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라는 것이 그렇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고 직립보행을 하면서부터 사람들이 걷기 시작했고, 그리고 사람이 걸어간 곳이 길이 되었다.
산길, 강길, 바닷가길, 그리고 사람들이 나물을 캐고 고기를 잡고, 나무를 하고, 장사를 가던 길, 그리고 과거길, 그 길들이 어느 지역이나 있었다.
그 길을 샅샅이 걷지 않고는 그 길을 알 수가 없다. 어느 지역을 조금 걷고 전체를 안다는 사람은 봉사가 코끼리 발뒤꿈치를 조금 만진 격이나 같다.
그 길을 찾아내는 것, 그래서 끊어진 길을 잇고 걷는 것,
그러기 위해선 역사가 된 사람들이 걸어간 그 길을 천천히 걷고 연구하여 그 길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한다.
역사의 자취가 켜켜이 서린 그 길, 강 길이나 옛길을 걸아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길은 만들거나 걸어야 하기 이전에, 오래 된 우리의 삶터이자, 생활이다. 역사의 길, 그 길이 곧 이 나라의 역사와 문화로서 그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국토의 재인식과 국토에 대한 사랑과 애착을 느끼게 하는 귀중한 공간이다.
그 길에는 수많은 역사와 문화가 켜켜이 쌓여 있고, 그 길을 거쳐 간 수많은 인물들의 흔적이 올올이 남아 있다.
앞서간 사람들이 경탄하고 경외감을 온 몸으로 표현했던 길을, 그리고 슬픔과 고통이 남겨놓은 그 흔적들을 음미하며 걸어간다는 것,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일일까?
2
“진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있다.그러나 그대들은 이름과 형태로 받아들이고 있다.그렇게 해서 어떻게 참모습을 찾을 수 있겠는가?“<금릉청량원문익선사어록金陵淸凉院文益禪師語錄>에 실린 글이다.
자연自然이 그렇다, 스스로 자自에 스스로 그러할 연然
그러므로 대 자연 앞에서는 몸도 마음도 다 청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있는 그대로 더 이상의 꾸밈이 없는 참다운 사랑(가족이나 이성 또는 동성)도 우정도 그러할 것이다.
더 이상 바랄 것도 없고, 요구하지도 않는, 그것을 잘 알면서도 실천이 쉽지 않다.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리라 생각하지만 가끔은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다.
하지만 그것 역시 아직도 삶이 진행형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언제쯤 마음 안에 있는 그 무거운 돌덩이 다 내려놓고 건성건성 떠돌아다니며 살면서 세상을 관조할 수 있을 것인가?
4
이 세상에 남겨 놓을 것도 없고 모든 것이 공空인데,
그 무슨 미완성이고 완성이 있겠는가.
다만 그 순간 유감없이, 자신의 자존自存을 지키고 사는 것,
그것이 이 세상에 살다가는 크나큰 이유가 아니겠는가.
8
“나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사회에서 내가 차지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의 판단이다.
판단은 내가 가지고 다닐 수 있다.
판단만이 나의 것이며, 누구도 나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다.”
에픽테토스 <어록>에 실린 글이다.
그래, 내가 나를 판단한다. 누가 나를 판단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가 누구를 비판할 수 있는가?
결국 자기가 자기를 판단하고, 결정해 나가는 것,
그것이 삶이다.
11
사람과 사람과의 인연에 대해 생각한다.
한 점 스스럼없이 살다가 이런 저런 일로 믿음과 우정이 생겨서
그 사람만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금세라도 달려가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그 인연이 죽음이 서로 갈라놓을 때까지 이어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일로 미움과 분노가 생겨서 갈라진 뒤
급기야는 서로에게 큰 상처를 주고 도저히 치유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과의 인연을 두고 ‘시절 인연’이라고 했던가?
“지혜는 후세에, 남에게 물려줄 수 없다. 현자가 전하려고 애쓰는 지식은 언제나 바보같이 들리는 법이다.
사람은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지혜를 살 수 있다. 지혜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있다.
지혜를 가지고 기적을 행할 수 있다. 그러나 지혜를 가르칠 수 없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믿고 경외하는 현자들에게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
13
“현자賢者에게는 일곱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자신보다 어진 사람 앞에서는 듣는다.
둘째 남이 이야기 할 때는 방해하지 않는다.
셋째, 대답하기 전에 먼저 생각한다.
넷째, 화제와 관계있는 질문을 하고, 도리에 맞게 대답한다.
다섯 째 , 처음에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고 행동한다.
여섯 째,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정직하게 말한다.
일곱째, 진실을 항상 존중한다.“
15
길과 삶도 하나로 맞물려 있다. 길은 인간이 만든 것도 자연이 만든 것도 아니다 길은 인간과 자연의 대화이다.
대화에는 결론이 없다. 끊어짐과 이어짐이 있을 뿐이다. 삶과 마찬가지로 길은 끊어졌다고 믿는 순간 다시 이어진다.
길은 삶의 완벽한 비유이다.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곧 삶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된다
길이 끝나는 곳에 또 다른 길이 이어져 있고, 그 길을 가다가 만나고 헤어지는 사물들과 사람들,
그게 바로 이생에서의 인연이리라.
길에서 길로 이어진 길, 그 길이 나에게 어떤 풍경들과 어떤 사물들을 만나게 하고
어떤 감흥으로 나를 사로잡기도 하고, 나를 시험에 들게 할지 나도 모르고 그대도 모른다.
다만 걸어가고 걸어가다가 머무는 곳, 그곳이 나의 마지막 지점이 될 것이라는 것만 알 뿐이다.
길은 어둠 저편에 저렇게 펼쳐져 있는데,
인생을 살아가는 그 자체가 하나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부터 길은 나에게 하나의 숙명처럼 다가와 떠나지 않았다.
벗어날 수도, 그렇다고, 머물러 있을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길, 그 길을 걸으며 길이란 무엇인가? 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생각을 품었던가?
그러나 항상 ‘길’이란 ‘이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리지를 못했다. 아니 결론을 내릴 수가 없는 채 그저 길 위에 머물러 있었다.
이 세상에 사는 그 누구도 다 나와 같은 생각이리라.
19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만나고 사는 사람들 중 몇몇은 오히려 만나고 싶지 않고 만났으면 금세 헤어졌으면 싶은 사람도 있다.
지식의 얕고, 깊은 것이나, 정이 가고 안가고가 아니며, 가진 것이 있고 없고, 같은 것은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얕은 것과는 더불어 깊은 것을 헤아릴 수 없고, 어리석은 자와는 더불어 지혜를 꾀할 수 없으며,
우물 안 개구리와는 동해東海의 즐거움을 말할 수 없다.
23
삶이 덧없지 않다면 어떻게 소중하겠는가? 덧없는 삶의 확인이야말로 삶에 대한 사랑의 단서가 되는 것이다.”
이성복 시인의 글이다. 삶이 덧없기 때문에 일어서서 다시 삶을 추구하는 것,
여름 걷기학교에서 더 욕심을 내려 놓았으면 좋겠다.
26
이름이 나는 것도 명예도 아침 이슬 같고, 흐르는 구름 같은데, 그 하루살이 같은 명에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이름이 나기를 갈망한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이름이 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쭐해지고 그 이름에 걸맞는 명예를 추구한다.
스스로가 잘하는 것만 해도 충분한데, 이 것 저것 다 기웃거리다가 동티가 난다.
명예란 특히 오묘하고 요사스러운 것이라서 한 번 거기에 맞을 들이다가 보면 도저히 그것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그러다가 보면 자기의 간이고 쓸개고 다 내놓게 되고 결국 패가망신의 지름길이 명예에 대한 욕심이다.
27
조각가 자코메티의 글이다.
그는 철사 줄만큼 가느다랗고 앙상한 사람들의 조각을 많이 만들었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물었다.
“당신은 왜 미켈란젤로나 로댕과 같이 위대한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표현하지 않고 왜 궁핍한 인간만 표현하는가?” 라고 묻자 대답했던 말이다.
두발을 대지에 디디고 서서 한 발 한 발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가, 거기다가 보너스로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자연의 아름다움이 가슴속에 물결처럼 밀려오는 그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연自然인 내가 자연 속에서 자연이 되는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는 수평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수직을 더 좋아한다.
화림동 계곡과 용추 계곡길을 걸으며 새삼스레 수직의 기쁨을 느껴봐야겠다
28
바람과 구름을 친구로 삼고 산 세월이 오래 되었건만,
아직도 바람이나 구름이 내가 기다릴 때 오지 않는 것은
그만큼 내가 바람과 구름에게 속을 터놓지 않아서 그러는지도 모른다.
기다리지 말고, 문을 열고 나가면 되는데, 책 몇 페이지 더 들여다본다고.
밀린 글을 써야 한다고 의자에 앉아 속절없이 시간만 죽이는 나여,
언제쯤 이런 저런 일들을 훌훌 털고 바람 부는 강변을 휘적휘적 걸을 수 있을까?
35
눈이 갠 뒤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는 푸른 빛깔이 이리저리 엇갈려 원근이 고루 나타나고, 소나기가 강위를 달리면서 수묵水墨을 가득히 뿌리면 바림 할 틈이 없게 된다. 잠자리의 눈은 푸르고 훨훨 나는 나비의 날개는 금빛으로 물들었다.
노을이 내려앉는 저녁 무렵 강물이 잔잔하게 흐르는 강을 걸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하늘에 흐르는 붉은 구름보다 강에 몸을 담근 구름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그림을 그리면서 시의 뜻을 모르면 색칠의 조화를 잃게 되고, 시를 그리면서 그림의 뜻을 모르면 시의 맥락이 막히게 된다.
37
서지마徐志摩(1897~1931)시인의 <다시 캠브리지를 떠나며. 再別康橋>라는 시의
강가 저 황금빛 버드나무는 / 석양 속의 신부, / 물결치는 빛 속 아름다운 그림자는 / 내 마음 속에서 출렁인다 //
저 느릅나무 그늘 아래의 연못은 / 맑은 샘이 아니라 하늘의 무지개로
떠 있는 말 사이에서 망가뜨려지고 / 무지개 같은 꿈을 침전시키고 있다.
41
살다가 보면 어느 순간의 생각이 하나의 목표가 되고 꿈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항상 꿈을 꾸게나, 꿈은 공짜라네.”라고 말한 쟝 그르니에의 산문집의 한 구절처럼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꿈이 어느 순간 미흡하게나마 이루어 질 때, 그런 때가 있습니다
// 비바람 눈보라에 시달리고 나부낀 연후에야 꽃도 피고 나무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지 않겠는가?
그래서 IQ가 중시되던 시대, EQ가 중시되던 시대가 지나고 역경지수逆境指數, 즉 역경을 헤치고 나가는 능력인 GQ가 중시되는 시대가 도래 하지 않았는가
// 칠흑 같은 소나기가 내릴 때, 짙은 안개로 더 이상 세상의 어느 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맑게 갠 하늘과, 대지가 나타나듯,
세상은 더딘 듯 싶지만 나름대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겠지요.
43
“세상 밖의 쓸데없는 사람이 되니, 항상 편안하기 그칠 바 없다.
지붕의 기와는 못 입혔어도 참으로 신선 사는 데 같구나. 성기고 게을러서 친구는 없지만 구름과 샘물이 벗 삼아주네.
오늘도 샘물은 넘쳐흐르니 남은 즐거움을 어디다 쓰랴.“ 이렇게 살아도 한 평생이고, 저렇게 살아도 한 평생이다. 마음이라도 신선이 된 듯 살아야겠다.
“몸이 높아 반 하늘에 있으니, 평보로 구름과 안개를 밟네.
신선을 구해 배울 필요도 없이 마음은 한가로워 하루가 한 해를 당할 것 같네.“ 화담 서경덕의 말이다.
47
그렇듯 하회마을 안에 있을 때는 하회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에머슨도 그와 비슷한 말을 남겼다. “운동장 안에서는 운동장을 볼 수 없다.”
그와 같은 경우가 하회뿐만이 아니고 도처에 있다.
나 역시 내 마음 속에 너무 침잠해 있기 때문에 내가 나를 잘 알지 못하고
그대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기도 하고 가까이서 바라보기도 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잘 안다고 여기기 때문에 정작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르는 것처럼 스스로를 너무 모르는 것은 아닐까?
48
시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금세 뒤돌아보면 흐르는 강물처럼 스쳐지나가는 시간 속에 나 역시 빠르게 흐르는 강물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청량산 자락을 무리지어 걸었던 옛사람들은 자취도 없고 아침에 새로 만난 사람들과 걷는 낙동강 길,
“해마다 피는 꽃은 한결같건만, 해마다 사람은 같지 않도다.” 라고 말한 유희이의 말이 새삼 실감이 난다,
강 가운데를 왁자지껄 떠들며 지나가는 래프팅을 타는 사람들 저들이 지나간 자리를 밀어내듯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갈 것이다.
가고 또 가는 시간 속에 잠시 머물다 가는 삷이란 무엇인가?
61
마치 프란츠 카프카가 말하듯이 길에서 절망하고 다시 희망을 찾는 그런 나그네 같은 삶이 나의 삶이고,
나와 같은 삶들이 예나 지금이나 도처에 존재했다.
// “맞네. 나는 다만 한 사람의 나그네. 이 지상의 한낱 순례자일 뿐이라네. 자네들이라고 해서 그 이상의 존재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괴테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시인의 글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 “길지 않으리, 술과 꽃의 나날, 덧없는 꿈으로부터 우리의 갈길 잠시 나타나 다시 사라지리라, 꿈길 속으로“
인생의 길이란 급히 가건, 느리게 가건, 단지 허다한 길이 있고, 재물은 악한 방법으로 모으건, 좋은 방법으로 모으건
죽음에 이르러서는 결국 한 바탕의 빈 것이 되고 만다.“
64
나는 잘 먹고 잘 자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의 호사를 즐기기 위해 많은 곳들을 돌아다니길 권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도 편협하긴 마찬가지다. 어쩌다가 보니 제 할 일도 다 못하고 이 곳 저곳을 떠도는 나그네의 신세가 되었다.
“산을 넘으니 다시 산을 만나고(山外更見山) 물을 건너니 또 물을 만나느니(水外又達水)라는 수운의 시 구절처럼
가고 또 가는 인생길이 언제 끝날지 요원하기만 하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삶인가?
“삶이란 봄날의 꿈과 같아 흔적 없이 사라지는구나.“
소동파의 시 한 소절이 가슴 속에 큰 파문을 내며 지나간다.
66
“바람은 외로운 땅에서 태어나 / 어두운 길을 지나간다. / 바람은 고독한 마음에서 태어나 / 고독한 모습으로 간다.
바람은 풀 열매 하나를 잉태하게 하고 / 많은 꽃들을 찾아간다.
바람은 고요한 발걸음으로 지나가면서 / 화려한 춤을 춘다.
바람은 안 보이는 꽃 한 송이에도 입을 맞추고 / 흔들리는 넝쿨 한 줄기와도 악수한다,
바람은 노래하며 말을 건넨다. / 스스로의 노래와 세계를 가락에 맞춘다.
바람은 울려 퍼지며 새벽으로 / 아침으로 한낮으로 나아간다.“
일본 시인인 카와지 류우코오의 <봄의 송가> 전문이다.
가끔씩 누군가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 가슴 깊숙한 곳까지 다가와 그 사람의 소식을 전해주는 바람,
그 바람을 따라 나도 먼 길 떠나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살고 싶다.
70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생성하는 순간부터 소멸을 향해 줄달음친다. 단지 그 시간이 약간 길고 짧을 따름이다.
에밀리 디킨슨도 <잔디밭의 기다란 그림자는>이라는 시에서 오고 가는 것을 간단명료하게 표현하고 있다.
“잔디밭의 기다란 그림자는 / 석양이 지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예감
깜짝 놀란 풀에게 / 이제 곧 어둠이 지나가리라는 통보“
어둠이 내린 뒤, 밤이 지나면 다시 새벽이 열리고 여명이 오는 우주의 이치 속에서 “모든 것은 지나간다.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는 진리가 가끔씩 허망함을 주기도 하고 겸손함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인생은 변하는 환영일 뿐 / 짧은 순간 무대 위에 있다 사라지는 / 이를 갈며 두 팔을 벌린, 가엾은 희극배우
들려오는 소리는. 바로 목청 드높여 분노에 찬 / 웬 바보가 이야기하는 동화다. / 아무 뜻도 없는....“
셰익스피어의 <맥베드>에서처럼 그러므로 순간을 잘 사는 것,
그것만이 우리의 이 지상에서의 절대적인 임무가 아닐까?
73
“알아들을 수 없고 소리도 없는 세월의 발자국” 이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그 세월의 발자국 속에 잠시 왔다가 금세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다.
// 그 인생의 무상함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사람이 월터 페이터이다.
“사람, 인류라는 것, 나뭇잎과 같은 것, / 가을의 소슬한 바람, / 대지를 낙엽으로 수놓으면
봄은 다시금 새로운 선물로 /
숲을 장식하도다.“
74
그냥 일상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어둠이 내렸다.
입대하기 전날 밤 둘째 아들 하늬와 함께 어둠 내린 전주천을 한벽루까지 한 시간 반 남짓 걸었다.
강이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만큼 내가 하늬에게 들려줄 말은 많았지만, 그냥 나는 앞만 보고 발길을 옮겼고, 하늬는 그런 나를 침묵한 채 따라오기만 했다.
강물이 요란스레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비를 몰아오는 눅눅한 바람이 무성한 억새풀을 흔들기도 했던, ‘여름밤 슬픔 속의 강길 걷기’가 어느 날 내게 다가와 문득 말을 건넬지도 모르고, 하늬 역시 이 밤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그 사이로 수많은 세월이 흐르는 물처럼 흐르고 흘러갈 것이다.
‘갈테면 가라지‘ 하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시간 속으로 유유히 흘러가던 강물
저마다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는 다르지만 그 본질은 다르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나이가 주는 정해진 무게일지도 모르고, 감내해야 할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더 짊어져야 할 짐이 무겁지 않기 때문에 내 마음속이 가벼워지지 않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너무 무거워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중압감에 몸서리칠 때에야 모든 것 비우고 나는 마음 가볍게 그 먼 길을 향해 가벼운 발길을 옮길 것이다.
// ‘친구의 발자국 소린 다정한 말보다 더 다정한 것,‘이라는 시구절로 멀리서나마 안부를 전한다.
75
“서로 사랑하라. 허나 사랑에 속박되지는 말라. / 차라리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엔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우되 어느 한 편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 서로 저희의 빵을 주되, 어느 한 편 빵만을 먹지는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그대들 각자는 고독하게 하라.
비록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외로운 기타 줄들처럼, / 서로 가슴을 주라. 허나 간직하지는 말라,
오직 삶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 함께 서 있으라. 어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 있는 것을 / 참나무, 사이프러스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서 ‘결혼에 대하여’ 라는 글 중 일부분이다.
76
칼 같은 산들이 얼키고 설킨 산과 산 사이를 / 양의 창자처럼 휘돌아가고 휘돌아가던 강물,
그 강물이 / 시간의 흐름 속에서 흐르고 흐르듯 우리들의 삶도
흐르고 흐른다는 것을 / 나는 흐르는 동강을 바라보며 느끼고 또 느낀 여정이었다.
78
인간이 어찌 우주의 이치를 거역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마음이 순간순간 변화하는 것처럼 기상 이변이나, 기후 변동이나 다 돌고 도는 우주의 순환이치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봄날의 산은 아지랑이와 구름이 연이은 비단과 같으니, 사람들이 기뻐하고, 여름날의 산은 아름다운 나무 아래에 그늘이 있으니 사람들의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가을날의 산은 맑고 깨끗하고 낙엽이지니 사람들이 쓸쓸해하고, 겨울 산은 어수선하고 사방이 막혀 있으니 사람들 역시 적막함에 빠진다.“
북송시대 곽희郭熙의 ‘산수훈山水訓’은 그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임천고치(林泉高致)』중「산수훈(山水訓)」
81
천지인 곧 삼재가 조화를 이루어 하나가 된 것을 ‘인仁’ 이라고 한다. / 풀어 말하면 인仁자는 태양을 표시하여 하늘을 나타내는 한 점과
수평선으로 땅을 표시하는 한 금과 사람의 모습을 그린 / 사람 인人자가 합쳐서 어질 인자가 된 것이다.
인은 곧 공자 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83
“세상에서 가장 길면서도 가장 짧은 것, 가장 빠르면서도 가장 느린 것, 가장 작게 나눌 수 있으면서도 가장 길게 늘일 수 있는 것,
가장 하찮은 것 같으면서도 가장 회한을 많이 남기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사소한 것은 모두 집어 삼키고, 위대한 것에게는 생명과 영혼을 불어넣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시간입니다.”
84
아무리 많은 물을 흘러 보내도, 그것을 받아들여 저장할 데가 없으면,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나 같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많은, 시간이 주어져도 멈출 데가 아무데도 없으면, 무너져 구멍이 뚫린 마음을 그냥 지나가는 것처럼,
그것은 소용이 없는 것이나 똑 같이 보일 정도이다.
87
어느 순간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고
그때부터의 삶은 그 이전의 삶이 아니다.
그러나 삶은 녹록치 않은 것,
불시에 불행과 행복이 교차되기도 하며 혼란의 시절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런 시간, 그늘진 시간을 겪은 뒤에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살아갈수록 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어 존재하므로
그것들을 하나하나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어둠이 깊어야 새벽이 오듯이
미움과 증오, 사랑과 용서 그런 모든 것들이 저절로 융해되고 섞이는 순간,
그때서야 비로소 영혼이 자유스러워지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이 다 지나가고 떠나는 그 시간,
90
식물들이나 꽃들과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이 <푸른 꽃>의 작가 노발리스였다.
“식물은 토양의 가장 직접적인 언어야. 모든 새로운 잎사귀 하나, 모든 진귀한 꽃 한 송이는 땅에서 솟아오르는 그 어떤 비밀이라고 할 수 있어. 그 비밀은 너무나 많은 사랑과 기쁨에 돌아다니거나 말을 하지도 못하고 있다가 조용하고 말없는 식물이 되는 거야.
외롭게 서 있는 그와 같은 한 송이 꽃을 보면, 그 주변의 모든 것들이 어딘가 그 모습이 바뀌어 있고, 날개달린 조그만 소리들도 즐겨 그 곁에 머물러 있으려는 것 같지 않니?
그런 걸 보면 너무 기뻐서 울고 싶단다. 세상에서 멀리 떠나 손과 발을 땅에다 박고 뿌리를 내린 채 그 행복한 곳에서 떠나고 싶지 않은 거지.
사랑의 이 신비스러운 푸른 양탄자는 매년 봄마다 새로 깔리지, 그리고 거기에 적힌 글씨는 동방의 꽃다발처럼 그 양탄자를 사랑하는 사람만 읽을 수 있어. ”
93
“매번 봄이 오면 / 슬픔은 여전한데
누가 한가한 감정을 버린 지가 오래라고 말하는가?
하루하루 꽃 앞에서 술을 마시며,
가을 속의 붉은 얼굴이 야위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네.
// 무성히 자란 강가의 푸른 풀과 둑 위의 버들에게
새로운 근심들이 / 왜 해마다 생기는지를 묻는다네.
홀로 작은 다리에 서 있자니 바람이 소매에 가득하고
사람들이 돌아간 후에 우거진 숲에는 다시 밝은 달이 뜨네.“
송나라 때의 시인 구양수의 <슬픔은 여전한데>라는 시의 전문이다.
이만큼 살았으니 이제는 그 슬픔이 안개가 걷히듯 / 사라질 때도 되었는데
가끔씩 되살아나는 슬픔은 흐르는 밤처럼, 강물처럼 / 마음 깊은 곳을 흐르고 또 흐르니
95
사람이 오고 가는 것도 그렇지만 / 자연도 그렇다고 할 때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 변하고 변하는 세상의 이치 속에서
조금씩이나마 마음을 내려 놓고 서로가 공존하며
살아가는 것, / 그것뿐이 아닐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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