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 째 한강 천 삼백리 길에 나서며,
천 삼 백리 한강을 세 번도 모자라 네 번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득하고 멀기만 하다.
가슴 설레며 걸었던 그 여정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그 길을 걸었던 사람들도 한 사람, 한 사람 또렷하게 떠오른다.
기억은 이렇게도 마치 어제 일처럼 환한데,
그때 걸었던 그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고
나는 또 그곳으로 떠날 준비로 깊은 밤이 생생하기만 한 것인지,
“길은 어렵고 어렵도다. 갈래갈래 제 길 찾기 어렵구나.“
이백의 시 구절처럼 길은 항상 내 앞에 어렵게만 놓여 있었다.
나는 그 길을 걸어가며 헤매고 또 헤맸었지,
나와 같은 마음이어서 그랬던지 하우즈만의 시 구절이
가슴을 울리며 지나간다.
“하얀 달빛 속 기나긴 행로가 놓였네.”
내 앞에 어떤 길이 놓여 있을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한강 길을 혼자도 아니고 여럿이도 아닌
백여 명의 사람들이 걸어가리라는 것 그것만이 사실이다.
태백의 검용소에서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까지 이르는 여정
그 길을 가다가 걸어 가다가보면
엘리엇의 <재회의 가족>중 일부분이 현실처럼 나타나는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
“도망자의 세계에선
반대방향으로 가는 자들이 모두
도망치는 것 같이 보일게예요.“
태백에서 서해 바다를 향해 도망치는 우리들의 모습이 언뜻 보이고,
문득 ‘존 맨스필드’의 시 구절처럼 어느 순간 생이 서글퍼지는 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달은 지고 해는 기우는데
나의 삶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가?
물과 소금기가 술이 아닐진대.“
이미 주사위는 던져 졌고, 다시 숙명처럼 그 길을 걸어가야 하리.
가다가 만나는 모든 사람, 모든 사물들이
내게 어떤 말을 건네고 나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알 수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미지의 길을,
바이런의 시 구절처럼 걸어갈 수는 없을까?
“밤처럼 그녀는 아름다운 자태로 걸어요.”
계사년 삼월 열닷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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