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초입 부석사를 답사하고 고치령을 넘다.
늦가을 평일에 부석사를 찾아갑니다. 이 계절에 가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무량수전 뒤편에서 고즈넉하게 서 있는 고욤나무 밑에 새까맣게 떨어져 있는 고욤, 하나 주워서 입에 넣으면 그 달콤함이 온 몸으로 스며드는, 가을에 부석사를 안가면 몸살이 날 것 같아서 부석사 여정을 마련했습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멀리 보이는 소백산을 굽어보고, 안양루 아래 돌 계단에 앉아서 지난날들을 회상하기도 하다가, 점심을 먹고 그 아름다운 고치령을 넘을 예정입니다.
경죽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에서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로 넘어가는 백두대간에 자리잡은 고치령 길에는 노랗게 빛나는 낙엽송이라고도 부르는 일본잎깔나무잎이 온산을 물들이고 있을 것입니다.
한적한 시간, 천천히 걸으며 바라볼 산천이 벌써부터 그립습니다. 그길을 걷고자 하시는 분의 참여를 바랍니다.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 있는 신라의 고찰 부석사浮石寺가 그런 절이다. 불전 뒤에 큰 바위 하나가 가로 질러 서 있고, 그 위에 또 하나의 큰 돌이 지붕을 덮어놓은 듯하다. 언뜻 보면 위아래가 서로 붙은 듯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두 돌 사이가 서로 서로 이어져 있지도 않고 눌리지도 않았다. 약간의 틈이 있으므로 노끈을 집어넣으면 거침없이 드나들어, 그것으로 비로소 돌이 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절이 이 돌 때문에 이름을 얻었는데, 그렇게 떠 있는 이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절 문밖에 덩어리가 된 생 모래가 있는데, 예로부터 부서지지도 않고, 깎아버리면 다시 솟아나서 새롭게 돋아나는 흙덩이와 같다. 신라 때 승려 의상대사義湘가 도를 깨닫고 장차 서역의 천축국으로 떠나기 전에, 거처하던 방문 앞 처마 밑에다 지팡이를 꽂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여기를 떠난 뒤에 이 지팡이에서 반드시 가지와 잎이 살아날 것이다. 이 나무가 말라죽지 않으면 내가 죽지 않은 줄 알아라.”의상이 떠난 뒤에 절 스님은 그가 살던 곳으로 가서 의상을 초상肖像을 만들어서 안치하였다.
창 밖에 있던 지팡이에서 곧 가지와 잎이 나왔는데, 햇빛과 달빛은 이것을 비치지만 비와 이슬에는 젖지 않았으며. 항상 지붕 밑에 있으면서도 지붕을 뚫지 않았다. 겨우 한 길 남짓한 채로 천년을 하루같이 살아 있다.
광해군 때 경상감사였던 정조鄭造가 이 절에 이르러 이 나무를 보고서 “선인이 지팡이 삼던 나무로 나도 지팡이를 만들고 싶다.”하고 명령을 내려 톱으로 잘라서 갔다. 그러자 곧 두 줄기가 다시 뻗어 전과 같이 자랐다. 그 때 나무를 베어갔던 정조는 인조 계해년(1623)에 역적으로 몰려 참형을 당했지만 나무는 지금까지 사시사철에 푸르며, 또 잎이 피거나 떨어지는 것이 없기 때문에, 스님들은 비선화수飛仙花樹라고 부른다. 옛날에 퇴계선생이 이 나무를 두고 읊은 시가 있다.
옥과 같이 아름다운 이 가람의 문에 기대어,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지팡이가 변하여 신령스러운 나무가 되었다 한다.
지팡이 꼭지에 스스로 조계수가 있는가,
하늘이 내리는 비와 이슬의 은혜를 빌지 않는구나.
절 뒤편에 있는 취원루聚遠樓는 크고 넓어서, 높은 것이 하늘과 땅 가운데 우뚝 솟은 듯 하고, 기세와 정신이 경상도 전체를 위압하는 것 같다. 벽 위에는 퇴계의 시를 새긴 현판이 있다.
내가 계묘년(1723) 가을에 승지承旨 이인복李仁復과 함께 태백산을 놀러갔다가 이 절에 들어가, 드디어 퇴계의 시에 차운次韻하였다.
까마득하게 높은 누각 열두 난간 위에,
동남쪽 천 리 지역이 눈앞에 보이도다.
인간 세상은 까마득한 신라국인데,
하늘 아래는 깊고 깊은 태백산이로다.
가을 골짜기에 어두운 연기는 나는 새 너머에 일고,
바다에 남은 노을은 흩어진 구름 끝에 비친다.
가도 가도 위쪽의 절에는 닿지 못하니,
예부터 행로行路의 어려움을 어찌 알소냐.
다시 또한 수를 더 지었다.
태백산은 아득히 하늘과 통하고,
옛 절은 웅대하게 왼쪽의 바다 동쪽에 열렸구나..
강과 산들이 멀리 천 리 밖에서 만나고,
불전과 누각은 날아갈 듯이 천지 사이에 솟았네.
고승이 거처를 떠났는데 꽃이 나무에 피고,
옛 나라야 흥했거나 망했거나 새는 빈 하늘을 지나가네.
누가 알랴. 머뭇거리는 주남周南 나그네의,
뜬구름, 지는 해에 하염없는 뜻을.
“취원루 위 깊숙한 한쪽 구석에 방을 만들고서, 그 안에는 신라 때부터 이 절에서 사리가 나온 이름난 스님의 화상畵像 10여 폭이 걸려 있다. 모두 얼굴 모습이 고아하고 괴이하게 생겼으며 풍채가 맑고 깨끗하여 엄연히 당시의 다락집 위에서 서로 대좌하여 선정에 들어간 것 같다. 지세가 꾸불꾸불하게 뻗어 내려간, 그 곳에 있는 작은 암자들은 불경을 강론하고 선정에 들어가는 스님들이 거처하는 곳이라고 한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
부석사가 자리잡은 봉황산은 충청북도와 경상북도를 경계로 한 백두대간의 길목에 자리잡은 산으로 서남쪽으로 선달산, 형제봉, 국망봉, 연화봉, 도솔봉으로 이어진다. 부석사 무량수전 위쪽에 서 있는 3층석탑에서 바라보면 소백산으로 이어진 백두대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일주문을 지나면 마치 호위병처럼 양 옆에 서 있는 은행나무와 사과나무가 서 있고, 당간지주를 지나고 천왕문을 나서면 9세기쯤에 쌓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석단과 마주치고 계단을 올라가면 범종루에 이른다.
범종루 아래를 통과하면 안양루가 나타나는데, 안양루의 안양(安養)은 극락의 또 다른 이름이다. 안양루를 지나면 극락인 셈이다.
안양루 밑으로 계단을 오르면 통일신라시대의 석등 중 가장 우수한 석등인 부석사 석등(국보 제 17호)이 눈앞에 나타나고 그 뒤로 나라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건축인 무량수전이 있다. 1916년 해체․수리할 때에 발견한 서북쪽 귀공포의 묵서에 따르면 고려 공민왕 7년(1358)에 왜구의 침노로 건물이 불타서 1376년에 중창주인 원응국사가 고쳐지었다고 한다. 무량수전은 ‘중창’ 곧 다시 지었다기보다는 ‘중수’ 즉 고쳐지었다고 보는 것이 건축사학자들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원래 있던 건물이 중수연대보다 100~150년 앞서 지어진 것으로 본다면 1363년에 중수한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 15호)과 나이를 다투니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보아도 지나치지 않겠다. 이 같은 건축사적 의미나 건축물로서의 아름다움 때문에 무량수전은 국보 제 18호로 지정되어 있다.
무량수전 안에 극락을 주재하는 부처인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흙을 빚어 만든 소조상이며, 고려시대의 소조불로는 가장 규모가 큰 2.78m의 아미타여래조상은 국보 제 45호로 지정되어 있다.
무량수전의 동쪽 높다란 곳에 있는 석탑을 지나 산길을 한참 오르면 조사당이 있다. 조사당은 국보 제 19호로 의상스님을 모신 곳으로 1366년 원응국사가 중창 불사할 때 다시 세운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인 이 건물은 단순하여서 간결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데, 조사당 앞에 의상스님의 흔적이 남아있는 본래 이름이 골담초인 선비화가 있다.
의상스님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으면서 “싱싱하고 시들음을 보고 나의 생사를 알라”고 했다는 선비화를 두고 이중환은 택리지에‘스님들은 잎이 피거나 지는 일이 없어 비선화수라고 한다.’고 하였는데, 그 나무가 지금의 나무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사람들의 손길이 타는 것을 막기 위해 철망 속에 갇힌 채 꽃을 피우고 그 철망 안에는 천 원짜리 지폐와 동전들이 나 뒹굴고 있을 뿐이다.
한편 『택리지』에 나오는 취원루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순흥읍지』에 의하면 무량수전 서쪽에 있었다고 한다. 그 북쪽에 장향대, 동쪽에는 상승당이 있었다고 하고, 취원루에 올라서 바라보면 남쪽으로 300리를 볼 수가 있다고 하며 안양 문 앞에 법당 하나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일주문에서 1리쯤 아래쪽으로 내려간 곳에 영지가 있어서 ‘절의 누각이 모두 그 연못 위에 거꾸로 비친다.’고 하였다. 물에 비친 부석사의 아름다움을 상상해보는 것만도 가슴 설레는 일이지만 150여년의 세월 저쪽에 있었다는 영지는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으니 그 또한 애석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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