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과 경주에서 만나는 매월당 김시습, 한강답사가 정선과 평창을 지나 영월에 이르렀다. 비운의 임금 단종과 김삿갓의 자취가 서린 영월 문산 나루에서 일정을 마치고 다음은 영월 일대를 거닐게 될 것이다. 토요일 하루가 저물어 갈 무렵에 보았던 단종의 무덤 장릉과 위리안치 되었던 청령포, 그리고 자규루가 있는 열월을 찾았던 사람이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었다. 단종이 귀양을 와서 머물렀던 청령포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삼면이 깊은 강물로 둘러쌓여 있으며 한쪽은 벼랑이 솟아 있어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빠져나갈 수 없게 막힌 곳이다. 단종이 이곳에 머물러 있을 때 매월당 김시습이 두어 번 다녀갔다고 한다. 그래 매월당은 이곳에 와서 인생이 얼마나 뜬구름 같은가를 깨달았을 것이다. “나는 누구냐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다 미친 듯이 소리쳐 옛 사람에 물어보자 옛사람도 이랬더냐, 이게 아니더냐, 산아 네 말 물어보자, 나는 대체 누구란 말이냐, 그림자는 돌아다봤자 외로울 따름이고, 갈림길에서 눈물 흘렸던 것은 길이 막혔던 탓 삶이란 그 날 그날 주어지는 것이었으며, 살아생전의 희비애락은 물 위의 물줄 같은 것, 그리하여 말하지 않았던가, 이룩한 미완성 하나가 여기 있노라고 혼이여 돌아가자 어디인들 있을 데 없으랴, 단종이 유배되었던 해 여름 청령포가 홍수로 범람하자, 단종은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관풍헌觀風軒으로 옮겨졌다. 단종은 관풍헌에서 지내면서 동쪽에 있는 누각인 자규류子規樓에 자주 올라서 그의 처지를 시로 읊었다. 자규루는 지금은 시가지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지만 그 무렵에는 무성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단종이 이곳에서 지은 시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자규시〉이다. "원통한 새가 되어서 제궁을 나오니 외로운 그림자 산중에 홀로 섰네 밤마다 잠들려 해도 잠 못 이루어 어느 때 되어야 이 한이 다 할까, 두견새 소리 그치고 조각달은 밝은데. 피눈물 흘러서 봄꽃은 붉다, 하늘도 애끓는 소리 듣지 못하는데 어찌하여 시름에 찬 내 귀에는 잘도 들리는가" 매월당 김시습의 자취를 찾아가는 경주기행, 그 기행에서 매월당 김시습의 자취를 얼마나 보게 될지, 혹시라도 만나게 된다면 술 한 잔 따라드릴 텐데, 사람은 가고 없어도 그 사람의 자취는 여기저기 남아 있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