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자료 모음

남도문화의 산실인 강진과 해남을 지나 영암과 나주를 걷다.

산중산담 2019. 6. 26. 14:56



남도문화의 산실인 강진과 해남을 지나 영암과 나주를 걷다.

남도문화의 산실인 강진과 해남을 지나 영암과 나주를 걷다.

 

2019125()에서 127(일요일)까지 사람들이 가장 싶어 하는 곳, 남도의 강진과 해남, 그리고 화순 운주사 일대를 답사합니다. ‘잘 놀면서 잘 걷고, 잘 배우자.’는 취지를 가지고 우리 문화와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는 남도 답사에서 남도의 맛깔스런 맛과 아름다운 자연에 흠뻑 취해 볼 예정입니다.

 

예로부터 강진 대합이 유명하다는 뜻으로 강진康津 원님 대합 자랑하듯 한다.” 는 속담이 있는 강진은 백제 때 도무군(道武郡)이었고, 고려 때에 도강현(道康縣)으로 고쳤다. 태종 17년에 도강현과 탐진현을 합하면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강진군에 강진읍의 지형과 관련이 있는 <연지설화>가 있다.

350여 년 전 일이다. 강진에 부임한 역대 현감들은 아전들의 횡포로 인하여 소신 있는 행정을 펼 수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어떤 때에는 현감의 자리가 공백일 때도 있었다. 효종 4년인 16653년에 신유가 현감으로 부임하여, 아전의 횡포가 강진의 지세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진의 지세는 누워 있는 황소의 형국, 즉 와우형臥牛形이었다. 신유는 황소는 코뚜레를 뚫어야 말을 듣는다는 점에 착안하여 코뚜레 자리에 연지를 파서 지세를 누르자 아전들의 횡포가 사라지고 덕치를 펼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어린이 공원 주변이 옛날 연못이 있던 곳이다.

이곳 강진은 다산 정약용이 17년에 걸쳐 유배생활을 한 강진의 만덕산을 윤회尹淮는 기문에서전라도 강진현 남쪽에 우뚝 솟아 맑고 빼어난 산이 바닷가에 이르러 머물렀으니, 만덕산이라 한다., 산의 남쪽에 부처의 궁전이 있어 높고 시원하게 트이어 바다를 굽어보고 있으니, 백련사가 곧 그것이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신라 때에 처음 세웠고, 고려의 원묘圓妙대사가 새로 중수하였는데, 전해 내려와 11대의 무외대사 때에 이르러서는 항상 법화도량이 되어 동방의 이름난 절로 일컬어졌다. 섬 오랑캐가 날뛰게 되자 바다를 등진 깊은 지역이 폐허가 되어 버렸으며, 절도 그 성쇠를 같이 하였다.”

 

남쪽나라 따뜻하여 겨울에도 눈이 없고

강진의 접경에 해남이 있다. 정인지는 그의 시에서 물이 부상만리(浮上萬里)의 하늘에 닿아 있다하였고 고득종高得宗마음은 해 아래(日下) 달리니, 삼산三山이 멀고, 눈은 하늘가를 바라보니, 오색구름이 떠 있도다.”고 하였던 해남을 조선 중기의 문장가인 성연成俔<정원루기靖遠樓記>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성곽은 바다가 다한 곳에 평평히 임해 있는데, 풍연風煙 십리에 나그네가 누각에 오르네. 희미한 구름이 들을 휩싸니 산은 그림 같고, 큰 물결은 하늘을 적시어 땅이 뜨는듯하네. 반년동안 나그네의 수심이 날로날로 더하는데, 채찍 하나 든 행색行色으로 고을고을을 두루 다니네. 만 리 건곤을 다 둘러보려면 장마 걷는 새 가을을 넓여야겠네.“

 

육지에서 가장 끝 부분이라서 땅 끝 탑이 있는 해남은 백제 때는 세금현(세금현)이었으나 조선 태종 9년에 진도현(珍島縣)과 합쳐 해진현(海珍縣)이 되었다. 그 뒤 태종 12(1412)에 고을의 치소(治所)를 영암에 딸린 옥산으로 옮겼다. 그 뒤 세종 19(1437)에 해남과 진도를 다시 나누어 해남현으로 복구하고 현감을 두었다. 조계생이 그의 시에 남쪽나라 따뜻하여 겨울에도 눈이 없고, 굽이진 물가에서 소금을 구니 낮에도 연기가 이네라고 했던 해남은 제주도로 가는 길목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유배의 땅으로 이름이 높았다. 이 지역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 고금도에 가서는 족보 자랑을 하지 말라하는데, 당파싸움에 밀려 쫓겨 왔을지라도 뼈대 있는 집안의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살았던 곳이 해남이다. 속담에 해남 원님 참게 자랑하듯 한다.” 는 말이 유래한 해남에선 현재 해남 물고구마가 이름이 높다.

 

해남읍에서 멀지 않은 두류산 밑에 대둔사가 있고 그 땅끝 기맥이 끝나는 지점에 미황사(美黃寺)가 있다. 미황사는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달마산에 있는 절이다.

미황사에서 도솔암 가는 길이 얼마나 그윽하고 아름다운지, 그리고 강진을 나주로 갑니다.

1018년 전주와 나주의 이름 한 자씩을 합해서 만든 전라도의 중심도시 나주에는 문화유산과 많지만 나주 홍어가 이름이 높다.

홍어하면 떠올리게 되는 흑산도 홍어는 흑산도 근해에서 잡히는 홍어다. 흑산 홍어는 인천이나 군산에서 잡히는 홍어와 달리 육포 자체가 씹으면 입에 착 달라붙을 정도로 차지고 맛이 좋다.

이 홍어를 먹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다. 껍질을 벗겨 날 것 그대로를 초고추장이나 겨자를 넣은 간장에 찍어먹거나, 막걸리와 같이 먹는 홍 탁, 삶은 돼지고기를 얇게 썰고 배추김치와 함께 먹는 삼합三合, 양념을 묻혀 구어 먹는 것, 겨울철에 푸르게 자란 보리 싹과 내장을 넣어 끓인 국, 날 것을 옹기그릇에 담아놓았다가 며칠 뒤 꺼내먹으면 입안이 화끈하게 퍼지는 매운 맛이 일품이다.

이 뱃길을 통하여 흑산도 홍어와 추자도의 멸치젓 배가 드나들었다. 그때의 영광은 찾을 수 없지만 지금도 영산포에는 홍어洪魚를 조리해 파는 상점들이 여러 곳 남아있는데 영산홍가’ ‘선창홍어’ ‘호남수산등의 홍어집들이 그 유명세를 가지고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겨울의 한 복판에서 남도의 맛과 멋에 취하고 싶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