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자료 모음

문경의 봉암사와 팔공산의 두 절집, 은해사의 부속암자인 백흥암, 그리고 영천의 거조암을

산중산담 2019. 6. 26. 15:51




아름다운 절집을 찾아 떠나는 삼사三寺기행

2019년 석가 탄신일에 아름다운 절집을 찾아 떠나는 삼사三寺기행

 

2019년 석가탄신일에 떠나는 삼사三寺기행이 나라 안에 아름답기로 소문난 세 절을 찾아갑니다. 석가탄신일에만 산문이 열리는 절인 문경의 봉암사와 팔공산의 두 절집, 은해사의 부속암자인 백흥암, 그리고 영천의 거조암을 찾아갑니다.

511일 토요일 밤 7시에 출발하여 문경에서 하룻밤 묵고 12(석탄일) 봉암사에서 아침을 맞고, 영천의 백홍암과 거조암을 찾아가는 이번 기행에 참여를 바랍니다.

 

산문을 굳게 닫아놓고 일반인의 접근을 스님들이 몽둥이를 들고 지켜낸 이 땅의 마지막 청정도량이자 가장 폐쇄성을 지닌 절이 문경 희양산 봉암사이다. 봉암사는 1982년 조계종 종립선원(특별 수도원)으로 지정되어 참배하러오는 봉암사 신도 외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사찰 소유림과 법당 4km이내의 경내지는 어떤 위락시설도 들어서지 못할 뿐만 아니라 등산로도 이용 할 수가 없다.

 

보통 일반사찰에서는 하안거(夏安居)와 동안거(冬安居)를 각각 3개월을 수행하고 나머지 기간은 해제를 한다. 그러나 봉암사는 해제 기간 없이 계속 참선과 수행을 한다.

 

예외적으로 문경 찻사발 축제 때 산문을 열기도 하지만 봉암사는 사월 초파일, 일 년에 단 하루 산문을 연다.

 

이런 봉암사에 뒤지지 않는 폐쇄성을 지닌 절집이 팔공산의 두 절집, 은해사의 부속암자인 백흥암과 동화사 금당선원이 있는 금당암이다. 백흥암은 비구니, 금당암은 비구선원이다.

 

팔공산 백흥암과 금당암은 온갖 보물을 간직한 채 평소에는 일반대중의 출입을 철저히 막았다.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도둑고양이처럼 살며시 찾아 들지만 번번이 스님들의 불호령과 저항으로 허탕치고 돌아왔다. 먼발치에서 절집의 외형만을 바라보고 돌아서는 안타까운 심정은 답사객이라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 두 절집도 부처님 오신 날에만 산문이 열린다.

 

이번 석가탄신일 삼사기행에는 국가지정문화재(국보 1, 보물 13) 14점을 비롯한 무수한 지방문화재를 만나며 이름난 대찰이자 고찰인 봉암사와 동화사, 은해사가 깃든 희양산과 팔공산의 위용을 만나고 최치원, 추사의 서향과 근세의 성철 등 고승의 흔적도 느낄 수 있다.

 

부처님오신 날, 절집의 닫혀있던 보물창고를 활짝 열어 제치고 마음껏 감상하자. 기대만큼 찬란하고 만족할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3만 이상의 인파가 몰린다는 봉암사이다. 번잡하기 전 이른 아침 산사를 둘러보고 청량한 기운과 함께 아침 공양을 마치고 빠져 나와 팔공산 자락으로 들어 갈 예정이다.

 

<팔공산 백흥암과 은해사>

 

1.백흥암 극락전(보물 제790)

2.백흥암 극락전 수미단(보물 제486)--우리나라 최고의 불단

3.추사 김정희의 글씨

이 절에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여러 개 남아있다. 보화루의 산해숭심(山海崇深)’, 진영각의 십홀방장(十笏方丈)’편액과 6개의 주련이 추사의 글씨이다.

십홀방장() 열 개를 이어놓은 길이, 곧 사방 1(10) 되는 작은 방을 의미하니 큰 산중의 어른인 방장이나 그가 쓰는 방을 가리킨다. 이 글씨는 추사가 귀향에서 해배되고 난 후에 적은 것으로 보이며 굳건하고 힘이 가득한 수작이다.

 

또 허영만화백의 만화 <식객>에는 백흥암의 미나리를 다룬 내용이 나온다. 그 만큼 백흥암 미나리를 비롯한 나물 반찬이 청결하고 맛있다는 이야기 일 것이다.

 

5.은해사

은해사는 동화사와 더불어 팔공산을 대표하는 큰 절 집으로 조계종 제10교구의 본사이다. 은해사는 인종의 태실 수봉사찰로 왕실로부터 많은 재산을 받아 토지개혁이 이루어지기 전 일제까지만 해도 고성 금강산 건봉사에 이어 전국 두 번째 부찰이었다.

 

많은 건물들을 옮기고 새로 지은 까닭에 고풍스런 맛이 많이 사라져 대찰이라는 명성에 비해 절집은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그러나 일주문에서 절집에 이르는 길은 수풀이 우거져 상쾌한 청량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은해사는 추사체의 보고이다. 2층 누각 보화루의 편액 보화루(寶華樓)’와 보화루와 일직선상에 있는 대웅전(大雄殿) 편액이 추사의 글씨이다. 대웅전 옆 기도하는 스님이 묵는 노전의 일노향각(一爐香閣)도 추사의 묵계(墨界)이다.

 

얼마 전까지는 일주문의 편액인 은해사(銀海寺)’도 추사의 작품이었으나, 일주문을 증개축하면서 추사의 작품은 은해사 성보박물관에서 맛보게 되었다. 박물관에는 추사의 작품인 불광(佛光)’도 감상할 수 있다.

 

대표적 유물로는 은해사 괘불탱(보물 제1270)과 은해사순치3년명 금고(보물 1604)가 있다. 괘불탱은 조선 영조 26(1750)에 그려진 그림으로 10.56×4.74m의 크기이며 독존도 형식의 아미타여래상이 그려져 있다.(은해사 성보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는 백흥암에서 점심 공양을 할 예정이다.

백홍암을 지나 찾아가는 절이 나라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 중의 한 곳인 거조암이다.

 

거조암은 경북 영천시 청통면 신권동 팔공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은해사의 산내 암자이다. 원효스님이 693(효소왕 2)에 창건하였다는 설과 경덕왕 때 왕명으로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 뒤 고려시대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송광사에 수선사를 세워 정혜결사에 들어가기 전에 각 종파의 법력 높은 스님들을 모시고 몇 해 동안 정혜定慧를 익혔던 사찰로 유명하다.

1182년 지눌은 개성 보제사의 담선법회에 참여하여 선정을 익히고 지혜 닦기를 힘쓰는 동료들과 함께 명문()을 지어 후일을 기약하였다. 1188년 봄 거조사의 주지 득재스님은 지난날 결사를 기약하였던 수행자를 모으고 그 당시 경상북도 예천, 학가산 보문사에 머물고 있던 지눌을 청하며 처음으로 이 절에서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시작하면서권수정해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을 통해 그 취지를 밝혔다. “마음을 바로 닦음으로써 미혹한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천명하고 그 방법은 정()과 혜()를 함께 닦는데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결사란 이상적인 신앙을 추구하기 위한 일련의 신앙공동체운동이었고 종교운동으로써 개경 중심의 보수화되고 타락한 불교계에 대한 비판 운동이었으며 실천 운동이었다. 그 뒤 이 결사가 1200년 경 송광사로 옮겨간 것이다. 1298년 정월 원참이 밤중에 낙서라는 동인을 만나 본심 미묘진인과 극락왕생의 참법을 점수 받아 기도도량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 뒤의 역사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거조사란 이름으로 남아 있다가 은해사가 사세를 크게 키우면서 은해사의 산내 암자로 남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요 근래에는 오백 나한 기도 도량으로써 아흐레만 정성껏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하여 수많은 신도들이 찾아오고 있다. 남아있는 절 건물은 국보 제 14호로 지정되어 있는 영산전(靈山殿)과 요사 채 2동이 있다. 영산전은 수덕사 대웅전의 맥을 잇는 백제 때 고려건축이다. 그 동안 고려 말의 건축일 것이라는 말과 조선 초기의 건축일 것이라는 말들이 있었지만 해체 수리할 때 발견된 묵서 명에 고려 우왕 원년(1375)에 건축된 고려시대 건축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부석사의 무량수전, 봉정사의 극락전, 수덕사의 대웅전과 더불어 몇 개 안 남은 고려 건축인 영산전은 정면 7칸에 30m 측면 3칸에 10m 에 이르는 긴 장방형 의 장중한 건물이다.

거조암에는 오백나한이

단층 맞배지붕의 주심 포 집으로 장대석과 잡석으로 축조된 높다란 기단 위에 세워진 이 건물은 마구의 수법이 간결하고 기둥이 뚜렷한 배흘림이 있는 것이 특색인데 주심포 양식의 초기적 형태를 잘 나타내고 있는 중요한 건물이다. 이 영산전 안에는 청화화상이 부처의 신통력을 빌어 앞산의 암석을 채취하여 조성했다는 석가여래와 문수보살, 보현보살과 그리고 오백나한상 및 상인화상이 그린 영산회상도가 있으며 뜰에는 손상이 심한 삼층석탑이 있다. 우리가 새벽 예불에 참여하고자 들어갔을 때 영산전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좋아하는(?) 오백나한상 앞에 엎드려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화강암을 깎아 만든 뒤 호분을 업히고 머리에 칠을 한 나한상들의 자세와 표정은 다양하기만 하다. 옆 사람을 그윽하게 쳐다보기도 하고 명상에 잠겨 세상을 잊은 듯이도 보이고 팔짱을 낀 채 거드름을 피우기도 하는 오백나한(정확히는 526)은 수많은 사람의 다양한 공부방법과 세상 사람이 천태만상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듯도 하다. 나도 내 마음에 드는 나한상 앞에 앉아 절 안팎 어디고 단청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영산전 구석구석을 바라다보고 내 마음속에 평화를 주시옵기를 간절히 염원하였다. 이 절 영산전에는 그 색조나 화풍이 특이한 영상탱이 있다. , , , , 흑의 다섯 가지 원색을 주조로 그려도 조선시대 불화들과 달리 붉은 바탕에 호문으로 선묘만 하였을 뿐 청록색, 흑백색 등은 극히 적은 부분에만 사용하고 있으며 바탕색의 변화로 모든 색을 대신함으로서 붉은 색이 자극적이기도 들뜨지도 튀지도 않는 이 후불탱화를 고유섭 선생은 명랑하고 침착하고 품위 있는 색조라고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