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가장 이상적인 교육은 놀이와 학습과 노동이 하나로 통일된 생활의 어떤 멋진 덩어리 - 일감을 안겨주는 것이라 합니다
논어 雍也篇에 知之者 不如好之者오 好之者 不如樂之者라는 귀절이 있습니다.
안다는 것이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그것을 즐기는 것만 못하다하여
知란 진리의 존재를 파악한 상태이고,
好가 진리의 존재는 파악하였으되 그 진리를 아직 자기의 것으로 삼지 못한 상태롤 보는데에 비하야
樂은 그것을 완전히 ㅣ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서 생활화하고 있는 경지로 풀이되기도 합니다.
둘
징역살이에서 느끼는 불행중의 하나가 바로 이 한 발 걸음이라는 외로운 보행입니다
실천과 인식의 두개의 다리 중에서 실천의 다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실천 활동을 통하여 외계의 사물과 접촉함으로써 인식을 가지게 되며
이를 다시 실천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그 진리성이 검증되는 것입니다.
실천은 인식의 원천인 동시에 그 진리성의 규준이라 합니다.
셋
1등이 치러야 하는 긴장감, 모범이 요구하는 타울성에 비해 중간은 풍요하고 꼴찌는 편안하며
쪼다는 즐겁다는 역설도 그것을 단순한 자기 합리화나 패배주의와 변이라 단정해 버릴 수 없는 상당한 령의 진실을 그 속에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넷
나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겨울에0 자란 부분일 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훨씬 단단하다는 사실입니다.
햇빛 한줌 챙겨 줄 단 한개의 잎새도 없이 凍土에 발목 박고 풍설에 팔 벌리고 서서도 나무는 팔뚝을 가슴을 그리고 내념의 봄을 키우고 있습니다
부산스럽게 뛰어다니는 사람들에 비해 겨울을 지혜롭게 보내고 있읍니다
다섯
왜냐하면 작은 실패가 있는 쪽이 없는 쪽보다 길게 보아 나은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작은 실패가 있음으로 해서 전체의 국면은 완결이 아니라 미완에 머물고,
이 미완은 더 높은 관계를 향한 새로운 출발이 되어 줍니다.
더구나 작은 실패는 사람을 겸손하게 하고 자신과 사물을 돌이켜 보게 해 줍니다.
"괘사"에도 완결을 의미하는 '旣濟'는 형통함이 적고 처음은 길하지만 마침내 어지러워진다고 하여 그것을 미제의 하위에 놓았씁니다.
실페와 그 실패의 발견, 그것은 산에 나무가 있고 땅 속에 바위가 있듯이 우리의 삶에 튼튼한 뼈대를 주는 것이라 믿습니다.
여섯
전주에는 갑오년의 격전지였던 완산 칠봉이 있고, 민족신앙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모악산이 있다.
모악산은 해발 794미터의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팔을 벌린 듯 동서로 뻗은 긴 능선은 완주군과 김제군을 갈라 놓았다.
모악산은 어머니의 가슴에 머리박고 젖먹는 형상의 엄바위가 있어 이 산을 엄뫼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엄바위에서 흘러내린 물이 젖줄이 되어 김제,만경 넓은 벌을 적셔 준다고 합니다. 이름 그대로 모악이며 엄뫼입니다
이 산을 미륵 신앙의 종조인 진표 율사가 입산하고 입적한 곳이기도 합니다.
동학농민 전쟁의 패배로 무참하게 좌절된 농민들의 황폐한 정신에 후천개벽의 사상을 심어 준 증산교당의 본산이기도 합니다
산의 크기에 비해 넘치는 역사성을 안고 있습니다
금산사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암자, 가마솥 위에 세운 미륵상, 20여의 증산교당, 모든 것들이 한결같이 산 넘어 김제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물론 그쪽이 山南의 向陽處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김제 평야 소산의 농산물 잉여에 그 물질적 토대를 두고 있기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미륵의 現身은 물론이고 천기와 비기, 정토와 용화와 개벽의 사상은
넓은 대지에 허리 구구리고 힘겹게 살아가는 농민들의 예지의 창조물이면서 동시에 그들 위에 군림해 온 상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일곱
꾀꼬리 소리는 너무 고와서 귀 간지럽고, 뻐꾸기 소리는 구성져 산을 깊게 만들지만
한물 간 푸념인데 오직 머슴새 소리만은 다른 새소리 듣 듯 한가롭게 앉아서 맞을 수 없게 합니다.
여덟
저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려 하기에 앞서 붓을 잡는 자세를 성실히 함으로써 먼저 뜻과 품성을 닦는, 오히려 먼길을 걸으려 합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품성과 뜻이 비로소 훌륭한 글씨와 그림을 가능하가ㅔ 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人道는 藝道의 長葉을 뻗는 深根인 것을, 예도는 인도의 大河로 향하는 시내인 것을,
그리하여 최고의 예술 작품은 결국 훌륭한 역사, 훌륭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209
괸 물, 정돈된 물, 그러한 썩기 쉬운 물
명경같이 맑은 물, 얼굴이 보이는 물, 그러나 작은 돌에도 깨어지는 물입니다.
214
꽃과 나비는 부모가 돌보지 않아도 저렇게 아름답게 자라지 않느냐
어린 아들에게 이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의 자애로 듬뿍 적신 저는 꽃보다 나비보다 더 아름답게 살아가야 하리라 생각됩니다.
217
늘 반복되는 생활속에서 그나마 변함없이 변하는 것은 계절뿐이라지만 그것은 실상 춘하추동의 반복이거나
기껏 '변화없는 변화'애 불과 하다는 생각에 이르면 우리는 다시 닫힌 듯한 마음이 듭니다.
220
교회종이 새벽의 정적을 휘저어 놓는 틈입자라면 꼭 스물아홉 맥박마다 한 번씩 울리는 범종은 .'僧鼓月下門' 의 '鼓'처럼 오히려 적막을 심화하는 것입니다.
빌딩의 숲속 철제의 높은 종탑에서 뿌리듯이 흔드는 교회 종소리가 마치 반갑지 않는 사람의 노크 같음에 비하여
이슬이 맺힌 산사 어디쯤에서 땅에 닿을 듯 地심에 전하듯 울리는 범종소리는 산이 부르는 목소리라 하겠습니다.
교회 종소리의 여운 속에는 플래시를 들고 손목 시계를 보며 종을 치는 수위의 바쁜 동작이 보이는가 하면
끊일 듯 끊일 듯 하는 범종의 여운 속에는 부동의 수도자가 서 있읍니다.
범종소리에 이끌려 도달한 사색과 정밀이 교회 종소리로 유리처럼 깨어지고 나면 저는 주섬주섬 생각의 파편을 주운 다음
제3의 전혀 엉뚱한 소리 - 가상 나팔 소리가 깨울 때 까지, 내처 자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고달픈 囚情수정들이 잠든 새벽녘 이 두개의 종소리 사이에 누워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다는 것은 작지만 하나의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223, 224
최근 이조 후기 사회에 대한 부쩍 높아진 사학계의 관심은 이조 후기가 - 이조초기의 君强, 開創의 시기나, 중기의 臣强, 黨爭의 시기와는 달리 - 민중이 무대 복판으로 성큼 걸러 나오는 이른바 民强, 民亂의 시기로서 종래의 왕조사를 지양하고 민중사를 정립하려는 이들에게
이 시기는 대문 같은 뜻을 갖기 때문에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토지의 평사리 농민들, 재인 마을의 吉山, "들불"의 여삼 등 이 시대를 살던 민중들의 얼굴을 찾아내려는 일련의 작가적 노력들이 경주되기도 하는 듯 합니다.
229
어른들의 수고와 아무 상관없던 어린 시절에 우리는 移徙가 부러웠습니다. 농짝 뒤에서 까맣게 잊었던 구슬이며 연필토막이 굴러 나오고
신발을 신은 채 대청마루를 걷는 등, 아이들은 부산스런 어른들의 사이를 누비며 저마다 작은 노획자가 되어 부지런히 재산(?)을 늘렸던 것입니다.
어린이 들에게 이사는 낭만과 행은의 신대륙이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온 후 십여 년간, 서울이 내두르는 거대한 원심력에 떠밀려나 묶어서 골목에 내면 더 작고 가난한 생활을 아부시고(앞세우다의 방언),
더 먼 외곽, 더 높은 비탈의 세가를 찾던 그 잦은 이사는 이를테면 어린 시절에 꿈 키웠던 그 이사의 환멸이었던 셈이었습니다.
236
자연을 적대적인 것으로 또는 불편한 것, 미개한 것으로 파악하고 인간 생활로부터 자연을 차단해 온 성과가 문명의 내용이고
차단된 자연으로 부터 거리가 문명의 척도가 되는 도시의 物理,
철긑 콘크리트의 벽과 벽 사이에서 없어도 되는 물건을 생산하기에 여념이 없는 - 욕망과 갈증의 생산에 여념이 없는,
생산 할 수록 더욱 궁핍을 느끼게 하는 '문명의 逆理'에 대하여, 야만과 미개의 대명사처럼 되어온 한 인디언의 편지가 이처럼 통렬한 문명 비판이 된다는 사실로 부터 우리는 문명과 야만의 의미를 다시 물어야 옳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이 짤막한 편지를 읽으며 저의 세계관 속에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식민지적 잔재가 부끄러웠습니다.
서구적인 것을 보편적인 원리로 수긍하고. 우리의 것은 항상 특수한 것, 우연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사고의 식민성'은 우리들의 가슴에 아직도 자국깊은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239
목적과 수단을 서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통일체로 파악하고 목적에 이른 첩경이나 능률적인 방편을 찾기에 연연하지 않고,
비록 높은 벼랑일지라도 마주 대하고 서는 그 대결의 의지는 그 막힌 듯한 우직함이 벌써 하나의 훌륭한 건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땅에 넘어진 사람은 허공을 붙들고 일어날 수 없고 어차피 땅을 짚고 일어설 수 밖에 없 듯' 知足(
과 평정을 억기 위하여 다름아닌 지족과 평정을 얻기 위하여 지족과 평정부터 닦음으로서 부터 시작하는 굵고 큼직한 사고 속에서야말로 가장 견고한 건강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듯 합니다.
보시선행 사무사( 布施善行 思無邪 )를 가르치는 현묵자의 양생법은 그 자체로써 하나의 인간 교육임을 알겠습니다.
242, 243
그래서 책에서 얻은 지식이 흔히 실천과 유리된 관념의 그림자이기 쉽습니다.
그것은 실천에 의해 검증되지 않고 실천과 함께 발전하지도 않는 허약한 가설, 낡은 교조에 불과 할 뿐 미래의 실천을 위해서도
아무런 도움이 못되는 것입니다. 진시황의 분서를 욕할 수 만도 없습니다.
// 지식은 책 속이나 서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리된 경험과 실천 속에 그것과의 통일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247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주관의 양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고 객관적인 견해를 더 많이 수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의 바닥에는 주관은 궁벽하고 객관은 평정한 것이며, 주관은 객관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객관은 주관을 기초로 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전제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읍니다.
저는 각자가 저마다의 삶의 터전에 깊숙이 발목 박고 서서 그'곳'에 고유한 주관을 더욱 강화해 가는 노력이야말로 객관의 지평을 열어 주는 것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곳'이 바다로 열린 시냇물처럼, 전체와 튼튼히 연대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思考의 동굴을 벗어나는 길은 그 삶의 터전을 선택하는 문제로 환원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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