구속하고자 하지만
마음이 저절로 허여한 것이 아니면
어딘가 막혀 있다가 어느 날 문득 그 막힌 둑이 허물어지고 마는 것이다.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하다. 자연스레 순응하고 고개 끄덕이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사는 것과 죽는 것에도 개의치 않고서,
흐르는 구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걷는다는 그 의미도 잊어버린 채 먼 길을 가고 싶은,
그 마음이 지금의 내 마음이다.
내가 너무 이것저것을 벌여 놓아서 그런가?
숲에서 혼자 그렇게 걸었다
숲에서 혼자 그렇게 걸었다
"숲에서 혼자 그렇게 걸었다
아무것도 찾지 않으면서
그 것이 내 의도였다"
괴테의 글이다.
숲은 다도 덜도 아닌 그런 곳이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우거진 숲길을 걸어갈 때,
무념무상의 상태로
내가 걷는지, 아니면 숲속에서 숲이 되었는지
모르는 그런 상태로 걸어갈 때
그 때가 가장 순수한
자연 속에 몰입되어 자연과 합일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숲은 가로 놓여 있고,
개울물은 급히 흐른다.
바위는 묵묵히 그렇게 서 있고,
비가 촉촉이 내린다.
들녘의 논밭은 기다리고
샘물이 솟는다.
바람은 잔잔히 불고,
축복이 은은하게 가득하다.“
독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의 시 한 편이다.
은은하게 가득한 축복,
그런 축복이 숲 속에 있고 인생도 그와 비슷하다.
그런 축복 속에서도 가끔씩
길을 벗어나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그 때 어떻게 해야 길을 찾을 수 있ㄴ느가?
“숲 속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가 우왕좌왕 하지 않고,
처음 마음먹은 길을 똑바로 걸어가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데카르트의 말이다.
내 고향 진안군 백운면 백암리 백운동 계곡에
지.덕.권 치유숲을 만들기 위한 포럼이 열렸다.
무엇을 담고, 어떻게 만들 것인가?
숲에서 걷고, 숲에서 놀고, 숲에서 치유하고,
숲에서 살면서, 숲을 주제로 여러 가지
사업들을 전개하기 위한 치유 숲,
그 사업이 잘 될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설렘이면서 아련한 걱정
그게 내 마음이다.
미래를 누가 감히 예측하겠는가?
그저 가보는 수 밖에,
문득 떨어지는 나뭇잎과 같은 우리들의 생,
문득 떨어지는 나뭇잎과 같은 우리들의 생,
날이면 날마다 세상은 새롭고 새로운 세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세상은 항상 소란하고 시끌시끌하다.
사람이 마음이 천태만상이라서 그런지 머리가 지끈 거릴 정도로
어지러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면 그나마 마음이 편안할까?
“어떤 오이는 맛이 쓰다. 이것은 버리는 것이 좋다.
길 한 복판에 나무더미가 놓여 있다. 이것은 피하여 지나가면 된다.
이것으로 족하다. 세상에 어찌하여 이런 것이 만들어졌는가?
하고 부질없는 생각을 첨부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대는 자연계에 친숙한 사람에게
비웃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마치 그대가 목수나 화가의 일터에서
그들이 만든 물건에 대패 밥이나 가죽 조각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문제를 제기하면, 그들에게 비웃음을 사는 것과 같다.
그런데 목수나 화공은 그 대패 밥이나 가죽 조각을 버리는 장소를 갖고 있다.“
에픽토테스의 말이다.
세상의 돌아가는 형세에 의문도 가지지 말고,
그냥 사는 게 백번 천 번 편한 것을 ?? 알면서도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걸고 아는 체 하다가
가끔씩 맞는 뒤통수, 그게 나만의 일은 아니리라.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을 두고 카뮈는 말했다.
“두더지까지도 희망을 가지려 드는 이 무시무시하고 혼란한 세계”라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개나 걸이나 다 나대는 세상이 이 세상이고,
나댈수록 더 이름이 나고 사는 게 편한 것인지,
다시 카뮈는 말했다.
“인생의 종말에 가서 사람은 단 하나의 진리를 확인하기 위하여
수많은 세월을 허비했음을 깨닫게 된다.” 고,
무엇이 진리인지, 왜 사는 것인지, 나도 모르고 그대도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저 살기 때문이다. 그러다 나도 그대도 돌아갈 것이다.
“그대와 어린이들도 나뭇잎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믿을 만하고 칭찬할만한 사람들이나,
또는 반대로 저주와 비난과 조소할만한 사람들도 역시 나뭇잎이다.
그리고 명성을 후대에 전하는 사람이나
그 명성을 받는 사람도 다 함께 나뭇잎이다.
이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봄철에 태어나는’ 것이지만
이윽고 바람이 불어 닥쳐 그들을 떨어뜨리고,
이어서 숲은 그 대신 다른 새 나뭇잎을 생산한다.
그런데 짧은 생존은 만물에게 모두가 공통된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대는 모든 사물을,
마치 영원한 생명이나 지니고 있는 것처럼,
피하기도 하고 추구하기도 한다.
극히 짧은 한동안이 지나면 그대는 눈을 감을 것이다.
그리고 그대를 무덤에 보낸 사람도 이윽고 다른 사람에 의해
무덤에 보내질 것이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였던 아우렐리우스의 글과 같이
나도 그대도 한 잎의 나뭇잎이다.
바람에 흩날리다가 문득 떨어지는 나뭇잎,
그리고 그대와 나,
꿈이 꿈이었다가 현실이 될 때가 있다.
꿈이 꿈이었다가 현실이 될 때가 있다.
꿈이 꿈이었다가 현실이 될 때가 있다.
그것도 바랄 수 없을 것 같이 체념하고 있을 때
문득 눈앞에 나타나는 기이한 일, 기적 같은 일,
이것이 꿈인가? 현실인가, 긴가, 민가 하는 것,
그럴 때가 있다.
그런 일들이 이전에도 있어서 그랬을까?
괴테의 글은 의미심장하다.
“무엇을 하건 무슨 꿈을 꾸건, 일단 시작하라.
담대함에는 재주와 힘과 마술이 담겨 있다.“
그렇다. 그것이 꿈이라고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가슴속에서 망설이기만 하면, 그것은 언제나 꿈일 뿐인데,
그 꿈을 과감하게 펼치는 순간,
그것이 위대한 현실로서 문득 나타나는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랄드는 그 ‘위대함’을 두고
꼭 집어서 다음의 세 가지를 들었다.
“희망을 가질 줄 아는 비상한 재능,
낭만적 준비성,
그리고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아는 능력”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그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감히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랄 수 없는 희망이었다가
어느 순간 바랄 수 있는, 실현가능한 희망이 되고,
그래서 인생이 살만한. 아니 살아볼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꿈이나 기적도 준비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크게 절망하지 않고는 오지 않는다.
‘삶이 왜 이렇게 지리멸렬한가? 하고
쓸쓸해하고, 절망하고, 애달파하고, 그리고,
그만두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또 느낀 뒤,
그때 비틀거리며 순식간에 온다.
”나 혼자 꿈을 꾸면, 그건 한갖 꿈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다.“
화가 ‘훈데르트 바서’의 말이 지당하다는 것을
나는 믿고 또 믿는다.
그렇지 않은가? 그대여!
사사로움으로 욕심을 적게 하는 삶을 살자.
사사로움으로 욕심을 적게 하는 삶을 살자.
저마다 자기를 위해 산다.
그 말이 맞다.
하지만 가끔씩 예외도 있다.
자신의 삶보다 더 세상을 위해 노력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의도적으로 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을 하며 살고자 하였다.
그리고 일정부분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가끔씩 좌절도 하고, 쓸쓸해하면서 사는데,
보상처럼, 아니면 기적처럼 가끔씩 어떤 일이 이루어 질 때가 있다.
지금이 그때인가, 아닌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신기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조심하고 조심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글을 씁니다.
나에겐 특정한 독자란 없습니다. ...
작가는 독자를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독자를 염두에 둔다면 그 독자를 매도하기 위해
쓰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절대로 독자의 마음에 들려고 글을 써서는 안 됩니다.“
앙드레 지드의 말이다. 그의 말과 같이 누군가를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을 위해서 글을 쓰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 노자의 말을 가끔씩 기억할 일이다.
“오로지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질박을 위주로 할 것이며,
사사로움으로 욕심을 적게 해야 한다.”
노자 19장에 실린 글이다.
이렇게 살면 되는데, 그게 어렵고도 어렵다.
하지만 단언 코 살아야 할 삶, 그 삶이 아닐까?
무심無心의 경지가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무심無心의 경지가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견오肩吾가 손숙오孫叔敖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세 번이나 재상의 자리에 올라도
그것을 영예로 생각하지 않고,
세 번이나 거기서 물러나도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선생님의 진의를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니 선생님의 숨결이 허허롭습니다.
선생님의 마음가짐은 도대체 어떠하십니까?“
이 말을 들은 손숙오가 대답했다.
“내가 남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오는 것을 물리치지 아니하고,
떠나는 것을 붙잡지 않을 뿐입니다.
얻고 잃음은 나와 관계없는 것,
그러기에 걱정하는 기색이 없을 뿐입니다.
내가 남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더구나 그 영예가 지위 때문인지,
나 자신 때문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지위 때문이라면 나하고는 상관이 없고,
나 때문이라면 지위와는 상관없는 것,
나는 그저 의연한 마음으로 사방을 둘러 보려하는데,
어느 겨를에 사람들이 나를 귀하게 여기거나
천하게 여기는 일 같은데 마음을 쓰겠습니까?“
<장자>의 ‘전자방田子方’에 실린 글이다.
의연한 마음으로 남들의 평가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살다가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참 인생이라는 것인데,
쉽지 않지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태어났다가
돌아갈 때,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돌아가므로
그 욕심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부질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닌
그러한 것은 별개로 여기며 살아간다면
바람만 지나가는 허허벌판에 있어도
따사로운 방안에 있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지 않을까?
“육중한 바위가 바람에 움직이지 않듯,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칭찬이나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다.“
“법구경> 제 81장에 실린 글이다.
세상의 모든 것, 오고 가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자연自然 그대의 마음으로 놓아두고, 내버려두는 것,
그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바람직한 자세라는 것을
살아갈수록 더욱 더 절실하게 깨닫는다.
자! 지금도 저렇게 시간은 재깍재깍 소리를 내며
흐르고, 우리들 역시 왔던 곳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오랜 시간을 기다린다는 것
오랜 시간을 기다린다는 것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는 울어야 한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의 몇 소절이다.
모든 일들이 다 그렇다.
하나의 목적을 설정하고 달성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번갯불에 콩 꿔먹듯이
모든 일들이 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여기며
살다가 차일피일 시간만 가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금세 싫증을 내고 때려치우는 일들이
부지기수로 많다.
나 역시 그런 일들이 많았다.
그러나 살다가 보니, 이루어져도 그만 안 이루어져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지나고 나면 세상의 그 어떤 일도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한 세상을 사는 일이
결과가 아니고 과정이라는 것,
그리고 한 사람의 생이 마감되는 날까지
그 누구도 한 사람의 삶과 생애를
예단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무심을 견지하자.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크게 동요하지 않고,
무심히 바라보는 마음의 자세,
그것이 필요한 시간이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느라고
새벽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움직이는 비애가 어둠 속을 헤치고 와서
창문을 두드리는 이 새벽,
내 마음은 어딘가를 향해 하염없이 발길을
옮기고 또 옮길 것인지,
비가 오면 밥은 안 먹습니까?
비가 오면 밥은 안 먹습니까?
장마 때나 큰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 들릴 때
답사 일정이 잡히면, 여기저기서 전화가 빗발친다.
“비가와도 갑니까?”
나는 그 말에 이렇게 대답한다.
“비가 오면 밥은 안 먹습니까?”
“한 번 비에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는데요,
그렇게 말하면 “그렇긴 하네요.” 하면서
목소리가 밝아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걱정스런 목소리로 ‘비가 많이 온다는데.“
하면서 말꼬리를 흐리는 사람이 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구름이 끼면 끼는 대로,
날이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다 아름다움으로 채색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 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깊은 산 여름 장맛비를 맞으며, 그대를 찾아갈 때,
종이와 먹물이 비에 젖어 못쓰게 될까 걱정했지요,
시를 쓰고 싶었지만, 술에 취한 뒤 글씨를 쓰니
구름이 덩어리진 듯합니다.
바로 이 그림과 같으니 웃음거리외다.“
이인상李麟祥의 <소용돌이치는 구름(와운渦雲)>이라는 시 한 편이다.
구름이 덩어리가 지면 어떻고,
장맛비가 황토 빛 탁류로 물들든 어떠랴,
산이 있고, 나무들이 있고, 그 속에서 스스로 자연이 되어 자연스레
어정거리며, 소요하듯, 산책하듯 노닐다가 돌아오면 되는 것을
우리는 너무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이것도 놓치고 저것도 놓치고, 훗날에야,
“내 이럴 줄 알았다,“ 라고 혼잣말을 하며
불현 듯 돌아가지나 않을까?
“소양강 가를 걷네, 소양양가를 걷네.
유월의 마지막 날 소양강 둘레 옛 길을 걷네.
길 옆 담벼락에 푸른 이끼가 푸른 잔디를 깔아 놓은 듯,
담벼락에서 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리고,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
나뭇잎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는데
어젯밤 내린 비로 푸른 강물이
언제 적 얘기냐는 듯이
황토 빛으로 유유히 흐르는데,
황하 강가를 걷네. 황하 강가를 걷네,
걸으면 걸을수록 묵은 그리움이 묻어나는
소양강 옛길을 걷네, 소양강 옛길을 걷네.
고적하여라. 고적하여라.
구부러지고 축 늘어진 소나무,
강가에 닿아 강물을 만지작거리려는 듯,
푸르고 푸른 나무들이
우거진 길을 걷네, 숲이 우거진 소양강 길을 걷네.“
지나고 나니 더 더욱 선명하게 되살아오는
자작나무 길과 소양강 둘레 길에 지금쯤 비가 내리고 있을까?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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