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자료 모음

지리산의 역사 문화공부 그리고 이른 봄, 매화꽃 핀 섬진강과 지리산 자락을 걷는다

산중산담 2019. 6. 26. 15:13




지리산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며 지리산 길을 걷는다.

지리산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며 지리산 길을 걷는다.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에서 매달 한 차례씩 지리산 길을 걷습니다. 다른 단체와 달리 지리산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답사하며 걷게 될 이번 여정은 매 달 한 차례 첫째 주 토요일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 첫 번째 여정이 46일 토요일에 펼쳐지는 지리산 둘레 길 1코스인 주천에서 운봉에 이르는 구간이고, 그리고 답사는 남원 시내의 문화유산이 될 것입니다.

 

민족의 성산 지리산, 전북과 전남, 그리고 경남 3개도와 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 등 5개 시도에 걸쳐 있는 이산을 두고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풍년과 흉년을 모르는 산 지리산이라고 평했습니다.

 

흙의 성질이 두텁고 기름지므로 온 산이 모두 사람이 살기에 알맞은 곳이다. 산 속에는 백리나 되는 긴 골짜기가 많은데, 바깥쪽은 좁지만, 안쪽은 넓기 때문에 가끔 사람이 발견하지 못한 곳도 있으므로, 나라에 세금稅金도 바치지 않는다.

땅이 남해에 가까워 기후가 따뜻하므로 산속에는 대나무가 많고, 또 감과 밤이 대단히 많아서 가꾸는 사람이 없어도 저절로 열렸다가 저절로 떨어진다.

높은 산봉우리 위에 기장이나 조를 뿌려 두어도 무성하게 자라지 않는 곳이 없다. 평지의 밭에도 모두 심을 수 있으므로 산 속에는 촌사람과 섞여서 살아간다.

스님이나 속인들이 대나무를 꺾고, 감과 밤을 주워서 살기 때문에 수고하지 않아도 생리生利가 족하다.

농부와 공인들 역시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모두 충족하게 살아간다. 이런 까닭으로 이 산에 사는 백성들은 풍년과 흉년을 모르고 지내므로 부산富山이라고 부른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실린 글이다. 이중환의 말처럼 지리산은 수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육산이다. 그래서 조용헌 선생은 골산(骨山)과 육산(肉山)을 빗대어 사는 것이 외롭다고 느낄 때는 지리산의 품에 안기고, 기운이 빠져 몸이 쳐질 때는 설악산의 바위 맛을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원의 동쪽에 자리 잡은 지리산이 신증동국여지승람산천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지리산은 부의 동쪽 60리에 있다. 산세(山勢)가 높고 웅대하여 수백 리에 웅거하였으니, 여진 백두산의 산맥이 뻗어내려 여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두류(頭流)라고도 부른다. 혹은 백두산의 맥은 바다에 이르러 그치는데 이곳에서 잠시 정류하였다 하여 유()자는 유()로 쓰는 것이 옳다 한다. 또 지리(地理)라고 이름하고 또 방장(方丈)이라고도 하였으니, 두보(杜甫)의 시 방장삼한외(方丈三韓外)의 주()와 통감(通監) 집람(輯覽)에서 방장이 대방군의 남쪽에 있다.’한 곳이 이곳이다. 신라는 이것으로 남악(南岳)을 삼아 중사(中祀)에 올렸다. 고려와 본조에서도 모두 이에 따랐다. 산 둘레에는 십 주()가 있는데, 그 북쪽은 함양이요, 동남쪽은 진주(晋州), 서쪽에는 남원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기이한 봉우리와 깍은 듯한 절벽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데, 동쪽은 천왕봉과 서쪽의 반야봉(般若峯)이 가장 높으니 산허리에 혹 구름이 끼고 비가 오며 뇌성과 번개가 요란해도 그 위 산봉우리는 청명하다. 해마다 가을 하늘이 높으면 새매가 북쪽에서 모여드는데 열군(列郡)의 사람들이 다투어 그물을 쳐서 잡는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태을(太乙:북극의 신)이 그 위에 살고 있으니 많은 신선들이 모이는 곳이며, 용상(龍象)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도 한다.’

<신정일의 <우리 산하>에서

 









이른 봄, 매화꽃 핀 섬진강과 지리산 자락을 걷는다.

이른 봄, 매화꽃 핀 섬진강과 지리산 자락을 걷는다.

 

매화 시들고 나니

해당화가 새빨갛게 물이 들었네.

들장미 피고 나면 꽃 다 피는가 하였더니

찔레꽃 가닥가닥 담장을 넘어오데.

중국의 시인 왕기가 노래한 매화꽃 피고, 해당화 피고 찔레꽃이 아직 피기 도 전

섬진강변에 핀 매화꽃을 보러 2월 말에 떠납니다.

 

우리나라에서 일곱 번째로 긴 섬진강은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봉황산 자락 데미샘에서 시작됩니다. 마이산 자락을 지나고, 사선대와 섬진강댐을 거쳐 순창에 이르고 남원 곡성 구례 하동을 거쳐 광양에서 남해로 들어가는 213km의 강입니다.

요천이 금지와 곡성 부근에서 섬진강으로 합류하고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는 곡성군 압록 아래 부근에 유곡나루가 있습니다.

곡성에서 두가교에 이르는 섬진강을 걷고 여정은 유곡나루에 이릅니다.

 

옛날부터 느릅나무가 많아서 유곡리라고 불리는 섬진강변에 곡성면 죽곡면 하한리로 건너가는 나루가 있었다. 196070년대 우리들의 삶이 어려웠을 때 일본인 관광객들이 신간선 왕복 기차 값만 가지고도 34일 조선 관광을 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그 시절을 시인 곽재구는 <유곡나루>라는 시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육만엔이란다.

후쿠오카에서 비행기 타고 전세버스 타고

부산 거쳐 순천 지나 섬진강 물 맑은 유곡나루

아이스박스 들고 허리 차는 고무장화 신고

은어잡이 나온 일본 관광객들

삼박사일 풀코스에 육만엔이란다.

초가지붕 위로 피어 오르는 아침햇살

선선하게 터지는 박꽃넝쿨 바라보며

니빠나 모노데스네 니빠나 모노데스네

가스불에 은어 소금구이 살살 혀 굴리면서

신간선 왕복 기차값이면 조선 관광 다 끝난단다.

 

육만엔이란다 낚시대 접고 고무장화 벗고

순천 특급호텔 사우나에서 몸 풀고 나면

긴밤 내내 미끈한 풋가시내들 서비스 볼 만한데

나이 예순 일본 관광객들 칙사 대접받고

아이스박스 가득 등살 푸른 섬진강

맑은 몸값이 육만엔이란다.

 

이 시에 곡을 붙여 부른 가수 정태춘은 곽재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 시의 끝에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좆돼 부렀네라는 가사를 집어넣었다.

 

섬진강은 압록에서 보성강을 받아들인 뒤 구례에 이릅니다.

 

동쪽으로는 지리산을 잡아당기고, 서쪽으로는 봉성산鳳城山을 등지고 있다. 긴 강이 띠를 두른 모양으로 흐르고 있으며, 늘어선 봉우리들이 눈앞에 차려진 밥상처럼 줄지어 늘어서 있다. 영역은 비록 비좁지만, 참으로 호남과 영남 사이에 자리한 산수山水의 고을이라고 하겠다.” <여지도서>에 실린 구례의 형승입니다. 구례에서 밤재 지나 남원에 이르는 지리산 둘레 길을 걸으며 봄이 오는 소리, 이른 봄꽃들을 보고 싶은 분들을 기다립니다.

1. 일시: 2019224(일요일





봄꽃(매화, 산수유등)이 활짝 핀 섬진강을 걸으며 노닐다.

봄꽃(매화, 산수유등)이 활짝 핀 섬진강을 걸으며 노닐다.

 

매년 봄날 그곳에 가지 않으면 한 해가 금세 지나갈 것 같아서 가는 곳이 바로 섬진강 중류,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에서 동계면의 장구목지나 강경마을로 가는 섬진강입니다.

매화꽃, 산수유꽃이 만발한 그곳을 거닐며 봄을 맞이할 시절이 바로, , 3월 중순입니다.

 

매화는 사람을 고상하게 하고, 난초는 사람을 그윽하게 하며, 국화는 사람을 소박하게 하고, 연꽃은 사람을 담백하게 한다. 봄 해당화는 사람을 요염하게 하고, 모란은 사람을 호방하게 한다. 파초와 대나무는 사람을 운치 있게 하고, 가을 해당화는 사람을 어여쁘게 한다. 소나무는 사람을 빼어나게 하고, 오동은 사람을 해맑게 하며, 버들은 사람에게 느낌을 갖도록 한다.” <유몽영> 속에 실린 여러 가지 풀과 나무를 칭한 글이다.

316일 토요일, 봄이 사뿐히 내려앉은 아름다운 섬진강, 그 중에서도 섬진강의 물줄기가 가장 아름다운 섬진강의 중류를 매화꽃, 산수유 꽃을 보며 걷습니다.

 

여러 산이 줄지어 있고, 물 한 줄기 둘러 흐른다.”동국여지승람산천조에 실린 임실의 풍경이다. “산과 산이 첩첩이 둘러싸여 있어 병풍을 두른 것처럼 아름다운 곳이다라고 표현 된 임실은 살 제 남원 죽어 임실이라는 말도 있다.

조선시대 이곳 임실을 찾았던 신숙주申叔舟는 객관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말을 타고 유유히 가니 만리의 정(萬里情)이요. 저녁에 외로운 객관에 드니, 온 천지가 맑구나. 뜰 앞에 작약芍藥은 붉은 것이 시들려는 듯, 담장 밖 멧부리는 푸르게 멀리 연하였네. 10묘의 볏모는 흐르는 물이 어둡고 몇 집 되는 마을에는 엷은 연기 일어나네. 객창客窓이 적막헌데 오직 달만이 밝고, 꿈을 깨니 뭇 개구리 한바탕 노래 소리로구나.”,

 

여그가 동네 사람들이 삼을 삶던 곳이 예요. 삼을 째서 벗기던 이곳을 다른 동네 사람들이 지나갈 때는 담배도 안 피워야 하고 술 먹고 가다가는 얻어맞기가 일쑤였어요 나그네가 지나갈 때는 느티나무를 돌아가야 했어요...

저 강가가 얼마나 고기가 많던지 고기 반 물 반 했어요 우리 어머니가 용택아 다슬기 잡아 가지고 올텡개, 불 때고 있어라하고 나간 뒤 불 때고 있으면 금방 가서 한바가지 잡아가지고 오는디, 바가지만 가지고 가서 손으로 이렇게 더듬으면 한 주먹 되고 이렇게 하면 또 한 주먹 되고 그래서 금방 한바가지를 잡아 가지고 왔어요....

도시의 나무들은 전봇대 때문에 나무들이 잘 크지를 못하잖아요 고기들도 잠을 자고 나무들도 잡을 자거든요 풀도 밤에는 잠을 자는데 도시의 배미들은 새벽에도 잠을 자지 않고 우는디 그게 정상이 아니에요. 그래서 예전엔 밤고기를 많이 잡았어요.

멍쳉이라고 부르는 고기가 있는디 얼마나 멍창한가. 손바닥보다 큰 고기가 두손으로 잡을 때까지는 가만히 있다가 밖으로 나온 담에야 부르르 몸을 떨었거든요.

고기 잡는 방법이 많이도 있어,요 그중 재미있는 것이 큰 메로 바위를 때리면 고기들이 기절해서 쑥쑥 나오거든요 그래서 진메마을 앞에 상처 없는 바위가 없다라는 말이 생겨난거예요

김용택 시인의 말이다.

 

이곳 내령內靈리는 본래 임실군 영계면의 지역으로 영계면에서 가장 안쪽이 되므로 안영계 또는 내령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장군목, 장구목, 장군항, 물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산(345m)과 용골산 사이 산자락 밑에 위치한 이 마을에는 장군대좌형의 명당이었다고 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곳 내룡마을 부근이 섬진강 중에서도 아름답기 이를 데 없는 곳이라는 것이다. 저마다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수많은 바위들이 강을 수놓은 가운데 바라보면 볼수록 기기묘묘한 바위가 요강바위이다. 큰 마을 사람들이 저녁 내내 싸도 채워질 것 같지 않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요강처럼 뻥 뚫린 이 바위를 한때 잃어버렸던 적이 있었다. 박준열부장이 남원 KBS에 근무하던 때였다니까 94년쯤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이 마을에 와서 골재채취업자라고 한후 한참을 지냈다고 한다. 마을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막걸리도 사주고 밤을 새워 이야기도 하면서 한 두어 달 지냈다든가 밤마다 포크레인으로 골재채취를 한다고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 사람도 사라지고 요강바위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발칵 뒤집힌 마을 사람들이 남원 KBS에 연락을 해서 전국방송으로 내보낸 뒤 마을 사람의 인상착의를 알려주어 몽타주를 만들어 보냈다. 그런 뒤 두어 달 지났을까 경기도 지역에서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언젠가 방송에서 보았던 그 바위가 모모지역에 있더라 그래서 경찰들을 급파해보니 자기 집에는 두지 못하고 외딴 곳에 숨겨놓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사람은 붙잡혀 감옥에 가고 요강바위는 약간의 상처를 입은 뒤에 이 고향에 되돌아 올 수 있었다고 한다.

 

봄날에 일찍 피어 바람에 휘날리는 매화꽃을 바라보며 거닐고 싶은 분은 함께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