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이고, 인류애란 무엇일까?
지난 번 유럽 여행 때 드레스덴을 지나며 추억 같이, 아니 그리움 같이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내 푸른 영혼에 깊고도 넓은 상혼을 남긴 도스토예프스키, 그가 이곳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소설 중에 <미성년>이 있습니다. 그 소설 속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습니다. “드레스덴에 있는 화랑에 클로드 로랭의 그림이 있는데, ‘아시스와 갈라테아’라는 제목의 그림이지. 그런데 나는 그 이유는 모르지만 왠지 그것을 늘 <황금시대>라고 불렀어. 물론 나는 그 전에도 한 번 그것을 본 적이 있고, 그 때 여행을 하는 도중에도 약 사흘 전에든가 다시 한 번 그 그림을 눈여겨보았었지. 그런데 바로 그 그림을 다시 꿈에서 본 거야. 마치 실제로 그것을 보는 듯 했어. 어떤 꿈이었는지 자세히 기억할 수가 없는데 아무튼 그림 속에 있는 것과 똑같은 경치가 펼쳐져 있었어. 그곳은 그리스 다도해의 한구석이었고, 시간도 3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 같았지. 고요한 정적이 쌓인 푸른 바다, 수없이 많은 섬과 바위, 꽃이 만발해 있는 해안, 멀리 펼쳐지는 매혹적인 정경들, 그리고 사람을 부르며 저물어가는 태양 등 참으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동적인 풍경이었지. 바로 이 시공간을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정신적 요람으로 가슴에 새겨 두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 생각에 잠기자 내 마음도 어느새 혈육 같은 애정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꼈지. 그것이 바로 인류가 꿈꾸는 지상 천국이었어. 그 시공간에서 신들은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들과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던 것이지... 아, 그곳에는 참으로 고귀한 영혼을 지닌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 그들은 이곳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순수한 기쁨을 만끽했던 거야. 들과 숲에는 그들의 행복에 겨운 노랫소리로 가득 차 있고, 흘러넘치는 위대한 열정이 모든 사랑과 진정한 평화의 원천을 이루어 내고 있었지.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태양은 그들에게 한없이 따스함과 빛을 뿌려 주었고... 바로 그러한 정경이야말로 인간의 이념이 지향하던 모습 아니겠니! 황금시대, 이것은 인류의 꿈 중에서도 가장 실현 불가능한 꿈이지. 하지만 사람들은 바로 그 꿈을 위해서 온 생애와 모든 열정을 바쳐 왔고, 또한 그것을 위해 예언자들은 기꺼이 죽었고 계속해서 죽음을 당했어. 인간은 그런 이념 없이 살기를 원치 않았고, 또 그대로 죽을 수도 없었지! 나는 그런 모든 인식을 그 꿈속에서 직접 체험했지. 꿈에서 깨어나 눈물에 젖은 눈을 떴을 때 바위와 바다, 그리고 사라져 가는 태양의 여명, 그러한 모든 것이 마치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지. 그 때 느꼈던 그 벅찬 감동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 지금까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이 내 가슴 한 쪽을 뚫고 지나가, 나는 서늘한 아픔을 느낄 정도였지. 바로 그 감동은 인류의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었어.“ 꿈인 듯 생시인 듯 스쳐지나간 꿈같이 행복했던 나날을 보낸 사람도 있고 꿈인 듯 생시인 듯 불행했던 나날을 보낸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상이 넓기 때문이고, 사람 역시 많기 때문입니다. 꿈에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그렇고, 어떤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저절로 경탄이 나오는 그런 장소를 만날 때가 더러 있습니다. 만나기만 해도 정신이 명료해지고 가슴이 훈훈해지며 돌아서면 보고 싶은 그런 그리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도 역시 자연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은 저절로 시인이 되고 어린이가 되고, 신선이 됩니다. 그런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 순간을 단숨에 부여잡는 사람도 있으며, 왔는지도 모른 채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자연에 대한 사랑이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형제만이 아닌 전 ‘인류에 대한 사랑, 그래서 지구 저편에서 누군가의 신음소리나 울음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아픈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대 재난이 발생했는데, 신의 이름을 빌려 저주를 퍼붓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성직자’라는 이름으로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지도층’이라는 이름으로 동시대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인류에 대한 사랑,’ ‘니체가 말한 ’가까운 이웃에 대한 사랑보다 더 먼 곳에 대한 사랑‘ 그것이 이 땅을 살다간 선지자들의 변하지 않는 신념이 아니었을까요? “숱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나이 먹고 위대한 영혼을 가졌기 때문에 나는 모든 것이 좋다고 판단 한다.” 소포클레스가 <오이디푸스>에서 말한 이 말이 성직자들이 아닐지라도 나이 먹은 사람들의 진정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요? 어제, 정확히 과거가 되어버린 어제, 서학동의 한 카페에서 사진들을 보았고, 남부시장의 현대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는 그림들을 보며, 다시 한 번 드레스덴과 도스토예프스키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슬픔 같은 기쁨이었습니다. 이 시간에도 어려움에 처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미성년에 나오는 그런 아름다운 시절을 다시 한 번 안겨 드리고 싶은 마음, 지금의 제 마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