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대표님 글 모음16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라는데

산중산담 2019. 6. 26. 16:06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라는데,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라는데,

 

오랜 만에 일요일을 집에서 보내며 <신 택리지> 제주도편, 원고 교정을 보았다. 제주도, 내 전반기 인생에서 가장 절절하고 치열하게 살았던 곳, 평생에 걸쳐 일할 것을 이 년 반이라는 시간 속에서 다 해치웠던 시절,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일을 나가는 시간 일곱 시까지, 들었던 장송곡과 진혼곡들, 포레, 모차르트, 베르디, 브람스의 독일 진혼곡, 베토벤의 <영웅교향곡> 중 제 2악장 <장송행진곡> 그리고 슈베르트의 현악 사중주곡 중 <죽음과 소녀,> 교정을 보는 내내 그 음악들이 내 귓전을 어지럽혔고, 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시시포스처럼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다 의미가 있는 것이라지만, 지나갔는데, 그것도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너무 선연한, 그 때 그 시절들, 그 시절의 기억들이 지금도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은 아닐까? 아니면 나를 그 기억 속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추억의 파편들이 아닐까?

해녀와 감귤이 인상적인 제주도에는 오랜 옛날부터 환상의 섬이자 유토피아로 알려진 이어도가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다. 소설가 이청준은 이어도라는 빼어난 소설을 남겼다.

 

긴긴 세월 섬은 늘 거기 있어 왔다.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섬을 본 사람은 모두가 섬으로 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다시 섬을 떠나 돌아온 사람이 없었 기 때문이었다.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의 첫 부분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인간 그 본연의 모습, 즉 아무 가진 것 없이 발을 디딘 곳이 바로 제주도였다. 책만 읽으며 무위도식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군대에 갔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군을 제대하였을 무렵, 우리 집안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서울에서 며칠 방황하던 중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 바로 유토피아인 이어도였다. 어째서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가 떠올랐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때 나는 절박했고, 달리 돌파구도 없었다.

어쩌면 내가 그 환상의 섬이어도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얼마 되지 않는 노자路資를 갖고서 목포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목포에서 가야호라는 밤배를 타고 도착한 제주의 새벽은 낯설었다. “나는 아무 가 진 것 없이 이국의 어느 도시에 도착하기를 꿈꾸었다프랑스의 산문작가인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에 실린 그 낭만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찾아가 살고자 했던 섬인 이어도가 소설 속에서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었다.

 

이어도는 오랜 세월 동안 이 제주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 전설의 섬이었다. 천 리 남쪽 바다 밖에 파도를 뚫고 꿈처럼 하얗게 솟아 있다는 제주도 사람들의 피안의 섬이었다.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었지만, 제주도 사람들의 상상의 눈에서는 언제나 선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수수께끼의 섬이었다. 그리고 제주도 사람들의 구원의 섬이었다. 더러는 그 섬을 보았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한 번 그 섬을 본 사람은 이내 그 섬으로 가서 영영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모습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섬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냉혹했다. 돈이 다 떨어진 나를 반기는 곳은 일을 한 만큼만 일당을 받을 수 있는 공사판뿐이었다. 2년 반 동안 제주도청, 제주 교육청, 제주 KBS. 제주 MBC 등 수많은 건물들에 벽돌과 모래를 져 올리는 시시포스의 역할을 하고서야 뭍으로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시간이 날 때마다 제주도의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닌 그 이력이 기억 속에 온전히 스며들어 제주도를 쓸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제주도의 역사보다는 못하지만, 그 때 내가 져 올린 무게만큼 제주도의 산천이 내 육신 속으로 젖어들었다. 그러나 제주에서 나온 뒤 내 기억 속에서 까마득히 잊혀 졌다가 제주도, 그 이어도가 다시 택리지를 통해 한 올 한 올 떠올랐다.

 

이어 이어 이어도 사나, 이어도가 어디에 사니 수평선 넘어

꿈길을 가자 이승길과 저승길 사이 아침 햇덩이 이마에 떠올리고

저녁 햇덩이 품 안에 품어 노을 길에 돛단배 한 척

이어 이어 이어도 가자. (……)

한라산을 등에 지고 제주 바다와 마주 서 보라 (……)

수평선 넘어 꿈길을 열라, 썰물 나건 돛단배 한 척

이어 사나 이어도 사나 별빛 밝혀 노 저어 가자

별빛 속으로 배 저어 가자.

제주가 고향인 문충성 시인의 이어도라는 시 구절만 가끔씩 떠올리며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다.

 

그래, 이미 지난 일이다. 지난 일이면서 이미 내 영혼 속에서 정제되고 분해되어 글로 표현되었으니, 이미 과거일 뿐이다. 그런데도 가끔씩 물씬 물씬 피어오르는 추억들, 그 추억들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쓰고 또 쓰는 것은 아닌가? 나는 언제까지 그 추억들을 풀어낼 것인지,



말을 삼가 덕을 기르고, 음식을 절제하여 몸을 기르라

말을 삼가 덕을 기르고, 음식을 절제하여 몸을 기르라

 

매일 30분씩만 자신을 생각하면

삶의 형태가 달라질 것이다

이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매일 30분은커녕 10분도

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많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매일 미덕에 관해서 말하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이다.

그리고 내가 대화를 통해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검토할 때,

너희가 듣게 되는 말, 곧 검토하지 않는 삶이란,

인간에게는 살만한 가치가 없는 삶이라는 말이 특히 그렇다.”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말했는데,

소크라테스를 오래 접했던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어떤 사람이 소크라테스의 말을 듣는다면,

처음에는 우스꽝스럽게 들릴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의 말들은 아주 용감한 사티로스의 몸에 난

(우스꽝스러운 염소) 털가죽처럼 우스꽝스러운 명사와 동사로 감싸여 있다.

그는 짐 싣는 나귀에 대해 이야기 하고,

대장장이, 구두 만드는 사람, 가죽 무두질하는 사람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또 언제나 똑 같은 것을 통해 똑 같은 말을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경험이 없고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은

누구든지 그의 말을 듣고 웃게 된다.

그러나 이런 말들의 뜻이 열리고, 그 뜻을 들여다보게 되면

비로소 온갖 말들 중에서 오로지 그의 말만이 의미가 있다는 것,

그의 말은 온전히 거룩한 것이고,

다른 무엇보다도 더 많이 미덕의 모습을 품고 있으며,

또한 그런 말들이 아름답고 선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이

관찰해야 할 모든 영역으로 확장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끊임없이 상대방에게 물었고, 그 물음을 통해

스스로가 깨달음을 얻었고, 동시에 해답을 주었다.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해 인간은 왜 사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떤 삶이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삶의 의미, 철학의 의미를 깨달아갔다.

그는 잘난 체 하지 않았고, 똑똑한 체도 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만을 알뿐이다.”

소크라테스가 한 이 말은 우리 인류사에 커다란 울림을 주는 글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말을 감칠맛 나게 하는 사람이 있고,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 있고, 말을 되도록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침묵이 금이라는 말을 실천하려는 듯이,

그렇다면 어떠한 것이 좋은가?

일이 있으면 사리를 가리어 일에 응하고,

일이 없으면 조용히 앉아서 마음공부를 하라.

말을 많이 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마음공부에 해로운 것이다.”

동학의 2대 교주였던 해월 최시형선생의 말이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마음공부에 해로운 것이다.‘

해월 선생이 나에게 한 말 같다.

매일 말을 많이 하고 후회하지만

어쩌겠는가, 직업 아닌 직업이 말을 하는 것인 것을,

 

말을 삼가 덕을 기르고,

음식을 절제하여 몸을 기르라.”

주자 역시 <근사록>에서 이렇게 말했는데,

나는 현자인 소크라테스를 따라갈 수는 없고,

되도록 말을 삼가는 것을 배워야겠다.

가능한대로.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따뜻하기가 솜과 같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따뜻하기가 솜과 같다.

 

여기저기 말 때문에 말이 많다. 어떤 말을 해야 말이 없을까?

그 정답을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대로 말하다가 말 때문에 상처를 입는다.

어떻게 할까? 말을 하지 말까? 그래도 말을 할까?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따뜻하기가 솜과 같고,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날카롭기가 가시 같아서

한 마디 말이 사람을 이롭게 하기가 천금과 같고,

한 마디 말이 사람을 다치게 함은 아프기가 칼로 베는 것과 같다.

명심보감에 실린 글이다.

 

칼로 베는 말,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말,

말들이 세상을 날아다니고, 춤을 추고,

세월 속을 흘러서 간다.

어디로 간다는 목적도 없이 흘러가는 말,

그 말을 두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옛 사람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을 마를 것이 ,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서 말이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

 

그래, 쉽고도 어려운 것이 말을 하는 것이로구나.

그곳에서는 다소 활기 있는 생각은 상스러운 것으로 비친다.

그만큼 그들은 평범한 얘기에 길들여 있는 것이다.

대화에 독창적인 의견을 말하는 자는 회를 입을지니!”

포블라의 말이다.

 

독창적인 말은 절대 아니고 잡담이나 수다와 같은 말만

통용되는 시대, 그렇다면 수다는 어떤 것을 말하는가?

 

수다란 어떤 가치 있는 것도, 중요한 것도,

흥미로운 것도 포함되지 않는 이야기다.”

미국 언론학자 피터 펜버스이다.

 

이렇게 수다나 잡담만 해야 편안한 삶,

그것이 온전한 삶일까?

군자의 말 열 마디 말 가운데 아홉 마디가 맞더라도

경이롭다고 칭찬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한 마디 말이 어긋나면

온갖 비방과 책임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채근담>에 실린 글이다.

조심하고 또 조심할 일이다.

 

있는 것을 없다고 말하거나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반면에 있는 것을 있다고 말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것인 진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진실과 거짓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

혼동해서 실수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인간에게 말이 주어진 것은

생각을 숨기기 위해서이다.”

R. P. 말라그리다의 말이 맞다는 말인가





잘 노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잘 노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답사를 끝마칠 때나 어떤 큰 행사를 마쳤을 때

사람들이 내게 말한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닙니다. 잘 놀았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어느 날부터 나는

내가 하는 모든 행위를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잘 논다.‘ ’즐긴다고 생각하지,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인생을 걸어서 팔자를 바꿀 만큼이 아니라면,

일을 한다고 여기지 않고 논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일한다고 여기면 그 얼마나 짜증나는 일이겠는가,

내가 몸이 성해서 길을 나서는 그때까지는

나는 잘 놀아야겠다.

어떻게 놀 것인가?

 

참례하러 이름난 산을 두루 다녔으니(參禮名山遍),

소요하는 곳이 바로 나의 집이라.(逍遙卽我家)“

김시습의 <죽장암竹長菴>이라는 글이다.

 

내가 머무는 곳이 나의 집이고,

내가 가는 길이 나의 길이라.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옛 사람도 그랬다.

 

바람과 산마루를 두루 다 찾아 구름과 달을 좇아서 다닐 때면,

절로 마음에 맞아 슬픔과 고통이 몸에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으니,

산천은 나에게 정말 좋은 벗이요, 뛰어난 의사라 하겠소.”

조선 중기의 문장가인 김창흡金昌翕

두 달 동안 산천을 유람하고 돌아와

이징하李徵夏라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더 없이 좋은 친구, 더 없이 유능한 의사를

두었는데, 무엇이 모자라겠는가?

니체는 한 술 더 뜬다.

 

우리 몸의 감각이나 관능을 죄스럽거나 부도덕한 것,

또는 우리의 의식이 개입 되지 않는

단순한 뇌의 화학적 반응이라고 생각하며

의식적으로 멀리하지 마라.

자기의 감각을 마음껏 사랑해야 한다.

인간은 신체적 감각과 관능을 예술로 승화하여

문화라는 것을 만들어 낸다.“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에 실린 글이다.

일하는 것을 노는 것이라 여기고,

노는 것을 예술이라고 여긴다면

매 순간 순간이 예술이 아니겠는가?

바람 채찍 우레 신발로 조선을 돌았으니,

남북으로 달리고 날아 8만 리를 다녔다네.

쇠잔한 몸 이끌고 집으로 와 문을 닫으니,

그 무엇이 내 머리에 아직 남아 있는가?“

다시 김창흡의 <갈역감영>이라는 글이다.

그래, 인생 뭐 별 것 있는가.

남아 있어도 남아 있지 않아도 좋은

그 순간을 잘 사는 것,

그것이 삶이고, 놀이가 되길 바라며 사는 것





살아있다는 것이, 무서울 때가 있다.

살아있다는 것이, 무서울 때가 있다.

 

살아있다는 것이, 무서울 때가 있다.

여기저기 들리는 소리는 음산하고,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사를 들먹이고,

그러다가 보니 끔찍한 일들이 일어난다.

어째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자연은 인간을 경멸하거나 증오하지 않는다.

인간들 사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사회와 문명이 차별과 증오를 낳기 때문이다.“

칸트가 그 자신의 <비망록>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관한 고찰에서

이렇게 말했는데,

그것만이 원인일까?

아니다. 개인의 욕심, 집단의 욕심,

그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나타나

이런 일들이 반성도, 회오悔悟도 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친구에게 화가 났어, 이 분노를 드러냈지.

그러자 분노가 정말로 사라져 버렸어.,

적에게 화가 났지만 그러내지 않았어.,

그러자 분노가 정말로 커져 버렸어.“

월리엄 블레이크도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이처럼 분열과 혼란의 시대를 어떻게 하면 잠잠하게 하고

치유할 수 있을까?

 

사랑이어야 하는데, 연민은 아닌 사랑이

이 세상을 봄꽃이 산천을 물들이듯 물들여야 하는데,

가능할까? 정말로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그런 사회가 오기는 올까?

 

자신의 내면을 깊이 성숙시키지 못하면,

어떤 위대한 존재의 내면도 이해하지 못한다.“

파커 j. 파머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기는 있는 것일까




지나간 유년시절을 돌이켜 회고해보면

지나간 유년시절을 돌이켜 회고해보면

 

지나간 유년시절을 돌이켜 회고해보면 아련한 슬픔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 슬픔이 어느 사이

무지개보다도 더 현란한 아름다움으로

채색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런 저런 사념에 빠질 때가 있다.

 

나는 유년 시절을 하도 많이 갖고 있어

그것을 세다가 보면 정신이 멍해지네.“

알렉상드르 아르누의 글과 같이

이런 저런 추억 속에서 떠오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들,

그 속에 지울 수 없는

슬픈 이야기들이 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가장 비참한 우울증에 던져진 사람이다.

여기 있음 전체가 나를 불안하게 한다.

가장 작은 모기부터 신이 인간이 된 비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두렵다.

내게는 모든 것이 설명할 길이 없고,

나 자신이 가장 설명할 수 없다.”

덴마크의 철학자인 키르케고르의 글이다.

 

키르케고르는 벗어날 수 없는 그 우울증으로 인하여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불멸의 책을 써야했고,

수많은 철학서를 집필하게 했다.

그는 말했다.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무시무시한 것은 선택, 곧 자유다.”

자유일 것 같지만 자유가 아닌,

그 무엇이 나를 살게 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일이 오해가 아닐까?

웃음이 사실은 눈물이 아닐까?”

 

그렇다. 지나고나니 내 지난 시절도 그러했다.

슬픔이 너무 사무치면 눈물이 안 나오고,

슬픔이 지극하면 눈물이 나오는 것,

그렇게 출구가 없던 절망의 시절에

나는 무엇이 되고자했던가?

알랭 보스께는 <첫 번째 유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람이 되는 것은 영광이다.

돌이 되는 것은 행복이다.“

 

그렇다면 그때 나는 무엇을 꿈꾸었던가?

가능한 것이 아닌 불가능한 꿈,

 

나무가 되고 싶은 꿈,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것은 가능한 것이 아니었고,

그 꿈같은 소망을 바람에 날리고만 있었지,

그 유년의 시절을 견디고,

그리고 그 청소년의 시절까지,

내가 살고 괴로워했던 곳, 임실,

그곳을 간다. 가기 전 이 한 밤에

지금 그 시절을 회상하는 것은,

아직도 기야 할 먼 길이 남아 있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아니면,





당신들은 일상의 시간으로 우리들은 남고산성으로,

당신들은 일상의 시간으로 우리들은 남고산성으로,

,

남고산성을 사랑하는 모임 발대식을 마치고,

바쁜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바쁘지 않은 사람들만 산성을 걷기로 하고 헤어지면서

내가 말했다.

바쁜 사람들은 어서 볼일 보러 가시고,

바쁘지 않은 사람들은 산성 길 걸으러 갑시다.“

소크라테스가 죽기 직전에 말했지,

당신들은 삶의 길로 가고, 나는 죽음의 길로 간다고,

그러나 어떤 길이 좋은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그렇다, 삶과 죽음 어느 것이 좋은지는

나도 모르고 그대도 모른다. 다만 죽음을 경험해보지 않았에

삶이 좋은 것이고, 죽음이 나쁜 것이라고 여길 뿐이다.

에피쿠로스는 일찍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삶이란 영원한 잠 가운데 꾸는 짧은 한 마당의 꿈과 같다.

꿈이 없는 잠은 꿈보다 훨씬 더 달콤하다.

긴 잠은 사실 한 순간에 불과하다. 깊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났을 때,

조금 전에 잠들었다가 일어난 기분이 든 적이 있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깊은 잠은 결국 하룻밤의 잠과 다를 게 없다.

잠에 빠져 있는 동안, 자신을 잊게 되듯이

죽음 뒤에도 우리는 자신을 잊게 된다. 그러니 무얼 걱정하겠는가?

부디 삶을 즐기게나. 깊고 긴 잠 가운데 찾아온

잠깐의 깨어 있는 시간을 왜 괴롭고 슬프게 보낸단 말인가?

우주는 원자들이 춤을 추는 무도회장과 같다네.

별들은 하늘에서 춤추는 불꽃들이며,

우리의 삶은 우주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무도회에서

막간으로 공연되는 짧은 춤이지,

잠시 잠깐 무도회에서 만나 춤을 추고 헤어지는

무희와 같은 우리네의 삶, 그 삶이 얼마나 좋은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감하지도 못하고 살다가 간다.

그냥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을 축복으로 여기며 살다가 가는

우리들의 삶, 그 삶을 어떻게 사는가?

셰익스피어는 <맥베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잠시 주어진 시간 동안 뽐내고 으스대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영영 사라져 버리는 배우,

아무 의미도 없는 소음과 노여움으로 가득한,

바보 천치의 이야기

 

그것이 다대수 사람들의 삶이다.

 

영혼은 육체를 집으로 삼지 않는다.

육체는 영혼이 잠시 길을 가다 들리는 여관에

불과한 것이다.“

인도의 지혜에 실린 글이고, 가브리엘 마츠네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이 땅에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으며,

즐거움도 고통도 우리의 수수한 짐 보따리에 담겨지네.”

 

하룻밤 잠시 쉬었다가는 손님과 같은 우리들의 삶,

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축복인가? 아니면 비극인가?

 

삶과 죽음을 이렇게 저렇게 곱씹어 보는 시간이다.

내게 남은 생은 과연 어떤 생일까?




때로는 기적처럼, 아니 운명처럼,

때로는 기적처럼, 아니 운명처럼,

 

때로는 기적처럼, 아니 운명처럼,

어떤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것은 무슨 조화지?

이것은 행운인가? 아니면 불행의 전조인가?

하면서 의문을 품기도 하는 것,

그러나 지나고 나면 그 때가 맞아서 다가온 것이라는 걸 안다.

 

나는 편도나무에게 이렇게 말했네.

누이여, 나에게 신에 대해 말해 다오.”

그러자 편도나무는 만발했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희랍인에게 이 말을>이라는 글이다.

 

얼마나 소망이 싶으면 그 순간 꽃이 만발할까?

괴테는 말했지,

젊은 날의 소망은 나이들 수록 풍요로워진다.” ,

그럴지도 모른다.

가능하지 않은, 아니, 가당치도 않은 꿈들이

가끔씩 현실이 되고,

그래서 삶은 살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움이란 이런 것,

출렁이는 파도 속에서 사는 것,

그러나 시간 속에 고향은 없는 것,

 

소망이란 이런 것,

매일의 순간들이

영원과 나누는 대화,

 

그리고 산다는 것은 이런 것,

모든 시간 중에서도 가장 고독한 순간이

어제 하루를 뚫고 솟아오를 때까지

다른 시간들과는 또 다른 미소를 띠고,

영원 속에서 침묵하고 마는 것,“

 

문득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그리움이란>이라는 시와 같은 삶이.

우리가 꿈꾸는 소망이고,

더할 수 없는 기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일은 그 새로운 꿈을 찾아

새로운 길을 걸어가야겠다.

 

이 땅에 펼쳐질 새로운 그 길을 찾아,




책임과 의무, 그것 때문에 살지만

책임과 의무, 그것 때문에 살지만

 

손화중의 길 촬영을 하며

내리는 빗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역사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

전제를 걸고 살았던 사람, 손화중,

그의 삶은 온전했는가?

 

바로 지금이지 다른 시절은 없다.”고 갈파한 임제선사는

다음과 같이 살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그대들에게 간절하게 하고 싶은 말은 다름이 아니라,

남의 말에 현혹되지 말라는 것이다.

스스로 힘으로 하려고 생각한다면, 곧 하는 것이다.

결코 주저 하지 말라.

요즘의 수행자들이 깨닫지 못하는 원인은

스스로 완전함을 철저히 믿지 않는데 있다.”

<임제록>에 실린 글이다.

 

자신을 믿고 자신의 삶을 살아라.

좋은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영국의 극작가인 버나드 쇼는 채식만을 고집했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왜 당신은 채식만 합니까?”

그러자 이렇게 되물었다.

“”왜 짐승의 시체를 내가 먹어야 하는가?“

 

어디 짐승만 살아 있는 것일까?

식물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저마다의 생각, 저마다의 말, 저마다의 행동을 스스로의 의지대로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생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면서 다가오는 모든 것은

다 자기 스스로의 것이므로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

 

만해 한용운에게 대륙으로 가는 여행길을 제시해준

중국의 문장가 양계초의 말은 그래서 큰 울림을 준다.

 

책임을 자각하는 것이 인간의 시작이요,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 인간의 끝이다.”

 

책임과 의무, 그것 때문에 살지만

가끔씩 그것이 버거울 때가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새벽은 밤을 꼬박 새운 자에게만 온다

새벽은 밤을 꼬박 새운 자에게만 온다

 

새벽은 밤을 꼬박 새운 자에게만 온다.(...)

일어나 또 가자, 지금 나에게는 칼도 경도 없다.

경이 길을 가르쳐 주진 않는다.

길은,

가면 뒤에 있다.“

 

황지우시인의 시 한 소절을 읊조리면서도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혼잣말을 하면서

타인이 운전하는 자동차에 실려 남도를 달렸고,

삼남대로의 끝 지점인 해남의 이진항을 거쳐 누릿재를 넘었다.

녹음 무성한 월출산 자락의 누릿재는 싱그럽기만 했고,

그래, 인생이 별 것인가, 되뇌며 넘다가 보니 내 팔자도 그리 나쁘지 않다.

세네카는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했지,

적게 가진 자가 아니라, 욕심을 부리는 자가 가난한 사람이다.” ,

 

자신이 탐욕스럽다거나 욕심이 많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 그래도 장님이라면 안내인을 구하지만, 우리는 안내인 없이 길을 헤매면서 이렇게 말하지.

 

나는 야심가는 아니지만, 로마에서는 야심가가 되지 않으면 아무도 살아갈 수 없다. 나는 낭비가가 아니지만, 도시 자체가 큰 지출을 요구한다. 내가 화를 잘 내는 것이나, 삶의 방식을 아직 확실하게 정하지 않은 것도 내 잘못이 아니다. 젊음이 그렇게 시키는 것 일뿐,”

왜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일까? 우리의 악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으며, 바로 폐부 속에 앉아 있네. 그리고 건강한 상태에 이르기가 어려운 까닭은, 자기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모른다는 데 있다네.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고 생각해보게. 이렇게 많은 질병의, 이렇게 큰 힘을 언제쯤이면 몰아 낼 수 있을까?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의사를 찾아가는 것도 하지 않고 있네. 중상이 나타날 때 대처하면 의사가 할 일이 적을 것이고, 아직 부드럽고 때 묻지 않은 영혼이라면 올바른 안내자 뒤를 잘 따라갈 수 있는 것을,

자연으로 돌아가기가 어려운 사람은 아무도 없네. 자연을 저버리지만 않으면 되네. 우리는 부끄러워하고만 있을 뿐, 훌륭한 정신을 배우려 하지는 않네.“

세네카의 <삶을 생각하며 쓴 편지>에 실린 글이다.

 

그래, 지금 내가 할 일은 욕심을 버리는 일,

큰 욕심을 버리고 난 뒤에야 나는 세끼 밥을 해결할 수 있었고,

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린 뒤에야 삶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었다.

그는 수중에 있는 것은 경멸하고

잡히지 않는 것을 추구한다.“

이렇게 말한 호라티우스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순수한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며, 기다리며 사는 삶,

그러다가 보니 가끔씩 신기한 것이 이루어진다.

신기한 것, 더 신기한 것이 나에게 오건 안 오건 그다지 큰일은 아니지만,

가끔씩 세상에 반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행복이 아닌가?





이제야 위대함이 무엇인지 알았다.

이제야 위대함이 무엇인지 알았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에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그것도 봄, 연둣빛 나뭇잎들이 바람결에 살랑거리는 곳을

천천히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보면

세상에 찌든 온갖 불순물들이 다 씻겨나가는 것 같다.

그렇다고 자연 속에서만 살수는 없고,

다시 세속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사지만.

잠시라도 세상을 잊고 내가 나를 잊는 시간은 더 없이 행복한 시간이다.

수운 최제우 선생이 숨어 지낸 남원의 교룡산성 은적암터에 앉아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수운의 자취는 남아 있지 않았어도,

그 향기 오롯이 남아 내 마음을 맑게 해주는 것 같았다.

남원을 지나고 운봉을 답사하여 나는 스소로 자연이고자 했는데,

독일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는 말했지.

재물은 바닷물과 같다.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심해진다.

명성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순자가 자공과 공자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그들은 송곳 하나 꽂을 한 조각의 땅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제후도 그들의 명성과 비교할 수 없다.(...)

그들은 다만 때를 만나지 못한 성인들이다.“

 

때를 만나지 못한 성인,‘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오죽했으면 공자가 나는 팔리기를 기다리는 물건과 같다.‘고 말했을까?

 

누구에게나 다가 올 것 같지만 시절이 맞지 않아서 그런지

세상이 하수상해서 그런지 그런 꽃 시절은 없다.

그래도 마음 내려놓고 정도를 걸어야 마음이 편안한 것,

그래서 가끔씩 마음이 어지러울 때 장온고의 말을 생각한다.

 

마음은 혼탁하고 흐리지도 말고,

너무 깨끗하고 맑기만 해서도 안 되며,

흐릿하고 사리에 어둡지도 말며,

지나칠 만큼 자세하고 밝지도 않아야 합니다.”

장온고張蘊古<대보잠大寶箴>에 실린 글이다.

 

그래도 가끔씩 삶의 방향을 잃을 때가 있다.

그때 나를 살게 하는 것,알베르 카뮈의 묘비에 실린 글이다.

 

이제야 위대함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것은 무한히 사랑하는 권리이다.”

 

세상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그리고 모든 사물을 사랑하며 사는 것,

그것이 그침이 없이 흐르는 삶의 책무가 아닐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예측 가능한 것은 별로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예측 가능한 것은 별로 없다.

 

양평군 지평면 일신마을에서 양동면 매월리에 이르는

구둔재답사를 마치고 매월리에서 차에 오른 시간이 오후 두시 사십분,

서울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언제쯤 도착하느냐.’ 고 묻자

네 시 십 분 예정이란다.

넉넉잡고 네 시 반은 버스를 타겠다고 했는데.

웬 걸 서울 들어와서 차가 밀리더니

네 시 삼 십 칠분에 겨우 도착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불길하지만 어쩌겠는가, 겨우 내 차례가 되어서

전주가는 차표를 달라고 하자 매진이라며

여덟시 십분 차가 가장 빠른 차란다.

어쩌지, 일곱 시 반까지는 가야하는데

낭패다. 어떻게 세 시간 반을 기다리지.

도인처럼 수양을 하면서 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술꾼처럼 술을 마시고 시간을 죽을 수도 없고

짧다면 짧고 길다 면 긴 그 시간을,

하지만 방법이 없지,

그냥 주세요.’ 해가지고 표를 받아가지고 오는데

네 시 사십분 차가 전광판에 떴다.

남은 시간 일분 이거 취소하고

네 시 사십 분차로 주세요.

다시 표가 나오는 시간이 십분도 더 되는 거 같았다.

차표를 받자마자 전주 쪽으로 달려가자 검표원이 기다리고 있었고,

자리에 앉자마자 버스는 떠났다.

나는 금세 세 시간 반을 벌었다.

그것도 금방 한 순간에

나는 가끔 승부사가 되고

그 순간에 부자가 된다, 나는 천 상 승부사인가,

아니다. 진정한 승부사는 되지 못하고,

가끔씩 요행처럼 행운처럼 좋은 쪽에 편승해서 좋은 일을 만날 때가 있다.

차는 정시에 떠났지만, 온통 고속도로가 주차장 같이 되어서

천안 논산 간 고속도로를 타지 못하고,

경부선 옥산 휴게소와 유성을 지나 호남선으로 질주했는데,

그 시간들이 솔찬이 걸려서 전주에 도착한 시간은

여덟시가 거의 다 되어서였다.

하루 길 여정에서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예측 가능한 것은

별로 되지 않는다. 순전히 운이고, 우연이지 필연은 거의 없는 것이

이 세상의 일이다.

삼척에 가서 아칠목재와 소공령재를 지나 양평의 구둔재까지 보리라 했던

계획은 서울 근교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광주시 초월읍에서 끝이 났고,

오후에 가리라던 구둔재 답사만 마치고도 그 냉탕과 온탕을 오고 갔으니,

 

가장 중요한 것은 길 위에 있다.

니체가 말한 그 중요한 것이

도처에 있고, 그 중요한 것을 중요한 것이라 여기지 않고,

줄기차게 이 국토를 걸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나의 꿈꾸는 희망이고, 삶이다.

 





남의 허물만 보고 자기의 허물은 보지 않는 사람들,

남의 허물만 보고 자기의 허물은 보지 않는 사람들,

 

오늘의 시대만 난세인가? 아니다. 요순시대도 난세였고,

지금도 난세다. 아니 항상 난세다.

 

여기저기 남의 탓만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두고 상촌 신흠이 한마디 했다.

자기의 허물만 보고 남의 허물은 보지 않는 사람은 군자君子이고,

남의 허물만 보고 자기의 허물은 보지 않는 사람은 소인小人이다.

몸을 참으로 성실하게 살핀다면 자기의 허물이 날마다 앞에 나타날 것인데,

어느 겨를에 남의 허물을 살피겠는가.

남의 허물을 살피는 사람은 자기 몸을 성실하게 살피지 않는 사람이다.

자기 허물은 용서하고 남의 허물만 알며 자기 허물은 묵과하고,

남의 허물만 들추어내면 이야말로 큰 허물이다.

이 허물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라야 바야흐로 허물이 없는 사람이라 하겠다.

신흠의 <검신편檢身篇>에 실린 글이다.

 

남의 허물을 살피다가 보면 자기의 허물은 알지 못하고,

남의 탓만 하게 되는 것이다.

남의 탓만 하는 것, 그것이 조선 중기에 시작된 당파싸움에서 비롯되었는데,

그렇게 된 원인을 이건창은 다음과 같이 파악했다.

 

당나라의 당파들은 전후 수 10년간 있었을 뿐이었다,

송나라의 당파도 불과 수 대를 내려가다가 마침내 나라가 망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또 당, 송 때에는 사람마다 누구나가 다 당파는 아니었다,

온 나라 사람(양반들을 가리킴)이 다 두 패, 세 패, 네 패로 갈리어

2 백년을 내려오면서 다시는 합하지 아니하고,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는 것도 명백히 정론하기 어렵게 되여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당파이다. 아마도 고금의 당파들 중에서 가장 크며,

가장 오래며, 옳고 그른 것이 가장 분명치 못한 것이라 할 것이다.”

이건창의 <당의 통략>에 실린 글이다.

 

당파가 그르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면서도

그 속으로만 들어가면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것,

그것이 문제다.

 

진정한 학문이란 도를 알고 자기를 인식하여

실천하는데 힘쓰는 데에서 이루어진다.”

다산 정약용은 이렇게 갈파했는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고, 미워해야 할 것을 미워하는,

그것이 참 된 사람이 취해야 할 정도正道.“

 

그 정도를 지키며 사는 것,

그것이 항상 어렵다.

 




온전히 아름다운 땅이란 없다.

온전히 아름다운 땅이란 없다.

 

풍수의 명제는 여러 가지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온전히 아름다운 땅이란 없다.’ 라는 말이고,

그 다음 말이 보지 않은 것은 말하지 말라.“.

온전히 아름다운 사람도 없고, 온전한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말이다.

다만 온전하기 위해 순간순간 노력한다는 것, 그것뿐이다.

정밀하게 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정밀하게 하려 하면 크게 되지 못할 근심이 있다.

두루 통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두루 통하게 하려 하면 법도가 없게 될 걱정이 있다.

이것이 바로 문필가들이 벗어나지 못하는 결함인데,

시를 잘 짓는 자라고 해서 문도 잘한다는 보장이 없고,

문에 능한 자라고 해서 꼭 시를 잘 짓는 것도 아니고 보면

이 두 가지를 다 갖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 수가 있다.

대저 정밀하면서도 크고 두루 통하면서도 법도가 있어

이든 문이든 모두 그 묘한 경지를 얻은 결과

아무리 세세히 따져 논하는 자가 있다 할지라도

감히 한 쪽만 잘하고 다른 쪽은 엉망이라는 비평을 가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오직 신문정공 한 분밖에는 없다 할 것이다.“

상촌 신흠선생의 문집에 쓴 신흠선생의 학문에 대한 글이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시인 랭보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오 계절이여 오 성곽이여!

결함 없는 넋이 어디 있으랴?“

 

결함 없는, 결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것을 간파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글을 보자.

 

우지 못한 사람의 지식은 울창한 숲과 같다.

생명력은 넘치지만 이끼와 버섯 따위에 덮여 대개는 쓰이지 못한다.

과학자의 지식은 공공사업을 위해 마당에 내어놓은 목재와 같다.

잘하면 이곳저곳에서 유용하게 쓰여 질 수도 있으나 쉽게 썩는 결함이 있다.

185117일에 쓴 일기다.

 

아무리 완벽한 사람이라도, 어딘가 허점이 있고,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어딘가 빈 구석이 있다.

신이 아닌 이상, 어딘가 빈 구석이 있을 때 인간다운 것,

너무 완벽을 추구하며 살면 사람 같지 않고 기계와 같은 것,

조금은 빈, 어딘가 모자란 것이 많은 그런 사람들이 좋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내가 조금씩 철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런가?



향기란 그 자체가 그리움이다.

향기란 그 자체가 그리움이다.

 

꽃은 두 종류다. 향기가 있는 꽃,

향기가 없는 꽃,

어느 꽃이든 꽃은 꽃이지만,

향기가 있든 없든 꽃은 아름답다.

 

향기란 그 자체가 그리움이며,

덧없는 삶의 저 너머 영원불변하는

그 어떤 실체에의 그리움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인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렇게 노래했는데,

아름답기 때문에 슬프고,

아름답기 때문에 기쁨을 주는 것이 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꽃을 사랑한다.

사랑이 깊어서 사랑이 그윽하고,

사랑이 슬퍼서 사랑이 은은한 그 꽃에 대한 사랑,

꽃에 대한 사랑은 어쩌면 맹목적이지 않을까?

꽃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사랑,

사물에 대한 사랑,

이 세상에 사랑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사랑을 두고 괴테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우리는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사랑에서

 

우리는 어떻게 멸망하는가?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무엇으로 자기를 극복하는가?

사랑에 의해서

 

우리를 울리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

 

우리를 항상 결합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

 

괴테의 <사랑>이라는 시가

오월에 더 은은한 것은

봄꽃이 연이어 피기 때문이리라.

 

여기저기, 이곳저곳

꽃피고 꽃 지는 소리 들리는 오월이

오고 간다.

꽃향기 지천에 널린 오월에,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이고, 인류애란 무엇일까?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이고, 인류애란 무엇일까?

지난 번 유럽 여행 때 드레스덴을 지나며 추억 같이, 아니 그리움 같이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내 푸른 영혼에 깊고도 넓은 상혼을 남긴 도스토예프스키, 그가 이곳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소설 중에 <미성년>이 있습니다. 그 소설 속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습니다.

 

드레스덴에 있는 화랑에 클로드 로랭의 그림이 있는데, ‘아시스와 갈라테아라는 제목의 그림이지. 그런데 나는 그 이유는 모르지만 왠지 그것을 늘 <황금시대>라고 불렀어. 물론 나는 그 전에도 한 번 그것을 본 적이 있고, 그 때 여행을 하는 도중에도 약 사흘 전에든가 다시 한 번 그 그림을 눈여겨보았었지. 그런데 바로 그 그림을 다시 꿈에서 본 거야.

마치 실제로 그것을 보는 듯 했어. 어떤 꿈이었는지 자세히 기억할 수가 없는데 아무튼 그림 속에 있는 것과 똑같은 경치가 펼쳐져 있었어. 그곳은 그리스 다도해의 한구석이었고, 시간도 3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 같았지. 고요한 정적이 쌓인 푸른 바다, 수없이 많은 섬과 바위, 꽃이 만발해 있는 해안, 멀리 펼쳐지는 매혹적인 정경들, 그리고 사람을 부르며 저물어가는 태양 등 참으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동적인 풍경이었지.

바로 이 시공간을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정신적 요람으로 가슴에 새겨 두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 생각에 잠기자 내 마음도 어느새 혈육 같은 애정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꼈지. 그것이 바로 인류가 꿈꾸는 지상 천국이었어. 그 시공간에서 신들은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들과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던 것이지...

 

, 그곳에는 참으로 고귀한 영혼을 지닌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 그들은 이곳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순수한 기쁨을 만끽했던 거야. 들과 숲에는 그들의 행복에 겨운 노랫소리로 가득 차 있고, 흘러넘치는 위대한 열정이 모든 사랑과 진정한 평화의 원천을 이루어 내고 있었지.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태양은 그들에게 한없이 따스함과 빛을 뿌려 주었고... 바로 그러한 정경이야말로 인간의 이념이 지향하던 모습 아니겠니!

황금시대, 이것은 인류의 꿈 중에서도 가장 실현 불가능한 꿈이지. 하지만 사람들은 바로 그 꿈을 위해서 온 생애와 모든 열정을 바쳐 왔고, 또한 그것을 위해 예언자들은 기꺼이 죽었고 계속해서 죽음을 당했어. 인간은 그런 이념 없이 살기를 원치 않았고, 또 그대로 죽을 수도 없었지! 나는 그런 모든 인식을 그 꿈속에서 직접 체험했지.

꿈에서 깨어나 눈물에 젖은 눈을 떴을 때 바위와 바다, 그리고 사라져 가는 태양의 여명, 그러한 모든 것이 마치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지. 그 때 느꼈던 그 벅찬 감동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 지금까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이 내 가슴 한 쪽을 뚫고 지나가, 나는 서늘한 아픔을 느낄 정도였지. 바로 그 감동은 인류의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었어.“

 

꿈인 듯 생시인 듯 스쳐지나간 꿈같이 행복했던 나날을 보낸 사람도 있고 꿈인 듯 생시인 듯 불행했던 나날을 보낸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상이 넓기 때문이고, 사람 역시 많기 때문입니다.

꿈에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그렇고, 어떤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저절로 경탄이 나오는 그런 장소를 만날 때가 더러 있습니다.

만나기만 해도 정신이 명료해지고 가슴이 훈훈해지며 돌아서면 보고 싶은 그런 그리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도 역시 자연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은 저절로 시인이 되고 어린이가 되고, 신선이 됩니다. 그런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 순간을 단숨에 부여잡는 사람도 있으며, 왔는지도 모른 채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자연에 대한 사랑이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형제만이 아닌 전 인류에 대한 사랑, 그래서 지구 저편에서 누군가의 신음소리나 울음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아픈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대 재난이 발생했는데, 신의 이름을 빌려 저주를 퍼붓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성직자라는 이름으로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지도층이라는 이름으로 동시대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인류에 대한 사랑,’ ‘니체가 말한 가까운 이웃에 대한 사랑보다 더 먼 곳에 대한 사랑그것이 이 땅을 살다간 선지자들의 변하지 않는 신념이 아니었을까요?

숱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나이 먹고 위대한 영혼을 가졌기 때문에 나는 모든 것이 좋다고 판단 한다.”

소포클레스가 <오이디푸스>에서 말한 이 말이 성직자들이 아닐지라도 나이 먹은 사람들의 진정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요?

어제, 정확히 과거가 되어버린 어제, 서학동의 한 카페에서 사진들을 보았고, 남부시장의 현대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는 그림들을 보며, 다시 한 번 드레스덴과 도스토예프스키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슬픔 같은 기쁨이었습니다.

이 시간에도 어려움에 처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미성년에 나오는 그런 아름다운 시절을 다시 한 번 안겨 드리고 싶은 마음, 지금의 제 마음입니다.




저마다 다른 삶의 형태 속에 당신과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저마다 다른 삶의 형태 속에 당신과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시대마다 지역마다 풍속이 다르고 마찬가지로 삶의 형태도 다르다.

기우제를 지내는 것도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경건하게 지내야 하늘에서

비를 내려준다고 여겼지만 전남 곡성에서는 동악산의 신선바위에는

그와 정반대로 기우제를 지냈다.

넓이가 30여 쯤 되는 이 신선바위에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놀면서 바둑을 두었다고 하는데

이 바위에서 옛 시절에는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 산의 기우제는 정성껏 제물을 차려놓고 올리는 기우제가 아니고

특이하게도 신을 성나게 하기 위해 아낙네들이 바위에도 똥이나 오줌을 누고

술을 마시며 뛰고 구르면 신이 더럽고 무엄하다며 화를 내면서

뇌성 번개를 내려쳐서 큰비를 내려주었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강도 마찬가지다.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에서 올리는 기우제가

엄숙하고 정갈하게 치러졌는데,

강을 경외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 보았던 나라들도 있었다.

터어키의 이나퀴스 강가에 사는 사람들은

강이 범람하는 것을 부당한 것으로 여겨 관에다가 소송을 했다.

그 풍습이 1826년까지 실시되었다고 한다.

 

서류형식에 맞추어 꾸며지고 서명된 청원장에 의해서,

터어키 인들은 재판관에게, 이나퀴스 강이 경계에서 나와,

그들의 밭을 황폐하게 한다는 것을 진술하고,

그 강이 자신의 지역으로 되돌아가게끔 명령해달라고 탄원한다.

재판관은 그들이 바라는 바대로 판결을 내리고,

그 선고宣告는 그대로 잘 지켜진다.

그러나 만약 물이 불어나게 되면, 그때 재판관은 주민들을 데리고,

문제의 그 장소에 가서 강을 향해 물러가라고 명령한다.

강에는 재판관의 권고장의 사본이 던져지며,

주민들은 강을 침략자나 탈취자로 취급하여 돌을 던지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관습이 아실 밀리앙의

<그리스와 세르비아의 민요>에도 나타난다.

바다에서 죽은 수부의 아내들이

바닷가에 모여 각자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번갈아 물결 위를 채찍으로 때려라.

, 거품 이는 물결의 심술 굿은 바다야

우리 서방 어디 갔나? 우리 주인 어디 있나?“

 

자연에 순응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자연을 삶의 대상으로 여겨 잘못이 있으면 따지고

소송까지 마다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

그것을 보면 오히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극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세월이 무수히 흐른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펼치는 삶과 놀이의 현장을

보면 그 당시와는 너무 판이하게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골프도, 축구도, 야구도, 아니 IT를 비롯한 여러 가지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고 질주하고 있는 것을 보면

오히려 옛 시절에 비해, 너무 당당하다고 할까?

아니면 극성맞다고 해야 할까,

내가 한국인인데도 그 한국인이 겁날 때가 더러 있다.

좀 더 세계인들과 보폭을 줄여서

잘 놀고 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잘 놀자. 그리고 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