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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길]삼남대로 옆에 웬 ‘신 삼남길’ (경향신문 2013.1.11(금))

산중산담 2013. 1. 26. 12:36

삼남대로 옆에 웬 ‘신 삼남길’ (경향신문 2013.1.11(금))

 

                                                                         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전남 해남에서 서울 숭례문에 이르는 삼남대로 천리 길을 혼자서 걸었던 때가 2004년 봄이다. 조선시대의 9대 간선로 중 제7로인 삼남대로는 말 그대로 역사의 길이었다.

주요 노정을 서울에서부터 살펴보면 동작나루, 남태령, 과천, 인덕원, 청호역(수원), 진위, 성환역, 천안, 차령고개, 공주, 노성, 은진, 여산을 거쳐 삼례에 닿았다. 삼례에서 전주, 남원, 함양, 산청, 진주를 거쳐 통영으로 가는 제6로가 나뉜다. 다시 금구를 지나 태인, 정읍, 갈재, 장성, 나주, 영암 그리고 강진의 성전을 거쳐 해남 이진항이나 관두량에서 제주로 가는 길이었다.

삼남대로는 역사 속의 수많은 유배객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길이다. 기묘사화의 주역, 김정과 동계 정온, 광해군이 이 길을 거쳐 제주로 갔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권세가 우암 송시열은 그 길목의 정읍에서 최후를 맞았고 추사 김정희도 이 길을 따라 제주로 갔다. 다산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가 유배를 가다가 나주의 율정점에서 이별의 눈물을 흘렸던 곳도 이 길이었다.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던 이 길이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서울에서 문경새재 넘어 부산에 이르는 영남대로와 삼남대로, 그리고 흥인지문에서 경북 울진군 평해읍에 이르는 길을 문화생태 탐방로로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모 스포츠그룹과 도보답사 카페가 그와 비슷한 길을 ‘신 삼남길’이라는 이름으로 연결하고 있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대동지지>에 표시된 삼남대로는 국도로 연결된 부분이 많아서 걷기에 불편하니 10㎞나 15㎞ 떨어진 곳에 ‘신 삼남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더욱 해괴한 것은 그들의 말도 안되는 강변에 지자체까지 동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담당자에게 물었다. ‘조선시대의 역사 인물들이나 과객들, 또는 벼슬아치나 동학농민군을 비롯한 여행객들이 걸었던 길, 즉 <대동지지>에 나타난 그 길이 삼남대로지, 어찌 그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삼남대로라 하겠느냐’고.

연암 박지원은 ‘비슷한 것은 가짜다’라고 말했다. 자동차들이 많이 다니기 때문에 역사 속의 길을 무시하고 다른 곳에 ‘신 삼남길’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길을 만드는 데 피 같은 국고가 쓰인다면, 그 길을 피눈물 흘리며 걸어갔던 선인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역사적인 길은 역사를 공부하고 답사한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고증을 받고 만들어야 한다. 역사의 복원은 흉내가 아니라 사실대로 바로잡는 것이다. 따라서 짝퉁 길을 낼 여력이 있으면 <대동지지>에 나타난 ‘삼남대로’를 찾고 연결하여, 많은 사람들이 길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며 걸을 수 있도록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