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개한 가을에 남도에서 꽃 무릇(상사화)을 보다.
“가을이구나, 빌어먹을 가을,
우리의 정신을 고문하는,
우리를 무한 쓸쓸함으로 고문하는,
가을, 원수 같은,
나는 너에게 살의를 느낀다.
가을 원수 같은,“
정현종 시인이 노래한 <가을 원수 같은> 그 가을의 초입에 피는 꽃이 상사화라고 불리는 꽃무릇입니다.
조금 늦었지만 아직은 조금 덜 늦은 가을, 이번 주 목요일인 27일에 번개기행으로 꽃 무릇이 무리지어 피어 온산천을 물들이고 있는 아름다운 고장 함평의 용천사와 영광 불갑사를 찾아갑니다.
“불갑사는 우리 나라에 최초로 불교를 전파한 진나라의 마라난타가 침류왕 1년 384년에 창건했다고 한다. 도갑사, 봉갑사, 불갑사의 3갑사를 창건한 그가 셋 중 이 사찰이 으뜸이라 하여 불갑사라 이름 붙였다는 설이 전해져 오는데, 대웅전 용마루에 반듯이 탑을 얹어놓은 마라난타의 사찰 건축양식이 그 후 중창 시에도 그대로 이어져 온 것으로 짐작된다.
불갑사 고적기와 조선 중기 때의 성리학자 수온 강항선생이 지은 불갑사 중수기를 보면 이 절은 충렬왕 3년에 도승 진각 국사가 중창하였다. 그 때의 규모는 500칸이었고 승방이 70여개 소, 낭료400여주, 누고가 90여척이었고, 수백여 명의 스님이 앉아 있을 수 있는 승방이 있었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전부 소실되어 버리고 전일암만 남아 있던 것을 몇 번에 걸쳐 중수하였고 영조 40년과 1909년 부분 보수를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불갑사는 대웅전, 팔상전, 칠성각, 명부전, 요사채를 비롯한 절간 건물이 열다섯 채가 있어 그 규모가 작지 않다. 보물 830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웅전은 정면 3간, 측면, 팔각지붕에 다포계 건물의 매우 화려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대웅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문살 모양이다. 소슬 빗살문으로 중앙 어간에는 연꽃무늬와 국화무늬를 수려하게 조각하여 내소사 대웅전의 아름다운 문살을 연상시키지만 그와는 또 다른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바쁜 길손들을 사로잡는다. 대웅전 후면 벽화의 숙작(졸고 있는 까치)같은 보기 드문 작품과 소요사에서 옮겨 왔다는 사천왕상, 그리고 열한 살 먹은 소녀가 썼다는 인상적인 현관 ‘불갑사’가 있는 불갑사를 뒤로 하고 산길을 올라갔다.
불갑산은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동쪽에 위치한 산이다. 영광에 있는 크고 작은 산 중에 제일 높은 산이라 하여 모악산으로 불렸는데 산의 중턱에 불갑사가 세워지면서 불갑산이라고 하기 시작했다. 영광의 진산으로 호남정맥이 입암산에서 서남지맥을 뻗어 방장산 문수산을 일으켜 세우고 달리다가 우뚝 솟은 산이다. 해발 516미터 이며 영광읍에서 약 10킬로미터 지점에 있다. 멀리서 보면 산의 형태가 늙은 쥐가 밭을 향해 내려오는 형세를 닮았다고 한다. 이 불갑산에는 인도공주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전설을 안고 있는 참식나무가 자라고 있다. 천연기념물 112호로 늘 푸른 참식나무는 울릉도와 따뜻한 남쪽지방에서만 자란다.
산길을 따라 도토리, 참나무, 싸리나무 등의 잡목사이를 헤쳐 산 속으로 한참 들어갔다. 동백나무가 우거져 있다. 이곳이 바로 유명한 불갑산 동백나무숲이다. 선운사나 오동도의 동백과 견줄 바는 없으나 이른 봄 희끗희끗한 잔설 사이로 내민 붉은 동백꽃은 지나는 길손들의 발길을 묶어놓고도 남았으리라, 칡넝쿨과 참대나무 우거진 길을 헤치고 1.5킬로미터 올라가니 수줍은 새악시처럼 해불암이 나타났다.
불갑산에 있는 여러 암자 중 유일하게 서해낙조를 바라볼 수 있는 해불암(海佛庵)에서 석간수로 목을 축였다. 가파른 산등성이로 땀을 훔치며 오르니 불갑산 정상인 연실봉이다. 연밥을 닮았다는 연실봉(蓮實峰)에서 바다를 보았다. 동해일출을 보고 싶거든 경주 토함산을 올라가고 서해낙조를 보려거든 불갑산 연실봉에 오르라던 누군가의 말은 틀림이 없을 듯 싶다.
함평평야와 나주평야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동북쪽으로 백암산, 추월산, 태청산의 여러 봉들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구름 속으로 민족의 성산 지리산이 아스라하게 보일 듯 싶고, 남쪽으로 영암 월출산이 보인다. 그리고 곽재구의 아름다운 시편에 나오는 송이도, 각이도, 낙월도 등 이름도 모르는 무수한 섬들을 칠산바다가 자식처럼 끌어 안고 있다. 영광읍쪽으로 백수 대절산이 외롭고 바로 그 아래 촛대봉과 나팔봉이 초록빛으로 옷을 갈아 입은 채 서로를 시새움하듯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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