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조선 권력의 중심부였던 북촌과 경복궁을 거닐어 본다.
북촌은 조선후기로 갈수록 권력의 핵심들이 기거하는 곳으로 고착화된다. 이러한 현상은 일제강점기 때에도 변함없이 유지되었으며 근현대사를 장식한 많은 인물들이 이곳에 자리한 것도 이러한 이유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은 이곳 북촌에 쉽게 들어오기 어려워 남촌에 자리 잡게 된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사이에 자리하고 있어 궁궐과도 가깝고 풍수적으로도 궁궐의 배치와 같이 하는 길지임을 알 수 있다. 남산아래에 남촌이 형성되었고 이곳은 정계진출을 꿈꾸는 을 신진 선비들이나 가난한 서생들이 주로 기거하는 곳으로 후기로 갈수록 주로 남인계열의 선비들이 기거하는 곳이 되었다. 이곳에 비해 북촌은 권력을 장악한 층들이 기거하는 곳으로 후기에는 권력을 장악한 노론의 집거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청계천 물줄기로 보면 인왕산 부근의 상류근처에는 경복궁에 근무하는 아전들이 주로 기거했고 이곳을 윗대(상대)라고 했으며 물이 빠져나가는 광희문, 동대문, 왕십리 근처를 아랫대(하대)라 하며 훈련원이 있기도 하여 주로 하급군인들이 기거했다. 이러한 공간적 배경으로 하급군인들이 중심이 된 임오군란이 이곳을 기점으로 일어난다.
현재 북촌은 한옥의 아름다움을 그런대로 잘 간직하고 있다. 재미있고 특별한 개인 박물관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으며 골목골목 돌담사이를 거닐다 보면 이런저런 추억들이 어우러져 시간가는 줄 모른다.
경복궁은 조선의 중심이었으며 상징이다.
경복궁은 한마디로 정도전의 모든 것이기도 했다. 조선을 ���계하고 한양을 건설한 그의 정치사상과 철학이 녹아 있는 곳이기도 하며 실현도 해보지 못하고 좌절한 곳이 경복궁이기도 하다. 정도전은 신하가 정치를 하는 그런 세상을 꿈꾸었는데 이방원의 생각은 강력한 왕권을 원했기 때문에 그들은 경복궁의 주권을 놓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폐허가 된 경복궁을 재건한 대원군은 신하들에게 빼앗긴 왕권을 되찾고 싶었다. 심지어 신하들에 의해 택군이 되는 상황까지 이르렀으니 대원군의 속내는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왕권을 회복하고 싶었다. 당연히 이러한 의도를 실현시킨 경복궁은 조일전쟁을 불탄 당시의 경복궁보다 더 크고 화려하고 장대하게 복원된다.
정도전의 꿈이었던 신권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경복궁
절대왕권을 꿈꿨던 대원군이 재건한 경복궁
그 경복궁 늦가을 정취를 만끽하면서 거닐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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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답사는 최대한 자유롭게 알아서 즐기는 답사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자유롭게 어슬렁거리며 마음껏 놀다가 알아서 끼리끼리 점심을 드시고 오후 1:00 지광국사 현묘탑 앞에 모이면 되겠습니다.
오후 1시부터 경복궁 답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경복궁 답사는 3시간 정도 소요가 되며 오후 4시정도에 마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오전 참석이 어려우신 분은 오후 일정에 맞추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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