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에서 보낸 며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살고자 하면서도
그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시간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계산하는 때가 있다.
울릉도에서 강릉으로 정시인 오후 다섯 시에 출발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다섯 시 40분으로 변경되다가 보니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과연 미리 예약한 밤 12시차를 탈 수 있을까?
만약 바람만 적게 불고, 그래서 파도만 잔잔하다면 세 시간, 다시 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두 시간 40분에 도착하면 되는데,
배는 8시 40분에 도착했다.
이순임 선생의 내외분의 차에 실려 강릉을 떠난 시간,
9시 20분,
한 번도 쉬지 않고, 터미널에 도착해서 11시 40분으로 앞 당겨 타고
전주로 왔다.
원래 예정대로 버스를 탔더라면,
하마터면 찜질방 신세를 지고, 아침 첫차를 탔어야 하는데,
이순임 선생 두 내외분께 거듭 감사를 드린다.
울릉도에서 보낸 사흘,
처음이 아니고 두 번째 답사였지만, 모든 장소는 언제나 처음처럼 다가온다.
성인봉에서 만난 그 구름의 향연, 아침 숙소 바로 앞에서 바라본 이틀간의 해맞이,
독도나 천부리가는 길도 그렇지만 울릉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음식들일 것이다.
명이나물이나 삼나물도 그렇지만 그 더덕의 맛,
아무런 더덕의 향기를 음미할 수가 없는 것이 울릉도의 더덕 맛이다.
제 아무리 육지의 그 향기 높은 더덕을 갖다 심어도
금세 더덕의 향기가 사라져 버린다는 그 마법의 열쇠가 중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여러 말들에 잇다. 그 중 하나가 ‘귤이 회수를 지나면 탱자가 된다.’ 는 말이다.
식물들이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떨까?
<괴테의 에커만과의 대화> 제 2부에 그에 대한 것이 실려 있다.
“....각 지방의 풀이나 나무가 그 지방 주민의 정서에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네. 그리고 그것은 확실한 사실이지. 일생동안을 높고 엄숙한 큰 떡갈나무에 둘러 싸여 지내는 사람들이, 명랑한 자작나무 밑을 유유히 산책하며 즐기는 사람들하고 전혀 다른 인물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그러나 이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우리와 비교하여 그다지 감수 적이지 않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네. 그들은 대체로 각자의 생각대로 힘차게 살아가고 있어서 별로 외계와 영향을 벋지 않지. 따라서 한 민족의 성격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종족의 본래의 성질을 고려하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네. 그럼에도 확실히 땅과 기후, 그리고 식물과 일상적인 영위 같은 것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 또한 태고의 종족들은 대체로 그들에게 적합한 토지를 선택했다고 생각할 수 있네. 그러므로 그 땅과 그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그 성격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지.”
인간과 인간을 어느 곳에서 태어나느냐 하는 것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게도 저마다 다른 특질이 조금씩은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미인과 바람과 향나무가 많은 울릉도, 옛 우산국에 언제 다시 갈지는 모른다. 하지만,
떠나온 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다시 그리운 것은 사흘간 내 눈을 어지럽혔던 구름 탓인지도 모르겠다.
동행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임진년 시월 초나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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