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지에서 정선으로 가던 철길에서의 추억, 한강을 여러 번 걸었다. 하나의 강을 다섯 번이나, 그 강이 바로 한강이다. 처음 걸었던 때가 2001년 이른 봄이었다. 검용소의 맑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걷기 시작한 그 길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사물, 그리고 우리국토의 속살을 보았는데, 그때 가슴에 포근히 안겼던 풍경 들 중 기억에 오래 남은 길이 아우라지에서 정선까지 이어진 정선역 철길이었다. 구절리역에서 열차를 타고 아우라지역에 왔고, 그 곳에서 철길과 국도를 번갈아 걸었다. 그 때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나는 소나무가 휘늘어져 있는 철길 위에 퍼지르고 누워 김지하 시인의 시 한 편을 떠올린다. <모래내> 김지하 목숨 이리 긴 것을 가도 가도 끝없는 것을 내 몰라 흘러 흘러서 예까지 왔나 에헤라 철길에 누워 철길에 누워 한없이 머릿속으로 얼굴들이 흐르네 막막한 귓속으로 애 울음소리 가득 차 흘러 내 애기 핏속으로 넋 속으로 눈물 속으로 퍼지다가 문득 가위소리에 놀라 몸을 떠는 모래내 철길에 누워 한 번은 끊어버리랴 이리 긴 목숨 끊어 에헤라 기어이 끊어 어허 내 못한다 모래내 차디찬 하늘 흘러와 다시는 내 못 가누나 어허 내 못 돌아가 에헤라 별빛 시린 교외선 철길에 누워 철길에 누워,“ 이 시를 접했던 젊은 시절, 철길을 걸어갈 때마다 얼마나 많은 자살의 유혹에 시달렸던가. 그러나 나는 실행하지는 못하고 계속 다음, 그 다음을 기다리다가 이 나이에 정선으로 향하는 철길을 걸으며 그 시절을 회상하는 것이리라.
「안내원 없음」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건널목을 건너자 철다리가 나타난다. 길은 강을 따라 펼쳐져 있지만 돌아가야 하니, 철교를 건너기로 작정한다. “철교를 건너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의 과태료에 처합니다.” 나는 그 표지판을 무시하고 건너간다. 1천만원짜리 대박(?)을 철로를 건너며 터뜨리고자 건너가는데 생각보다 철교가 멀기는 멀다. 촘촘히 연결된 침목을 건너서 바라본 강물은 짙푸르기 이를 데 없다. 여섯 명이 무사히 건넜으니 6천만원을 번 셈이 아닌가. 장열리에서 나진으로 건너던 나루터는 사라져 없고 철길 너머로 붉은 언덕이 푸르른 녹음 사이로 보인다. 긴 다리 장열대교를 지나 강 길을 따라 걷는다.“ 그때로부터 세 번을 더 많은 도반과 걸었고, 다시 또 백여 명의 도반들과 다음 달에 걸어갈 것이다. 청담동에 있는 2만 여 평의 땅은 이렇게 해서 번 돈과 ‘금고털이 범’이 아닌 봄, 여름, 가을 사시사철 ‘꽃 털이범으로 벌어서 산 것을 어느 누가 알기나 할까? 이렇게 시덥고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 걷는 것이 우리 강(한강, 낙동강, 금강, 섬진강, 영산강, 우리나라 옛길,(영남대로, 삼남대로, 관동대로 등)과 동해 바닷가 길(해파랑 길) 그리고 서해안과 휴전선 길이었다. 우리 국토를 사십 여 년 간 이렇게 저렇게 걷고 또 걷다가 보니 어느 새, 2019년이다. 언제까지 걷고 또 걸을지 모르지만, 가끔씩 스스로 다짐하는 길을 걷다가 생을 마감하는 객사客死를 꿈꾸며, 내일도 모레도 걸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떠돈다는 것이고, 쉰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다.“ 용재 성현의 말을 경구처럼 떠올리며 걷고 또 걸어갈 길이여, 삶이여. 2019년 3월 3일 월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