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남문에서 연미정까지를 걷다.
7월 8일 일요일 강화를 갑니다. 역사와 문화의 고장 강화도의 남산, 남문에서 출발하여 강화읍을 멀리서 바라보며 걸을 예정입니다.
여름철을 감안, 숲길로 이어진 길을 걸어갈 이번 기행은 강화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강화의 남문은 병자호란의 자취가 서린 곳입니다.
“ 강화 수비의 최고 사령관인 방수대장(防守大將) 김경징은 영의정이었던 김류(金濫)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권세를 믿고 방비를 허술히 하면서 날마다 장기를 두거나 주연으로 세월을 보냈다.
부하들이 그 잘못을 말하면 오히려 목을 베어 죽이는 등의 호기를 부리고 “나는 비와 바람을 부르는 재주가 있으니 걱정 없다” 또는 “되놈 군사가 날아서 건널 것인가”라고 장담하기도 하였다.
그때 청나라 장수 용골대(龍骨大)가 김포군 문수산에 올라 방비가 허술한 것을 살핀 뒤에 작은 배를 타고 일제히 갑곶진을 건너 강화성에 다가가자 김경징은 배를 빼앗아 타고 도주하였으며 강화 유수(留守) 장신(張紳)도 배를 타고 바다로 물러 앉았다.
이것을 본 김상용은 남문 위의 화약더미에 올라앉아 담배에 불을 붙여 화약에 당겨 폭사하고 말았다.
그 당시의 기록이 <인조실록> 15년 ‘임술’조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전 의정부 우의정 김상용이 죽었다. 병자호란 초에 상용은 임금의 어명에 의하여 먼저 강도(강화도)에 들어가 있다가 적군이 그곳 관청에까지 다가오자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성 남문 다락 위에 올라 화약을 무어 놓고 좌우에 있던 사람들을 비키게 한 다음 불을 당겨서 자폭하였다. 그 때 손자와 종이 따라 죽었다. 상용은 자를 경택景擇이라 하고, 호를 선원仙源이라 하며 김상헌의 형이다. 인품이 점잖고 너그러우며, 항상 몸가짐을 삼가고 조심하였다.”
그가 담뱃불을 당기자 그 순간 벼락 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천지가 울리고 흔들리며 문루가 산산조각이 났다고 한다. 그때 김상용이 나이 77세였다.“ 신정일의 <신 택리지> 경기도 편에서
저기 염하를 건너 보이는 곳에 연미정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경기도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이다.
강화라는 이름은 한강이 강화섬 앞에서 바다로 접어들기 때문에 이 섬을 한강물이 빚어낸 한 떨기 꽃으로 비유하여 강의 꽃 ‘강화江華‘라고 하였다 한다.
강화읍 월곶리 동쪽의 바닷가에 있는 연미정燕尾亭은 본래 교동현 읍내리에 있는 정자로 한강과 임진강이 합하여 흐르다가 이곳에 이르러
두 갈래가 되어 한줄기는 남쪽으로,한줄기는 서쪽으로 흘러 마치 제비꼬리처럼 생겼으므로 연미정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유도섬이나 한강이 바다로 합류하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인데... <한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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