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옥돌에 서 있는 눈사람, 연탄조각으로 가슴에 박은 글귀가 섬뜩합니다
"나는 걷고 싶다"
있으면서도 걷지 못하는 우리들의 다리를 깨닫게 하는 그 글귀가 단단하 눈뭉치가 되어 이마를 때립니다
둘
감옥은 나오는 맛에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셋
하늘 높이 바람찬 蓮을 띄워 놓으면 얼레가 쉴 수 없는 법
安居란 기실 꿈의 상실이기 쉬우며, 오히려 방황의 인고속에 상당한 분량의 꿈의 추구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담은 어느 천제의 소유가 아니고 우리 민족이 오랜 역사를 통해 공동으로 만들어 내고 공동으로 승낙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넷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고 있나니 - 이 상돈
어머니 그리워지는 나이가 되면 / 저도 이미 어머니가 되어 있다
우리들이 항상 무엇을 / 없음에 절실할 때에야
그 참모습 알게 되듯이
// 어머니가 혼자만 아시던 슬픔 / 그 무게며 빛깔이며 마음까지
이제 비로소 / 선연히 가슴에 차 오르는 것을
넘쳐서 흐르는 것을
// 가장 좋은 기쁨도 / 자기를 위해서는 쓰지 않으려는
따신 봄볕 한 오라기 / 자기 몸에는 걸치지 않으려는
어머니 그 옛적 마음을 / 저도 이미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고 있나니 / 저도 또한 속 깊이
그 어머니를 갖추고 있나니
다섯
열두 시의 나비 날개가 조용이 열려 수평이 되듯이
팬지꽃이 그 작은 꽃봉지를 열어 벌써 여넘은 개째의 꽃을 피원내고 있읍니다
한줌도 채 못되는 흙 속의 어디에 그처럼 빛나는 꽃의 糧食이 들어 있는지
흙 한 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내가 과연 꽃 한송이라도 피울 수 있는지
5월의 창가에서 나는 팬지꽃이 부끄럽습니다.
여섯
가까이 국화 한 송이 없어도 가을은 다만 높은 하늘 하나만으로도 일상의 비좁은 생각의 궤적을 일탈하여
창공 높은 곳에서 자신의 住所를 조감하게 되는 계절입니다.
사과 장수는 사과나무가 아니면서 사과를 팔고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 정직한 말을 파는 世路에서
撥波覓月(발파멱월), 강물을 헤쳐서 달을 찾고, 우산을 먼저 보고 비를 나중 보는 어리석음이 부끄러운 계절
남들의 세상에 세들어 살 듯 낮게 살아온 사람들 틈사구니 신발 한 컬레의 토지에 서서
가을이면 먼저 어리석은 지혜의 껍질들을 낙엽처럼 떨고 싶습니다.
君子如嚮(군자여향), 종소리처럼 묻는 말에나 대답하며 빈 몸으로 서고 싶습니다
일곱
세상의 슬픔에 자기의 슬픔 하나를 더 보태기보다는
자기의 슬픔을 타인들의 수 많은 비참함의 한 조각으로 생각하는 겸허함을 배우려 합니다
다시 만나지 말자며 묵은 사람이 떠나고 나면
자기의 인생에서 파낸 한 덩이 체험을 등에 지고 새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벌써 11월 중순 바람과 함께 창 옆에 서면 저만치 높은 전신주가 겨울을 부르고 있습니다.
여덟
손가락을 베이면 그 상처의 통증으로 하여 다친 손가락이 각성되고 보호된다는 그 아픔의 참뜻을 모르지 않으면서
성급한 충동보다는, 한번의 용맹보다는,결과로서 수용되는 지혜보다는,면면한 企圖가,매일매일의 약속이,
과정에 널린 우직한 아픔이 우리의 깉은 내면을,우리의 높은 정신을 이룩하는 것임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충동에 능하고, 우연에 乘하고, 아픔에 겨워하며, 매양 매듭 고운 손 수월한 안거에 연연한 채
미운 오리새끼로 자신을 한정해 오지나 않았는지....
아홉
있으면 없는 것 보다는 편리한 것도 사실이지만
완물상지(玩物喪志), 가지면 가진 것에 뜻을 앗기며,
물건은 방만 차지함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마음속에도 자리를 틀고 앉아 創意를 잠식하기도 합니다.
利器를 생산한다기 보다 '필요' 그 자체를 무한정 생산해내고 있는 현실 속에서는 오연(傲然)한 자신을 다스려 나가기도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읍니다.
그러나 그릇은 그 속이 빔(虛)으로써 쓰임(用)이 되고, 넉넉함은 빈 몸에 괴는 이치를 배워 스스로를 당당히 간수 하지 않는 한
척박한 땅에서 키우는 모든 뜻이 껍데기만 남을 뿐임을 확실합니다
열
한마리의 연약한 나비가 봄하늘에 날아 오르기까지 겪었을 그 긴 역사에 대한 깨달음이
겨우내 잠자던 나의 가슴을 아프게 파고 들었읍니다.
작은 알이었던 시절부터 한 점의 공간을 우주로 삼고 소중히 생명을 간직해 왔던 고독과 적막의 밤을 견디고...
징그러운 번데기의 옷을 입고도 한시도 자신의 성장을 멈추지 않았던 각고의 시절을 이기고..
이제 꽃잎처럼 나래를 열어 찬란히 솟아 오른 나비는,
그것이 비록 한 마리의 연약한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 할 지라도 적어도 내게는 우람한 승리의 화신으로 다가 옵니다.
담 넘어 날아든 무심한 나비 한 마리가 펼쳐 보인 봄의 뜻은
이 곳에는 꽃나무가 없어 봄조차 가난하다던 푸념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를 뉘우치게 합니다.
열하나 함께 살아 간다는 것
여러사람이 맨살 부대끼며 오래 살다 보면 어느덧 비슷한 말투와 비슷한 욕심, 비슷한 얼굴을 가지게 됩니다
서로 바라다 보면 거울 대하 듯 비슷비슷합니다
자기가 다른 사람과 비슷하다는 사실, 여럿 중의 평범한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기성품처럼 개성이 없고 값어치가 떨어 진 것을 받아 들입니다.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아무리 담장을 높이더라도 사람들은 결국 서로가 서로의 일부가 되어 함께 햇빛을 나누며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이해, 같은 운명으로 연대된 '한배 탄 마음'은 '나무도 보고 숲도 보는' 지혜이며,
한 포기 미나리아제비나 보잘것 없는 개똥벌레 한마리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열린 사랑'입니다.
한 그릇의 나무가 되라고 하면 나는 산봉우리의 낙락장송보다 수많은 나무들이 합창하느 숲속에 서고 싶습니다.
한알의 물방울이 되라고 한다면 저는 단연 바다를 선택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지막한 동네에서 비슷한 물투, 비슷한 욕심, 비슷한 얼굴의 가지고 싶습니다.
열둘
언어란 미리 정해진 약속이고 公器여서 제 마음대로 뜻을 담아 ㅁ쓸 수가 없지만
같은 그릇도 어떤 집에서는 밥그릇으로 쓰고 어떤집에서는 국긋릇으로 사용 되 듯이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성장과정의 경험 세계가 판이한 사람들이 서로 만날 때 맨 먼저 부딪치는 곤란의 하나가 이 언어의 차이이다.
이름도 없는 풀들이 모이고 모여 밭을 이루고
밟힌 잡초들이 서로 몸 비비며 살아가는 그 조용한 아우성을 듣지 못하는 생각입니다.
바람보다 먼저 눞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잎마다 발 밑에 한 줌씩의 따뜻한 땅의 체온을 쌇아 놓고 있읍니다
열셋
생전 처음 만나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우리는 결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곁 모양이나 몇개의 소문으로 그를 온당하게 평가 할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좀더 가까운 자리에서 함께 일하며 그리하여 깊이 있는 인식을 마련할 때 까지 기다리 못하는 까닭은
이쪽의 개인적인 조급 떄문이기도 하지만
크게는 인간관계가 기성의 물질적 관계를 닮아버린 세속의 한 단면이니지도 모릅니다
관계는 관점을 결정합니다.
사람은 그림처럼 벽에 걸어 놓고 바라 볼 수 있는 정적 평면이 아니라 관계를 통하여 비로소 발휘되는 가능성의 총체이기에 그렇습니다.
열넷
소매 걷어 붙이고 밀린 일을 쳐내듯, 여름 대낮 그 숨막히는 정적을 박살내며 강철 같은 소낙비가 창살 나란히 내려 꽃히면,
나는 어느 덧 빗줄기에 우쭐우쭐 춤추는 젖은 나뭇잎이 되어 어디 산맥을 타고 달려오는 우뢰 소리를 기다리며
그 세찬 하강을 글슬러 龍天하듯 솟아오르는 목터진 정신에 귀기울입니다.
장승처럼 선 자리에 발목 박고 세월보다 먼저 빛 바래어 가는 우리들에겐 수시로 우리의 얼굴을 두들겨 줄 여름 소나기의 질타가 필요합니다.
불볕더위와 물소나기가 그리도 팽팽히 싸워쌓더니 끝내 더위가 한풀 꺽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긴 것은 물이 아니라 세월이었다 해야 할 것입니다.
열 다섯
갑오농민전쟁은 그 참담한 패배에도 굴구하고 19세기 아시아 민족운동의 큰 봉우리로서, 그리고
이후 한국 근대사의 골간을 이루는 의병투쟁, 독립 전쟁의 선구로써 찬연히 빛나고 있다는 점에서
저는 '누가 프랑스 혁면을 실패로 끝났다고 하는가?'하는 앙드레 말로의 노기띤 반문을 상기하게 됩니다.
열 여섯
자기 짐이 많은 사람은 남의 일손을 도울 겨를이 없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은 도리어 적게 가진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언제난 그렇듯이 빈손이 일손입니다.
적게 가지고 살기 위해서는 아낌없이 버려야 하는데 작은 것 하나 버리는 데도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는 선택이며 선택을 골라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을 버리는 일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열 일곱
옛날의 귀부인들은 노예가 있는 옆에서 서슴없이 옷을 갈아 입었다 합니다.
옆에 아무도 없는 것(傍若無人)으로 치든가 고양이나 강아지가 있는 것쯤으로 생각했던가 봅니다.
그러나 당시의 노예들은 생각마져 묶여 있어서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사람의 많은 부분이 상황에 따라 굴절되어 표현됨과 동시에 반대로 상황이 사람의 많은 부분을 굴절시킨다는 사실을 수긍한다면
우리는 인간을 함께 타매(唾罵)하거나 용서할 수 밖에 없다는 겸손한 생각을 길러야 합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그 판단의 주체가 또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처지에 눈이 달리기 마련이고 자신의 그릇 만큼의 강물밖에 뜨지 못합니다
이러한 자신의 제한성과 특수성을 올바를게 깨닫지 못하는 한 자기의 생각과 견해를 넓혀 나가기는 몹시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열여덟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그가 몸소 겪은 자기 인생의 결론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사상을 책에다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속에서 이끌어내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아무리 조잡하고 단편적이라 할 지라도 그 사람의 사상은 그 삶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삷의 조건에 대해서는 무지하면서도 그 사람의 사상에 관여하려는 것은 무용하고 무리하고 무모한 것입니다.
더우기 그 사람의 삶의 조건은 그대로 둔 채 그 사람의 생각만을 다른 것으로 대치하려고 하는 여하한 시도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폭력입니다.
우리가 훌륭한 사상을 갖기가 어렵다고 하는 까닭은 그 사상 자체가 무슨 난해한 내용이나 복잡한 체계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상이란 그 것의 내용이 우리의 생활속에서 실현된 것 만큼의 사상만이 자기 것이며
그 나머지는 아무리 강론하고 공감하더라도 결코 자기 것이 아닙니다.
열아홉
잡초가 무슨 나쁜 역활을 하는 지도 모르면서 잔디만 남기고 잡초를 뽑는다
도시에서 자라 아는 풀이름 몇 개 안되는 나는 이름도 모르는 풀을 뽑는다.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잡초가 된 풀을 뽑는다
아무도 심어준 사람 없는 잡초를 뽑으며 벌써 씨앗까지 예비한 9월의 풀을 뽑으며 나는 생각한다.
아름다움이라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잘 알고 있던 것 같은 것들이 갑자기 뜻을 잃는다.
구령에 따른 동작처럼 생각없이 풀을 뽑는다. 썩어서 잔디의 거름이 될 풀을 뽑는다.
스물
새해가 겨울의 한 복판에 자리잡은 까닭은 낡은 것들이 겨울을 건너지 못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낡은 것으로 부터의 결별이 새로움의 한 조건이고 보면 칼날 같은 추위가 낡은 것들을 가차없이 잘라버리는
겨울의 한복판에 정월 초하루가 자리잡고 있는 까닭을 알겠습니다.
세모에 한 해 동안의 고통을 잊어 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나는 이 겨울 한복판에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잊으며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생각해 봅니다.
스물하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유지매미와 참매미는 수명이 6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생인 6년 가운데 5년 11개월을 고스란히 땅 속에서 애벌래로 살아야 합니다.
땅 속에서 나무 뿌리의 즙을 먹으며 네번 껍질을 벗은 뒤 정확히 6년째 되는 여름, 가장 날씨 좋은 날을 택하여 땅 위로 올라 옵니다
땅을 뚫고 올라오는 힘은 엄청나며 곤충학계에는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 왔다는 기록도 보고 되고 있을 정도라 합니다
따을 뚫고 나온 애벌레는 나뭇 등걸을 타고 올라가 거기서 다섯 번째이며 마지막인 껍질 벗음을 합니다.
이 순간 애벌래는 비로소 한 마리의 날개 달린 매미로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매미는 화려하지만 지극히 짧은 생애를 끝마치도록 운명지워져 있습니다.
불과 4주일 후에는 생명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긴인고의 세월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생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매미가 노래하는 것은 즐기기 위한 유희가 아니라 종족 보존을 위하여 암매미를 부르는 것이라 합니다.
그것도 집단으로 울어대야 암매미가 날아 올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이르테면 겨레의 번영을 갈구하는 아우성인 샘입니다.
매미가 요란한 합창으로 위험한 행위를 당당히 소리치는 매미들의 사랑과 용기야 말로
수많은 수목들과 날새들과 짐승들은 물론, 한포기 풀이나 벌레에 이르기까지 모두 살아 있는 생물들에 대한 힘찬 격려이면 생명에의 예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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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저녘에 등불을 켜는 것은 어려운 때 더욱 지혜로워와야 한다는 뜻이라 믿습니다
둘
9월 중순 캘린더에는 단풍의 계절이 흐드러져 있읍니다.
二月花보다 더 붉은 紅葉들이 높은 가을 하늘아래 타는 듯 합니다.
실생활의 중량이 배제된 '창고의 공허'속으로 계절은다만 寒暖으로 환원되어 찾아왔다 돌아갑니다.
셋
푸른 과실이 햇빛을 마시고 제 속의 쓰고 신물을 달고 향기로운 즙으로 만들듯이 저도 이 가을에는
하루하루의 아픈 경험들이 양지바른 생각의 지붕에 널어 소중한 겨울의 양식으로 갈무리하려 합니다.
넷
'들판의 아이와 도시의 아이 사이에는 산토끼와 집토끼, 강과 운하, 하늘과 창문의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도시가 문명의 중심임은 사실이지만 문명 가운데는 그 필요는 사라지고 전통만 남아 도리어 적응과 굴종을 요구하는
사람이 그것을 위해 복무하는 그런 문명도 없지 않습니다.
자연을 보러 가서 인공을 만나고 오는 사람 속에서 ㅇㅇ는 얼마만큼의 자연과 더불어 자라고 있눈지 궁금합니다
다섯
하얗게 언 비닐 창문이 희미하게 밝아오면, 방 안의 전등불과 바깥의 새볔빛이 서로 밝음을 다투는 짤막한 시간이 있습니다.
이때는 글럴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더 어두워지는 듯한 착각을 한동안 갖게 됩니다.
칠야의 어둠이 平旦의 새빛에 물러서는 이 짧은 시간에 저는 별이 태양앞에 빛을 잃고 간밤의 어지럽던 꿈이 찬 물 가득한 아침 세숫대야에 씻겨 나듯이
작은 고통들에 마음 아파하는 부끄러운 자신을 청산하고 더 큰 아픔에 눈뜨고자 생각에 잠겨봅니다
큰 추위 없이 겨울을 나자니 막상 돈을 다 치르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남습니다.
어제는 보름이었습니다.
창상 격하여 보는 달은 멀기도 하여 불질러 달을 맞던 마음도 식어서 달력 짚어볼 생각도 없었던가 봅니다.
여섯
나는 들판을 기웃거리다가 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을 놀라움으로 깨달았다.
사람에게 봄기운은 먼저 가져오는 것은 거루고 가꾸어준 꽃나무보다 밟고 배어냈던 잡초라는 것을
들풀은 모진 바람 속에서도 잔설을 이고 자랄뿐 아니라 그렇게 자라는 풀잎마다 아쉬운 사람들이 나물로 먹어온 것도'''
'금은 꽃이 아니더라도 좋아라' 이 일절은 스스로 잡초 섶에 몸을 둔 우리들로 하여금
봄이 늦다고 투정하는 대신 응달에 버티고 선 겨울의 응어리들 틈 사이에서 이미 와 있을지도 모를 봄싹을 꺠닫게 하는 높은 채찍입니다.
일곱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지정한 의미는 무엇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한 개의 나무 의자든, 높은 정신적 가치든 무엇을 공유한다는 것은 같은 창문앞에 서는 공감을 의미하며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운명의 연대를 뜻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여덟
맨드라미, 채송화, 창포, 팬지, 하국 등 그리 잘나지고 못한 꽃들이지만
뚱단지, 쇠비름, 클로버, 가라지들과 사이좋게 어울려 이루어내는 자연스러움은 뺴어난 꽃들이 주는 경탄과는 달리
규칙과 인공의 질서로 인해 각이 진 마음들을 포근히 적셔 줍니다
아홉
갑년이 지난 낡은 담벽 밖으로 여름내 무성한 잎사귀를 자랑하던 가로수들은
발밑에 낙엽을 떨구어 거름으로 챙기며 내년의 성장을 약속하고 있읍니다
열
이번 이사때 가장 두고 오기 아까웠던 것은 창문이었읍니다
부드러운 능선과 오뉴월 보리밭 언덕이 내다 보이는 창은 우리들의 메마른 시선을 적셔 주는 맑은 샘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창문보다는 문이 더 낫습니다.
창문이 고요한 관조의 세계라면 문은 힘찬 실천의 현장으로 열리는 것입니다.
그 앞에 조용히 서서 먼 곳에 착목着目하여 스스로의 생각을 여미는 창문이 귀중한 명상의 양지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것은 결연히 문을 열고 온몸이 나아가는 진보 그 자체와는 구별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열하나
필채가 있는 사람의 글씨는 대체로 그 재능에 의존하가 때문에
일견 뺴어나긴 하되 재능이 도리어 함정이 되어 손끝의 巧를 벗어나지 어려운데 비하여
필채가 없는 사람의 글씨는 손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쓰기 때문에
그 속에 혼신의 힘과 정성이 배어 있어서 다련의 미가 쟁쟁이 빛나게 됩니다
열둘
한 송이의 작은 봄꽃을 위하여 냉혹한 겨울의 중량을 忍冬아는 풀싹이나
단 한사람의 신뢰를 위하여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는 우정의 이야기는 우리들로 하여금
개인으로서의 자기를 뛰어넘게하는 귀중한 깨달음을 갖게 합니다
열 셋
사람은 나무와 달라서 나이를 더한다고 해서 그저 굵어지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젊음이 선선함을 항상 보증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老가 원숙이, 少가 청신함이 되고 안되고는 그 年月을 안받침하고 있는 체험과 사색의 갈무리 여하에 달려 있다고 믿습니다.
해마다 거리낌없이 가지를 뻗는 나무는 긴 가지 넓은 잎사귀를 키워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뻗다가 잘리고 뻗다가 잘리는 나무는 가지도 안으로 뻗고 가시도 안으로 세우는 '서슬프른 속이파리' 새하얀 꽃의 탱자나무 울타리가 됩니다
탱자나무는 금빛 열매도 품속에 감추어 가시에 찔린 소년을 울게 합니다.
열넷
벽의 기능은 우선 그 속에 것을 한정하는 데 있습니다. ( )
망거져 버린 상태의 감정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 것이 관계되어야 할 대립물로서의 이성과의 연동성이 파괴되고 오로지 감정이라는 외바퀴로 굴러가는 지극히 불안한 奔車와 같기 때문입니다.
일견 이성에 의하여 감정이 극복되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경우도 실은 이성으로써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높이에 상응하는 높은 단계의 감정에 의하여 낮은 단계의 감정이 극복되고 있을 따름이라 생각됩니다.
바다가 하늘을 비추어 그 푸름을 얻고, 細流를 마다 하지 않아 그 넓음을 이룩한 이치가 이와 다름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열 다섯
이러한 것에 비하여 매우 순수한 것으로 알려진 '同情'이라는 동기가 있읍니다.
이것은 惻隱之心의 발로로써 고래의 미덕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동정이라는 것은 객관적으로는 문제의 핵심을 흐리게하는 인정주의의 한계를 가지며,
주관적으로는 상대방의 문제 해결보다는 자기의 양심의 가책을 慰撫하려는 逃避主義의 한계를 갖는 것입니다.
돕는 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
열여섯
기껏 잡은 것이 민중의 그림자에 불과하거나 그때 그곳의 우연에다 보편적인 의미를 업히고 있는 등
감상과 연민이 만들어낸 민중이란 이름의 허상이 우리들을 한없이 피곤하고 목마르게 합니다
그 것은 왜 불행한가?라는 불행의 원인에 대한 질문에로는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게 하는 눈물의 예술로 그 격이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것은 위안을 줌으로써 삶을 상실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십수년의 징역살이 그 일인칭의 상황을 살아오면서 민중이란 결코 어디엔가 기성의 형태롤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로이 창조되는 것이라 생각해 오고 있습니다
민중은 당대의 가장 기본적인 모순을 계기로 하여 창조되는 응집되고 증폭된 사회의 역량입니다.
이런한 역량은 단일한 계기에 의하여 단번에 나타나는 가벼운 걸음걸이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장구한 역사 속에 점철된 수많은 성공과 실패, 그 환희와 비탄의 기억들이 민족사의 기저에 잠재력으로 묻혀있다가
역사의 격변기에 그 당당한 모습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시냇물을 따라가도 우리가 바다로 나아갈 수 있듯이
아무리 작고 외로운 골목의 삶이라 할 지라도 그 곳에는 민중의 뿌리가 뻗어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민중 특유의 민중성입니다
새벽의 여름산에서 들려오는 산새소리, 때묻지 않은 자연의 육성은 갖가지 인조음에 시달려온 우리의 심신을 5월의 신록처럼 싱싱하게 되살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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