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에서의 하룻밤
가끔씩 떠나온지 며칠되지 않는 장소를 다시 찾을 따가 있다.
토요일에 몇 시간을 머물렀던 곳이 보은이었는데,
다시 보은에 들른 것이다.
그때는 함께 답사할 일행들을 기다리던 보은,
이번에는 상주로 가기 위해 잠시 스쳐 지나가는 보은,
저녁 햇살 아래 빛나던 삼년산성을 뒤로 하고, 구병산 지나
상주시 화서면의 화령에 도착하자, 보이던 진눈깨비
그래, 나는 올해의 첫눈을 백두대간이 지나는 상주의 화령에서 보는구나.
온 산천이 희뿌연하게 내리는 진눈깨비,
그 사이로 차는 질주하고
문득 날이 저물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어디서 머물러야 할까 하는 생각,
화령에서도 상주는 제법 멀다,.
조금 늦게 도착한 상주 터미널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
오랫만에 누군가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고, 아무도 위로하지 않지만'
가끔씩이라도 의무적으로라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경천대에 있는 상주 박물관에서 <영남대로와 상주의 길> 강연을 마치고
살주 터미날에 돌아와 버스 시간표를 보자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다.
오늘은 어느 곳에서 하룻밤 묵을 것인가?
늦은 열시 10분 충주행 버스를 타고 한 시간 40여분을 달려서 충주에서 묵을 것인가?
아님 상주에서 머물고 아침 8시 35분 첫차를 타고 충주 거쳐서 원주를 갈 것인가?
잠시의 망설임 끝에 오늘은 상주에서 머물기로 결정한다.
오늘의 일진은 상주에서 하룻밤 자는 것이었구나.
터미널 옆 모텔에 들어서 배낭을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니
방은 작그마하지만 아주 정돈이 잘 되었다.
이렇게 하루해가 저무는구나.
오랫만에 죽음 처럼 깊은 잠을 자고 깨어나니 한 밤중이다.
낯선 도시의 낯선 숙소가
어느 사이 낯설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나그네의 이력이 붙은 탓이리라.
전주에서 떠나 대전을 지나 상주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다시 충주를 지나
원주로 가겠지.
교통방송에서 두어 시간의 강의를 마치고
나는 어디를 거쳐 갈 것인가 잠시 고민을 하겠지,
그리고 오랜 습관에 따라 어느 버스에 올라 긴 시간을 차 속에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다가 보면 떠났던 전주로 돌아기겠지,
이렇게 저렇게 가는 세월 앞에서 가끔씩 내가 낯설 때가 있다.
낯선 사람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임진년 동짓달 스무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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